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스타in 김보영 기자] 살려야 한다는 간절한 진심으로 내달리는 연대의 오컬트 드라마. 천주교부터 샤머니즘까지 오컬트의 모든 재료를 총동원한 스케일, 배우들의 강렬한 시너지로 영화적 오감을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처절히 부딪히고, 시원히 직진하는 송혜교·전여빈의 ‘중꺾마’ 구마 워맨스. 연휴 박소오피스를 다시 한 번 K오컬트로 물들일 속편의 유쾌한 변주. 영화 ‘검은 수녀들’(감독 권혁재)이다.
‘검은 수녀들’은 강력한 악령에 사로잡힌 소년을 구하기 위해 금지된 의식에 나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한국 오컬트 영화의 새로운 장을 연 ‘검은 사제들’, 그리고 ‘국가부도의 날’, ‘마스터’, ‘브로커’ 등을 제작한 영화사 집의 신작이자 송혜교, 전여빈의 신선한 조합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특히 배우 송혜교가 ‘두근 두근 내 인생’(2014) 이후 무려 11년 만에 복귀하는 국내 영화로 화제를 모으고 있다. 손익분기점은 160만명이다.
‘검은 수녀들’은 544만 관객을 사로잡으며 국내 오컬트를 처음으로 주류 장르로 끌어올린 ‘검은 사제들’(2015) 이후 영화사 집이 10년 만에 선보인 스핀오프 속편격 작품이다. ‘검은 사제들’의 세계관을 계승하고 보다 확장했다. ‘검은 사제들’은 사제들이 구마 의식을 치렀지만, ‘검은 수녀들’은 구마 의식을 위한 서품조차 받을 자격을 못 갖춘 수녀들이 소년을 살리겠단 마음으로 금지된 의식에 나서는 고군분투를 그린다.
‘검은 수녀들’에서 가장 눈에 띄는 요소는 이루기 어려워 모두가 기피한 대업을 완수하는 주체가 힘을 지닌 권위자가 아닌 소외된 소수자들이란 점이다. ‘유니아’(송혜교 분)와 ‘미카엘라’(전여빈 분) 두 외로운 주인공이 집단의 엄혹한 격식과 냉혹한 편견에 맞서 금지된 의식을 준비하고, 목숨까지 내놓으며 무모히 숨가쁘게 내달리는 과정이 역동적으로 펼쳐진다.
이를 통해 관통하는 가장 큰 메시지는 ‘인간애’다. 송혜교가 연기한 ‘유니아’ 수녀 캐릭터가 이 영화의 기둥이자 메시지를 대변하는 인물이다. ‘생명을 살리는 일 앞에 수단과 방법은 필요없다’. 유니아 수녀의 이 무모하면서도 단호한 뚝심과 거침없는 행보는 자신의 정체성을 외면하면서까지 의학만을 믿던 미카엘라 수녀를 가장 먼저 변화시킨다.
‘과학’을 신봉하고 초자연적 수단을 배격하는 바오로 신부(이진욱 분), ‘수녀’의 권한과 능력을 인정하지 않는 교단 내 ‘기울어진 운동장’에 맞서 두 수녀가 택한 방식은 경계를 초월한 연대다. 구마 의식을 위해 무속신앙을 동원하는가 하면, 미카엘라가 영적 능력을 숨긴 채 가끔씩 꺼내 보던 낡은 타로카드가 구마 의식을 위한 실마리에 뜻밖의 단서로 활약한다. 미카엘라가 바오로 신부에게 배운 의학 지식도 희준의 상태를 살피는 과정에 중요히 작용한다.
자연스레 천주교 구마의식은 물론, 무속신앙의 굿, 서양 타로 점성술 등 오컬트물의 단골 소재로 활용돼온 온갖 초자연적 요소와 의식들이 풍성히 펼쳐진다. 오컬트 마니아에겐 종합선물세트처럼 느껴질 작품이다.
송혜교를 필두로 전여빈과 이진욱, 문우진, 김국희 등 믿고 보는 배우들의 강렬한 열연과 앙상블 시너지가 몰입도를 더한다. 특히 ‘검은 수녀들’은 송혜교가 넷플릭스 시리즈 ‘더 글로리’ 이후 택한 차기작이자 그의 첫 오컬트 장르 도전으로도 많은 기대감을 모았다.
‘더 글로리’ 문동은을 잊게 할 송혜교의 또 다른 새로운 얼굴도 ‘검은 수녀들’의 매력적인 관람 포인트로 작용할 전망이다. 송혜교가 표현한 ‘검은 수녀들’이 유니아 캐릭터는 푸른 불꽃같은 카리스마를 지닌 인물이다. 고요하고 정적이지만 그 안에 들어가면 붉은 불꽃보다 훨씬 뜨거운 온도의 불길을 품은 캐릭터다. 송혜교는 악령에 씌인 부마자 앞에서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무표정을 유지할 수 있는 건조함 이면에 강한 열정과 인간애를 품은 ‘유니아’란 캐릭터를 섬세히 완성했다. 캐릭터 연기를 위해 처음 흡연에 도전한 것은 물론, 거침없이 직진하는 ‘유니아’의 성정을 드러내는 욕설 연기까지 디테일 면에서도 쉽지 않은 도전을 거쳤다.
전여빈은 스승 바오로 신부가 추구하는 가치관과 자신의 정체성 사이에서 갈팡질팡 혼란을 겪던 미카엘라 수녀가 자신의 뇌관을 건드리는 유니아를 만나 나약함을 딛고 성장하는 과정을 입체감있게 표현한다.
악령에 씌인 부마자로 두 수녀에 맞서 빙의 연기를 펼친 아역 배우 문우진의 폭발적 열연이 영화의 극적 매력과 카타르시스를 끌어올렸다. 나약한 소년의 모습부터 섬뜩한 표정으로 욕설을 내뱉는 악령까지 극과 극의 모습이 소름을 유발한다.
비장함을 끌어올리는 미술 요소 등 웅장한 프로덕션, 처연한 여운을 남기는 음악 OST가 감상하는 재미를 더한다. 영화 말미 반가움을 자아낼 깜짝 카메오의 등장까지 조화롭게 활약한다.
24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114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