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FC 정경호(44) 신임 감독이 다부진 각오를 전했다.
강원은 12월 23일 강원도 강릉시 클럽하우스에서 정경호 신임 감독 취임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정경호 감독은 강원도 삼척 출신으로 주문진중학교, 강릉상고(현 강릉제일고)에서 기량을 갈고닦았다. 주문진중, 강릉상고는 현재 강원의 U-15, U-18 팀이다.
정경호 감독은 2009년 강원 창단 멤버로 합류해 선수로 활약하기도 했다. 지난해부턴 강원 수석코치로 팀의 K리그1 잔류와 준우승이란 드라마를 쓰는 데 이바지했다.
다음은 정경호 감독과의 일문일답이다.
Q. 취임 소감.
우선, 멀리 강릉까지 와주셔서 감사하다. 강원 감독이란 소중한 기회를 얻었다. 강원을 이끌게 해주신 김진태 구단주님, 김병지 대표이사님을 비롯한 많은 분께 감사하다. 강원 서포터스에도 감사 인사를 전한다. 내겐 이 기회가 아주 소중하다. 이 기회를 잡고자 정말 많은 시간 고민했다. 시행착오도 겪었다. 그렇게 쌓인 노하우를 녹여내서 좋은 팀을 만들겠다.
강원은 지금까지 ‘언더 리딩’ 구단으로 기복이 있었다. 꾸준한 팀을 만들고 싶다. 우리의 철학, 비전을 잘 녹여내서 팬들이 좋아하는 축구를 펼치고 싶다. 더 많은 팬이 경기장을 찾을 수 있도록 온 힘을 다하겠다. 나는 강원의 축구가 하나의 콘텐츠가 됐으면 한다. 강원도민이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팀을 만들겠다.
Q. 강원이 2024시즌 구단 역대 최고 성적을 냈다. 부담스럽지 않나.
전혀. 시간이 좀 지나서 그런지 부담은 없다. 내가 수석코치 생활을 오래 했다. 감독대행 경험도 있다. 10년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과거였다면 부담을 느꼈을 거다. 그땐 경험이 부족했으니까. 내가 고민한 건 우리의 철학과 비전 등이다. 나는 좀 더 단단한 팀을 만들 계획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 팀 말이다.
시도민구단은 굴곡이 심하다. 그래서 더 단단한 팀을 만들고 싶다. 2024시즌이 증명한 게 있다. 어떤 팀이든 K리그1에서 우승 경쟁을 펼칠 수 있다. 어떤 팀이든 K리그2로 강등될 수도 있다. 우리가 어떻게 준비하느냐가 성패를 가른다. 김병지 대표께 말씀드렸다. 김병지 대표께 “우리가 올해 준우승을 했다고 해서 내년에 우승 경쟁을 벌일 수 있는 건 냉정하게 아니”라고.
Q. 내년 후반기엔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ACL)를 병행해야 한다. 강원이 ACL에 나서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전력 보강은 잘 이루어지고 있나.
전력 보강에 관해선 김병지 대표이사님, 전력강화실장님, 스카우트와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강원만의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다. 우리가 양민혁이란 선수를 발굴하지 않았나. 대표님과 전력강화팀에선 제2의 양민혁을 발굴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으시다. 양민혁과 같은 선수가 꾸준히 나와야 시도민구단이 더 성장할 수 있다.
옛날엔 감독이 좋은 선수를 직접 찾아다녔다. 해야 할 일이 많았다. 지금은 아니다. 분업화가 잘 되어 있다. 대표님, 전력강화팀과 꾸준히 소통하면서 선수들의 성장을 최대한 돕겠다. ‘코치 땐 잘했는데 감독으로도 잘할까’란 의문이 있는 것도 안다. 이 또한 내가 증명해야 할 부분이다. 크게 문제 될 건 없다. 어떤 감독도 마찬가지겠지만, 누구든지 코치 시절이 있다. 코치 경험을 쌓고 쌓아서 감독이 됐을 거다. 건강한 팀을 만들어보겠다.
