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 선포에 코인시장 패닉
폭락 이후 2시간만에 급반등
특정 국가에서 가격 싸지면
국경넘는 차익거래 급증 덕분
트럼프발 랠리 호재에도
전세계 모든 사건에 영향
투자 난도는 극심한 편
최근 한국의 정치적 환경이 급변하면서 가상자산이 국내 투자의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가상자산은 전 세계 투자자들이 거래하는 자산이라 한국의 ‘국가 리스크’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는 특성 때문이다. 최근 개인투자자들이 국내 주식을 외면하고 해외 주식으로 눈을 돌리는 것과 비슷한 이유다.
실제 미국 주식 외에 글로벌 자산에 투자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바로 가상자산이다. 일반적으로 비트코인은 전 세계 어디에서도 가격이 비슷하다. ‘김치 프리미엄’이라는 명칭으로 한국 내에서 더 비싸거나 싸기도 하지만 비상계엄 전까지만 해도 미미한 수준을 유지해왔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 수혜로 가파르게 오른 바 있어 이른바 투자 이민 대상으로 고려할 만 하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한 꺼풀만 더 들어가보면 투자 이민을 빌미로 가상자산에 섣불리 투자하는 것은 득보다 실이 많다고 조언한다. 단점도 곳곳에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24시간 365일 거래되기 때문에 특정 사건 사고가 발생하면 지체 없이 시장에 바로 영향을 미친다. 가상자산 시장 특유의 변동성에 혹해 충동 투자를 할 가능성도 높다. 최근 한국의 계엄령을 둘러싸고 벌어진 가상자산 시장 움직임이 이 같은 우려를 반영한다.
전문가들은 가상자산에 투자하기로 마음먹었다면 변동성 높은 신생 코인보다 비교적 오랫동안 거래 기록을 쌓아서 금융권 자금 유입 가능성이 높은 오래된 코인들에 주목할 것을 권한다.
글로벌 시장 특성 갖춘 가상자산 시장
국내 가상자산 시장은 비상계엄 사태 발발 이후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12월 3일 오후 10시 30분께 국내 비트코인 가격은 1억3000만원대에서 8800만원대까지 수직 낙하했다. 한국과 해외 거래소 간 가격 차를 지칭하는 김치 프리미엄은 -40%대로 벌어졌다. 다른 코인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의 정치 상황을 염려한 투자자들이 코인을 일제히 던젔고, 그것이 야간임에도 가격에 그대로 반영되면서 벌어진 현상이다. 주식은 야간에 거래가 되지 않아 야간에 돌발상황이 생겨도 일단 다음 날 아침까지 기다려야 하지만 비트코인은 24시간 거래된다.
코인 시장에서는 비상계엄이 종료된 이후 김치 프리미엄은 빠르게 폭을 줄였다. 비트코인은 지난 4일 새벽 1시께 1억3000만원대로 회복됐으며 김치 프리미엄도 한 자리대로 낮아졌다. 가상자산 투자 커뮤니티에서는 비트코인을 8000만원대에 매수했다는 인증이 올라오기도 했지만 당시 업비트·빗썸이 사용자 폭주로 서비스가 중단돼 실거래는 극히 드문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그보다 급락을 빠른 속도로 회복했다는 데 투자자들은 안도하고 있다.
이는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이 국내에서만 거래되는 게 아니라 전 세계 거래소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거래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특정 사건으로 특정 국가 내의 비트코인이 싸지면 구매해 다른 거래소로 전송해 비싸게 파는 차익거래를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전 세계에 거의 동일한 가격이 유지되는 특성을 갖는다. 거래소는 국내를 포함해 각 국가에 포진해 있지만 시장 자체는 글로벌하게 운용되는 셈이다.
글로벌 투자이면서 환차손 대응 용이
가상자산 시장의 글로벌 특성은 국내 투자자들에게 몇 가지 이득을 제공한다. 먼저 무중단 운영과 실시간 정산으로 매도 시 현금을 빠르게 확보할 수 있다. 주식만 해도 매도 버튼을 누른 후 이틀 뒤에 현금을 받는다. 하지만 가상자산은 매수와 매도가 실시간으로 정산돼 코인과 현금을 바로 받을 수 있다. 주식 시장이 운영되는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 30분뿐만 아니라 밤 12시에도 실시간 정산은 계속된다.
