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현장 뛰던 가을동화 가수, 이젠 드릴 쥐고 100만 뷰[은퇴 레시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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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걱정 직장인 필독 레시피] 가수 출신 현장노동자의 세 번째 직업
“가수가 될거야” 열여덟의 반란
전성기에 덮친 희귀 질환… 노래 잃고 바닥부터 다시 시작
건설현장-대리운전-배달일 병행… 드릴 잡은 손으로 카메라 앞에 서
책 속 상상력이 새로운 길 열었다


드라마 ‘가을동화’ OST를 불렀던 가수 윤창건 씨(53)가 전동드릴을 들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채널 ‘오늘의 현장’에 올릴 영상을 촬영 중이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드라마 ‘가을동화’ OST를 불렀던 가수 윤창건 씨(53)가 전동드릴을 들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채널 ‘오늘의 현장’에 올릴 영상을 촬영 중이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아버지는 깡촌 흙수저 출신의 성공한 은행원이었다. 그는 삼남매에게 늘 “공부만이 살 길”이라고 했다. 덕분에 윤창건 씨(53)는 누나와 함께 요즘 말로 ‘선행학습’을 하며 자랐다. 중학교 때 성적이 좋았고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는 이과를 택했다. 부모님은 의사가 되길 바랐다.

그러나 윤 씨의 꿈은 따로 있었다. 가수가 되는 것이었다. 어머니가 피아노 학원을 운영한 덕에 피아노 실력도 제법 됐다. 그는 부모님을 설득해 고등학교 2학년 때 이과에서 예체능 계열로 전과했다. 하지만 충분한 준비 없이 방향을 틀다 보니 첫 입시에서 보기 좋게 고배를 마셨다.

재도전을 다짐한 스무살의 그는 중앙대 작곡과 교수실 문을 무작정 두드렸다. 연락도 없이, 일면식도 없는 교수를 찾아가 레슨을 요청한 것이다. “사실 교수실 문을 두드리기 전에 많이 망설였어요. 저를 어떻게 볼지 두려워서 포기하고 돌아섰다가 다시 마음을 다잡고 돌아와 끝내 노크를 했죠. 어쩌면 그게 제 롤러코스터 같은 인생의 시작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해 말 윤 씨는 중앙대학교 작곡과에 93학번으로 입학했다.

● 극심한 통증 앞에 무너진 가수의 꿈

본격적으로 가수의 길에 들어선 건 군 제대 후였다. 제3회 예당가요제에서 대상을 거머쥐며 당시 유명 매니지먼트사 예당엔터테인먼트에 입성했다. 바로 윗기수에 김경호가, 아래 기수에는 싸이가 있었다.

발라드 가수였던 그에게 기회는 더디게 왔다. 댄스 음악이 대세로 떠오르면서 발라드 앨범 발매는 계속 미뤄졌다. 이 무렵 송승헌·송혜교 주연의 드라마 ‘가을동화’ OST를 불러줄 가수를 급히 찾는다는 연락이 왔다. 내키지는 않았지만 아는 형의 부탁으로 ‘얼마나 내가’를 녹음했다. 그런데 드라마가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OST 앨범만 150만 장이 팔렸고 일본에서도 열풍이 불었다. 후속작 ‘겨울연가’까지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끌면서 그는 약 8년 간 일본 무대를 오가며 활발히 활동했다.

그는 기세를 몰아 입시 전문 실용음악학원 ‘VNC 보컬 트레이닝 센터’를 열었다. 레슨 때부터 녹음하고 즉시 들어보는 방식, 기획사의 가수 트레이닝과 동일한 커리큘럼을 적용했다. 효과가 검증되면서 학원은 빠르게 성장했다. 사업을 확장해 가던 어느 날, 갑자기 뒷목이 송곳으로 찌르는 듯 아팠고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이어 발작이 찾아왔다. 1년이 지나서야 병명이 밝혀졌다. ‘설인신경통’이었다. 혀와 인두의 감각을 담당하는 신경이 동맥과 엉켜 동맥이 뛸 때마다 극심한 통증이 오는 병이었다. 희귀 질환이라 집도의를 찾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뇌수술만이 유일한 해법이었고 2012년 극적으로 수술에 성공했다. 하지만 학원은 접어야 했고 노래도 부를 수 없게 됐다.