Q. 강원에서 선수, 코치로 활약했다. 이젠 감독이다. 강원은 정경호의 축구 인생에서 어떤 의미인가.
강원도 삼척에서 태어나 강릉에서 축구했다. 강릉은 내게 많은 걸 가져다준 곳이다. 강릉은 나를 프로축구 선수로 성장하게 해줬다. 지도자로 돌아올 수 있어서 아주 기쁘다. 영광스럽다. 하지만, 강원에서 감독 생활을 시작할 것이라곤 상상조차 못했다. 강원은 내 고향이고, 큰 사랑을 받은 곳이다. 강원을 맡는다면, 더 많은 경험을 쌓은 후가 되지 않을까 했다.
사람 일은 확실히 모르는 것 같다. 처음 강원 수석코치 제안을 받았을 때도 고사했다. 팀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내 고향 팀이어서 정말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김병지 대표님과 통화하면서 마음이 조금씩 바뀌었다. 내겐 승강 플레이오프에서의 경험이 있었다. 이 경험을 토대로 팀이 어려울 때 도움을 주고자 했다. 그것이 내가 강원에서 받은 사랑을 조금이나마 돌려주는 것이라고 봤다.
지도자의 역량이 아주 중요해진 시대다. 나도 정말 많이 공부하고, 경험을 쌓아 이 자리까지 왔다. 지도자의 역량, 리더십에 따라서 팀이 달라진다. 세계 축구계가 그렇다. 초심 잃지 않겠다. 돌풍이나 태풍보단 꾸준한 팀을 만들겠다.
Q. 코치 경험이 풍부하다. 고(故) 유상철, 김학범, 김태완, 김남일, 윤정환 등 여러 감독과 함께했다. 감독마다 특징이 다르지 않나. 배우고 느낀 것도 달랐을 듯한데.
나는 행복한 코치였다. 다섯 분께 배운 게 정말 많다. 배우면서 계속 성장할 수 있었다. 감독님들이 나를 믿어주셔서 더 많은 경험을 쌓을 수도 있었다. 이 자리에서 꼭 말하고 싶은 게 K리그에 젊은 지도자가 없다.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지휘봉을 잡았다가 무너지는 걸 봤다. 광주 FC 이정효 감독, FC 안양 유병훈 감독님을 보면 코치 시절을 잘 보낸 분이 확실히 내공이 있다. 젊은 지도자들이 조금 더 인내를 가졌으면 한다. 시행착오를 통해서 더 단단해져야 감독으로 성과를 낼 수 있지 않나 싶다.
Q. 코치와 감독은 다르지 않나. 앞으로 많은 게 달라질 듯한데.
수석코치로 오래 일했다. 코치는 숲속의 나무를 본다. 나무가 어떻게 자라고 있는지 관찰하고, 키워간다. 코치로 일할 땐 숲속에서 조금 부족한 부분이 있는 나무들을 가꿔나가는 데 집중했던 것 같다. 이젠 밖으로 나와 숲 전체를 봐야 한다. 또 숲 안팎을 돌아다니면서 잘 관리해야 한다. 소통이 중요한 것 같다. 잘 해보겠다.
Q. 2025시즌 양민혁, 황문기가 빠진다.
전력강화실과 선수 보강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한다. 하지만, 시도민구단은 예산이 한정되어 있다. 다들 아시겠지만 선수들 몸값이 많이 올랐다. 그러다 보니 내가 원하는 선수를 영입하기 어려울 수 있다. 우린 식당으로 치면 일반 식당이다. 고급 레스토랑이 아니다. 일반 식당이라고 해서 실망할 필요는 없다.
일반 식당 중에서도 사람이 북적한 곳이 많다. 줄을 서서 기다려야 먹을 수 있는 곳이다. 양민혁, 황문기가 빠지지만 더 좋은 선수들이 나올 거다. 새로운 선수들이 단단한 강원을 만드는 데 앞장설 것으로 본다.