또 글로벌 시장임에도 불구하고 환차손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비트코인의 기준가가 사실상 달러이기 때문에 달러 가치에 따른 가격 변동은 존재하지만 실시간 정산으로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 미국 주식 매매 시 정산 시간에 따른 환차손이나 환차익이 없다는 것이다. 사실상 비트코인 시세나 전망만 고려해 매매를 진행해도 되기 때문에 환율을 크게 염두에 두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글로벌로 거래되기 때문에 지역별 충격에 전체 시장이 빠르게 반응한다는 것은 유의해야 할 점이다. 이번 비상계엄 사태도 한국 내 가상자산 시장은 김치 프리미엄을 빠르게 복구했지만 전체 가상자산 시장이 조정을 받는 빌미로 작용했다. 이전에는 미국발 규제 강화가 전 세계 가상자산 시장을 위축시키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전 세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두 파악해야만 위험에 대응할 수 있다는 점은 가상자산 투자의 난이도를 높인다.
비상계엄 수혜 코인? 변동성만 높아졌다
한국에서 발발한 비상계엄 사태를 두고 특정 코인이 급등해 투자자들의 눈길을 끌기도 했다. 한국 가상자산 투자자들이 계엄 사태 때문에 해외로 자금을 이동시킬 것으로 예상해 전송에 용이한 코인들이 수혜를 볼 것이라는 추측 때문이다. 예를 들어 달러 기반 스테이블 코인인 USDT 전송에 주로 사용되는 트론은 지난 3일 저녁 7시 330원대에서 4일 오전 8시 654원까지 100%가량 급등했다. 국제 결제에 사용되는 리플도 비상계엄 사태 이후 계속해서 주목받고 있다.
특히 트론은 창립자인 저스틴 선이 한국 상황을 염두에 둔 발언을 내놓으면서 투자자들에게 더욱 눈길을 끌었다. 그는 엑스(X)에 비상계엄 사태 이후 우리는 한국 국민과 함께해야 한다는 발언을 내놓았다. 이는 한국 가상자산 투자자들의 해외 송금을 잘 지원하겠다는 말로도 해석될 수 있다. 실제로 가상자산 투자 커뮤니티에서는 국내에서 싸진 가상자산을 매수하기 위해 코인을 송금할 때 트론이 잘 작동했다는 후기가 올라오면서 인기가 높아진 바 있다.
그러나 트론 가격은 이달 4일 이후 빠른 속도로 하락했다. 한때 600원을 넘었던 가격은 11일 기준 360원대를 형성해 40% 급락했다. 비상계엄 사태를 둘러싸고 변동성만 높아진 것이다. 특히 트론은 과거 다른 가상자산 대비 등락폭이 크지 않았기 때문에 최근 고점에 매수한 투자자들이 손실을 만회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투자 이민 위한 가상자산 매수도 신중하게 골라야
시장 전문가들은 가상자산 시장이 주식 또는 상장지수펀드(ETF) 대비 장점이 뚜렷하지만 그만큼 단점도 많다고 지적한다. 무엇보다 가상자산의 가치를 산정하는 기본적인 방법이 부재하다는 것이 첫손에 꼽힌다. 가치 산정 방법이 없기 때문에 기관투자자들의 진입이 어렵다. 그나마 진입한 기관투자자들도 특유의 변동성에 따른 차익 확보를 목표로 하거나 통화 가치 하락 대비라는 정성적 목표에 따라 포트폴리오에 일부를 할당하는 전략을 활용한다. 이럴 경우 정보 격차가 커져 개인 투자자들이 상대적으로 불리할 수밖에 없다.
최근 가상자산 시장의 상승을 이끈 재료인 ‘트럼프 수혜’가 한풀 꺾였다는 것도 염두에 둬야 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새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비트코인은 1억원을 돌파해 한 달 만에 40% 가까이 상승했다. 다른 가상자산들도 30~50%의 상승폭을 기록한 바 있다. 현재는 한국의 비상계엄 사태와 맞물려 단기 급등에 따른 조정 시점이다. 김동환 원더프레임 대표는 “트럼프의 당선이 야기한 최근 급등으로 한국 투자자들이 선호하는 리플은 한 달간 5배 가까이 폭등했다”며 “단기 기준으로 상승보다 조정 가능성이 높은 시기”라고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자 이민을 고려한다면 변동성이 높은 신생 가상자산보다 비교적 오랫동안 사건·사고 없이 운영돼 거래 기록을 다수 보유한 가상자산을 먼저 고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가장 대표적인 코인이 바로 비트코인이다. 알트코인 중에서는 솔라나, 앱토스 등 연식이 오래된 코인들이 꼽힌다. 이들은 최근 해외 금융사들이 ETF나 사모펀드 등을 활용해 가상자산에 투자하는 추세가 늘어나는데 투자 대상으로 꼽힌 바 있다. 조동현 언디파인드랩스 대표는 “미국·중국 등의 초고액 자산가를 대상으로 하는 사모펀드들이 가상자산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다”며 “다수 거래 기록을 갖고 있어 가격 산정에 참고할 수 있는 가상자산들이 해당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용영 엠블록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