● 배수진 치고 육체노동에 뛰어들다

취미삼아 하고 있던 한옥 목수일을 직업으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하던 시기에 아버지가 뇌경색으로 쓰러지며 병원비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당장 돈을 벌어야 했다. 남은 것이 몸 뿐이었던 그는 무작정 건설 현장을 찾아갔다. 도서관 신축 현장 인력사무소에서 일당 12만 원을 받으며 콘크리트 미장부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돈으로는 병원비와 생활비, 아이들 교육비를 감당하기 어려웠다. 아침 7시부터 오후 5시까지 현장에서 일하고 저녁을 먹고 나면 대리운전을 나갔다. 비나 눈이 와서 현장이 쉬는 날에는 배달을 했다.

현장에서 그의 별명은 ‘가방끈’이었다. 대학물 먹은 사람이 현장 막일을 한다는 게 드물었기 때문이다. “건설 현장을 보면 먼지 나지 말라고 쳐 놓은 천막이 있잖아요. 그 천막 안의 세계는 천막 밖의 세계와 전혀 달라요. 사용하는 언어도 다르고 사람들 생각의 결도 달라요. 무대 위에서 조명을 받으며 노래하던 사람이 지금은 건설 현장 일하고 야채 배달 하자니 괴리감이 컸었어요.”

그러나 그런 와중에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기회가 오면 놓치지 않고 자신을 성장시키는 계기로 삼았다. 트럭 대리운전을 하던 어느 날, 옆자리에 탄 손님이 술기운에 툭 던졌다. “자네는 대리운전만 할 것 같진 않은데, 낮엔 뭐 하나?” 그는 명함 한 장을 건네고 내렸다. 창틀·난간·철제문을 다루는 금속 시공 회사였다. 윤 씨는 다음날 그 명함을 들고 곧장 해당 회사를 찾아갔다. 술김에 건넨 명함을 들고 나타난 그를 상대방은 신기한 듯 바라봤다. 그곳에서 그는 용접부터 시작해 금속 시공을 처음부터 다시 배워나갔다.

햇빛 차단용 가림막을 올리기 위해 철제 프레임을 설치하는 모습. 윤창건 씨 제공

햇빛 차단용 가림막을 올리기 위해 철제 프레임을 설치하는 모습. 윤창건 씨 제공
실측부터 발주, 시공까지 혼자 해낼 수 있는 수준에 이른 2022년 건축 시공사 ‘오늘의현장’을 설립했다. 이어 반경 5km 내 철물점의 자재 가격을 한눈에 비교할 수 있는 앱 ‘오늘의 현장’을 직접 개발했고 이 앱을 알리기 위해 유튜브 채널을 시작했다.

● 돌고 돌아 콘텐츠로… “조명이 어색하지 않았어요”

첫 영상은 철에 구멍을 뚫는 전동드릴 사용법이었다. 위험한 공구인 만큼 현장 초보자에게 꼭 필요한 정보였다. 반응은 처음부터 뜨거웠다. 채널은 인스타그램으로도 확장했다.