Q. 정경호 감독이 선수를 평가할 때 가장 중점적으로 보는 건 무엇인가.
다섯 가지다. 체력, 기술, 전술. 멘탈, 태도다.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걸 꼽으라면 태도다. 태도가 경쟁력인 시대다. 감독, 코치, 선수 다 똑같다.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태도가 안 좋으면 절대 성공할 수 없다. 항상 간절해야 한다.
선수들에게 늘 얘기한다. 선수들에게 “기분이 태도가 되진 말자”고. 기분은 내 마음대로 선택하기 어렵다. 기분은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다. 하지만, 태도는 내가 선택할 수 있다. 의지에 달렸다. 한 번만 생각하고 돌아보면 된다.
Q. 새 코칭스태프 구성은 마무리됐나.
코칭스태프 구성은 마쳤다. 수석코치론 인천 유나이티드 박용호 코치를 선임했다. FC 안양의 올 시즌 K리그2 우승을 이끌었던 장석민 피지컬 코치도 합류한다. 구단이 B팀을 운영하는 건 아니지만 육성의 필요성을 느꼈다. 어린 선수의 성장을 돕고자 오범석 코치를 2군 전담 코치로 모셨다.
코칭스태프에 늘 강조하는 게 있다. 우린 하나의 방향성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추구하는 방향성, 게임 모델을 잘 소화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어떤 선수가 경기에 나서든 문제가 없을 수 있도록 힘쓰겠다.
Q. 곧 전지훈련을 떠난다.
12월 20일부터 강릉에서 훈련하고 있다. 2군 선수들은 좀 더 일찍 소집했다. 내년 1월 1일엔 튀르키예 안탈리아로 떠난다. 새해 첫날부터 떠나는 게 너무 빠르지 않으냔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새해 첫날 전지훈련을 떠나는 데 의의를 두자고 했다. 생각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의미가 바뀐다.
튀르키예에서 연습경기를 많이 잡아놨다. 작년에도 다녀왔던 곳이다. 연습경기가 큰 도움이 됐다. 연습경기를 통해서 많은 부분을 수정하고 보완해 나갈 계획이다.
Q. 제2의 양민혁, 황문기로 기대하는 선수가 있나.
아직 모르겠다. 사실 제2의 양민혁을 만드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양민혁은 1983년 출범한 K리그 역대 최고의 신인이다. 정말 대단한 선수다. 올해 1월 동계훈련에서 양민혁을 유심히 지켜봤다. 장점이 많았다. 성장 가능성도 컸다. 양민혁이 연습경기를 치를수록 더 많은 장점을 보여주더라. 실전에서의 시작이 중요할 것으로 봤다. 시즌 초반 득점을 터뜨린다면 자신감을 얻어 큰 성장을 이룰 것이라고 기대했다.
성남 수석코치로 있을 때 김지수를 발굴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 김남일 감독께 “김지수를 중앙 수비수로 뛰게 하자”고 요청했다. 김지수를 훈련시키면서 능력을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김지수에게 스리백 중앙을 맡겼다. 나이는 어리지만 리딩 능력이 대단히 뛰어났다. 어린 선수들을 어떻게 성장시킬지 계속 고민하겠다. 좋은 선수들이 계속 나올 수 있도록 온 힘을 다하겠다.
Q. 윤정환 감독이 인천으로 향했다. 윤정환 감독과 나눈 이야기가 있나.
감독님과 따로 나눈 이야기는 없다. 윤정환 감독님이 아름답고 용기 있는 도전에 나섰다. 감독님의 도전을 보면서 많이 배웠다. 윤정환 감독님은 인천에서도 좋은 성과를 낼 것으로 본다. 많은 장점을 가지고 계신 분이다.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윤정환 감독님은 인천을 K리그1으로 승격시키는 데 앞장설 것이다. 경기 챙겨보면서 응원하겠다.
