“대한민국 헌법 제3조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부속 도서’라고 규정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대한민국 공무원인 제가 선화 씨를 보호하는 건 당연한 겁니다.” 영화 <휴민트>에서 국정원 요원 조 과장(조인성)은 블라디보스토크 북한 식당의 접객원이자 자신의 휴민트(인적 네트워크로 얻은 정보)인 선화(신세경)에게 이런 말을 건넨다. 얼핏 듣기엔 당혹스러울 만큼 진부하고, 과하게 영화적 대사 같다. 긴장감이 흘러야 할 첩보 영화에 웬 법전이란 말인가. 하지만 이 한마디가 의외로 인상 깊었다는 관객이 적잖다.
대사 한 줄에 현장의 이야기가 숨여 있기 때문이다. 영화가 개봉한 이튿날인 지난달 12일 아르떼와 만난 류승완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그 대사요. 취재에서 나온 겁니다. 실제로 탈북한 여성을 만났는데, 그분이 국정원 사람에게서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이 무너지면서 탈북을 결심했대요. ‘정말로 내가 어떤 사람에게 기댈 수 있는 무언가가 생겼구나’ 했다는 거죠. 제가 시나리오를 쓰며 생각한 대사였다면 안 넣었을 거예요. 헌법을 읊조리는 게 뭔가 그렇잖아요. 하지만 그분과 헤어지고 바로 대본을 수정했죠.”
류승완을 흔히 액션 연출에 도가 튼 영화인으로 생각한다. 사실 그는 ‘사람’을 탐구하는 데 시간을 쏟는 감독이다. “누구는 적응해서 일하냐, 일하면서 적응하는 거지”(정 처장·장현성), “꼭 감시당할 행동을 해야 감시당하나”(황치성·박해준) 같은 영화를 관통하는 대사들이 이렇게 길어 올려졌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영화 <부당거래>) 같은 대사도 마찬가지. 그러니까 류승완은 사람 사이에 오가는 어떤 ‘울림’에 민감하다.
영화 <휴민트>가 개봉 직후 완성도가 아쉽다는 일부의 볼멘소리에도 평단과 관객에게서 호평받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영화 제목 그대로 기계적 정보(Intelligence)를 넘어 사람 사이의 관계(Human)를 응시하는 각본과 연출이 돋보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류승완의 전작 <베를린>의 후속작이라거나 흔한 액션물로 인식한다면 다소 타격감이 적겠지만, 차가운 블라디보스토크 거리에서 일어난 뜨거운 인간 드라마로 치환하면 괜찮은 영화가 되는 것이다.
‘사람’ 류승완의 생각을 이해하면 영화 <휴민트>가 조금 더 흥미로워진다. 영화감독으로 30년을 살아온 류승완은 나이 들수록 점점 혼란스러워진다고 했다. “개인의 이익이나 신념을 우선시할 것인지, 아니면 조직의 원칙이나 이념을 우선해야 하는 것인지…. 예전에야 ‘사람이 먼저야!’ 자신 있게 얘기했는데, 요샌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어쩌면 <휴민트>의 배경인 블라디보스토크는 이런 그의 생각을 보여주는 혼돈 속일 수 있다. 남북한 사람이 모두 철저하게 ‘이방인’이 되는 이 도시에서 등장인물이 모두 일탈을 감행하기 때문. 조직을 우선하던 박건(박정민)이 사랑을 위해 당의 가르침에서 벗어나고, 조 과장이 “내 휴민트니까!”라며 조직의 방침을 거스르고 사람을 구하러 가는 모습이 그렇다. 정의와 불의, 빛과 어둠, 남과 북처럼 삶을 무 자르듯 대립시킬 수만은 없다는 뜻처럼 읽힌다.
아쉬운 대목도 있다. 인물의 관계망이 촘촘히 쌓이는 전반부와 비교해 매듭짓는 후반부가 첩보물답지 않게 어딘가 직선적이다. 다만 조영욱 음악감독이 참여한 배경음악, 저녁 어스름이 깔려오는 듯 라트비아 로케이션으로 완성한 영상의 분위기는 절묘하다. 조 과장과 선희를 엮는 전형적인 ‘남남북녀’ 멜로 클리셰를 포기한 것도 좋고.
유승목/구은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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