인스타그램 첫 100만 뷰를 돌파한 ‘수성 페인트 다루는법’ 영상. 인스타그램 캡쳐

인스타그램 첫 100만 뷰를 돌파한 ‘수성 페인트 다루는법’ 영상. 인스타그램 캡쳐
구독자 층을 넓히기 위해 올린 페인트칠 영상은 100만 뷰를 넘어섰다. 집수리에 관심 있는 일반인 시청자가 생각보다 훨씬 많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삼화페인트가 처음으로 협업을 제안해 왔다. “하이샷시 레일 교체 직접 해보기! 이것도 하기 싫으면 돈이 많나봐?” , “for 문과생 남편. 1분 안에! 감전 없이 전등 가는 법!”과 같이 톡톡 튀면서도 깨알 같은 정보가 담긴 그의 영상을 유튜브, 인스타그램에서 총 21만 명이 구독한다. 올해는 카카오톡 숏폼에도 진출해 ‘건축의 가성비’, ‘싱크대 배수구 냄새 잡는 법’ 같은 생활 밀착형 콘텐츠로 대중과 접점을 넓히고 있다.

이 뿐 아니라 집수리 의뢰를 받아 검증된 기술자를 연결해 주는 ‘오늘의 집사’ 서비스를 출시하며 전문가 매칭 플랫폼으로도 사업 영역을 확장 중이다.

집수리 사업 아이디어는 ‘오늘의현장’ 채널 구독자 4명 중 1명이 여성이라는 데 착안했다. “여성분들이 집수리를 의뢰할 때 어떤 사람이 내 집에 방문할 지 알 수 없다는 두려움이 있는 것을 알게 됐어요. 세상에 나쁜 사람도 많으니까요. 우리가 교육하고 검증한 전문가를 보낸다면 안전함이나 집수리 품질을 어느 정도 담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건설업에서 출발했지만 SNS 채널과 플랫폼 서비스에서 나오는 매출 비중이 점점 커져 이제는 6대 4 수준이 됐다.

가수, 학원 운영자, 건설 현장 노동자, 크리에이터로 이어지는 그의 커리어는 언뜻 종잡을 수 없이 이리저리 튀는 공처럼 보인다. 하지만 서로 무관해 보이는 삶의 궤적들이 크리에이터라는 한 지점에서 맞닿아 폭발적인 시너지를 만들고 있다. “교육이 제게 맞았고 결국 미디어로 돌아온 것이지요. 카메라의 조명이 어색하지 않았으니까요.”

● “누가 해봤답네” 말하는 것이 실패의 지름길

그는 자신이 가진 자원들을 연결하는 힘이 독서를 통해 얻은 아이디어와 통찰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책을 읽는 만큼 상상하게 되고, 그 상상력이 새로운 길을 여는 힘이 된다는 것이다.

물론 상상만으로는 부족하다. 그것을 실천에 옮기는 실행력이 뒤따라야 한다. “실패를 덜 하는 비결이요? 실패를 많이 해보는 것밖에 없어요.”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가려내려면 먼저 부딪혀 보고 그 결과를 직시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철학이다. 그래서 그는 회사에서 금칙어를 정해뒀다. “누가 해봤답네(누가 해봤는데 안 됐대요)”라는 말이다. 남의 실패를 이유로 시도조차 포기하는 순간 성공의 가능성도 함께 사라진다는 뜻이다.

그는 오래 몸 담고 있던 회사를 떠나게 된다면 일찍 나오는 편이 행운일 수 있다고 말한다. 아직 건강이 뒷받침되고 새로운 실패를 감당할 시간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저의 경우 새로운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은 항상 앞이 깜깜했어요. 스위치가 어디 있는지 더듬더듬 찾아야 했죠. 더듬는 시간이 길어질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그렇게 찾다 보면 언젠가는 찾게 돼있어요. 그렇게 찾은 스위치는 정말 아름다운 스위치인 것이죠. 더듬어 찾는 사람만이 아름다운 스위치를 찾을 수 있습니다.”

롤러코스터 같은 인생이라고 좌절하거나 주저앉기엔 삶이 아깝다고 그는 말한다. 언젠가 에세이를 쓴다면 제목은 ‘롤러코스터에서 뛰어내리기’로 할 생각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는 그 제목에 걸맞은 삶을 살기 위해 분투 중이다.


QR코드를 스캔하면 채널A 유튜브 ‘건강IN으로’에 업로드된 인터뷰 동영상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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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지 기자 nu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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