Q. 정경호 감독의 명확한 철학, 비전은 무엇인가.
명확하게 무엇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철학은 경험을 토대로 한다. 그 경험엔 노하우가 포함된다. 철학은 계속해서 바뀔 수 있다. 특히나 상황에 따라서 유연하게 바꿀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 축구만 보면 구조적으로 이기는 축구를 추구한다. 선수들이 경기를 거듭할수록 자신감을 더하는 축구다.
Q. 강원은 선수층이 두꺼운 팀이 아니다. 내년에도 포지션 변경이 있을 듯한데.
포지션 변경에 있어선 경험이 많다. 성공과 실패를 두루 경험했다. 상주 상무(김천상무의 전신)에서 3년 동안 수석코치를 했었다. 수많은 선수가 들어오고 나가기를 반복하는 팀이다. 당시엔 특정 포지션에 선수가 몰리곤 했다. 울산의 이규성을 홀딩 미드필더로 활용했었다. 스트라이커 주민규가 전력에서 이탈했을 땐 중앙 수비수 이광선을 스트라이커로 쓰기도 했다.
어떤 선수가 어떻게 변할진 모르겠다. 분명한 건 선수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겠다는 것이다. 튀르키예 전지훈련을 통해서 여러 가능성을 확인하겠다.
Q. 장결희가 테스트를 받는 것으로 안다. 입단 가능성은 얼마나 되나.
장결희는 이번 주까지 훈련한다. 장점을 찾고 있는 과정이다. 어릴 땐 재능이 큰 선수였다. 하지만, 그 재능을 성장시키지 못한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하면서 관찰하고 있다. 한 가지 아쉬운 건 연습경기를 통해서 장결희의 장점을 파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당장 연습경기 상대를 구할 수가 없다. 어려움이 있지만 선수의 가능성을 잘 파악하도록 하겠다.
Q. 축구계 지인이 많지 않나. 축하를 많이 받았을 듯한데.
축하 인사는 정말 많이 받았다. 모든 분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다들 내가 오랫동안 코치 생활을 한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고생한 만큼 기회가 온 것이니 잘해보라’는 공통된 격려를 해주셨다. 하위 리그에 있는 후배 지도자들은 ‘나를 롤모델’이라고도 한다. 그 말에 큰 책임감을 느낀다.
후배들에게 솔직하게 말했다. 후배들에게 “나도 톱 클래스 지도자가 아니다. 톱 클래스 선수 출신도 아니다. 나름 프로에서 많은 경기를 소화했다. 올림픽, 월드컵도 다녀왔다. 하지만, 그런 내게도 기회가 쉽게 오지 않더라. 인내가 필요하다”고 했다. 더 공부하고 연구하면서 기다릴 필요가 있다. 나도 급할 때가 있었다. ‘왜 나한텐 기회가 오지 않는 걸까’ 생각한 적도 많다. 후배들이 나보다 빨리 기회를 잡을 땐 부럽기도 했다.
기다리니 기회가 왔다. 단,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묵묵히 자기 길을 걷는 게 정말 중요하다. 나도 계속해서 걸어 나가겠다. 후배들에게 좋은 롤모델이 될 수 있도록 온 힘을 다할 것이다.
Q. 영감을 주는 유럽 축구 팀, 지도자가 있나.
유럽 축구 정말 많이 본다. 시간 여유가 있을 땐 유럽으로 나가서 보려고도 했다. 세계 축구 트렌드가 많이 바뀌었다. 과거엔 좋은 축구를 하는 지도자가 한정적이었다. 이젠 아니다. 자기만의 뚜렷한 철학, 비전을 가지고 나아가는 지도자가 크게 늘었다. 그래야 살아남는다. 요즘엔 리버풀, 첼시를 보면서 느낀다.
세계 축구의 중심에 선 젊은 감독들은 성장을 멈추지 않는다. 계속 발전한다. 나도 그들처럼 계속해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겠다.
[강릉=이근승 MK스포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