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상타주-세계로 스며드는 죽음’展
우한나·최수진·슈이차오 작가 참여
요리 소재로 세계와 신체 관계 조망
서울 강남 한복판에 비엔날레급 전시가 열리고 있다.
한국과 중국 3040 여성작가 3명이 음식과 요리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다채로운 상상력을 펼친다. 상업 화랑에서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실험적인 전시가 관객을 맞이한다.
지난 1일 서울 강남구 삼성로 지갤러리에서 개막한 기획전 ‘Faisandage 세계로 스며드는 죽음’은 작가이기도 한 우한나의(38) 기획으로 시작했다. 동료 작가인 최수진(40), 슈이 차오(36)를 초대해 위챗과 줌미팅으로 소통한 후 각각 신작을 만들었다. 요리에서 시작했지만 소화와 죽음, 무의식, 권력, 공존 등 인간 존재의 본질적인 담론까지 아우르는 총 32점의 작품이 전시장을 채운다.
전시명 ‘Faisandage(페상다주)’는 사냥한 동물을 바로 조리하지 않고, 어둡고 축축한 곳에 걸어두어 조직이 서서히 분해되고 변형되기를 기다리는 과거 프랑스의 수렵 요리법에서 따왔다. 이는 죽음의 시간을 단순한 소멸이 아닌, 새로운 존재로 전환되고 순환하는 숙성의 과정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담고 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파도처럼 휘감는 거대한 패브릭 설치 작업이 단숨에 시선을 사로잡는다. 최수진 작가의 설치 작업 ‘A Recipe for Night(밤을 통과하는 레시피)’로 가로 16m, 세로 3.5m에 달하는 규모다. 이불감(거즈천) 위에 염색을 하고 문장을 바느질로 새겨 넣었으며, 뜨개질로 그림을 그려 넣었다. 일상의 소재를 섬세하게 캔버스에 담아온 최 작가가 이처럼 거대한 설치물을 선보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작가는 “새벽에 잠들고 깨면서 안갯길을 걸어가는 듯한 풍경을 만들고 싶었다”며 “오렌지 물감을 짜면서 오렌지나 해를 생각하듯, 그림을 그리는 방식대로 작업했다”고 밝혔다.
밤의 시간은 극심한 수면 장애를 앓았던 이들에게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밤은 하루 동안 섭취한 음식물을 소화하는 시간이자 낮 동안 겪은 사건과 상처, 기억과 감정들을 삭이는 순간이기도 하다. 작가들은 이러한 개인적이고 내밀한 시간을 예술적 가치로 승화시켰다.
악몽을 자주 꾼다는 최수진 작가는 “평소 털실로 뭔가를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며 “바느질로 새긴 문장처럼 인간은 읽지만 인공지능(AI)은 해독할 수 없는 글자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뉴욕에 거주하는 슈이 차오 작가는 조개껍데기로 작업하는 독특한 작품 세계를 선보인다. 고향인 광저우의 해산물 시장과 부모님이 정성스레 말려 보내준 조개껍데기에 영감을 받아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혼종 생명체 ‘Sea Lung’을 조각으로 구현했다. 이끼와 바다 달팽이를 혼합한 이 생명체는 광저우의 식탁을 지나 가족의 손을 거쳐 바다 건너 그의 작업실에 도착해 지구촌 공존을 이야기한다.
전시장 중앙에는 마치 한 편의 연극 무대 같은 주방이 차려져 있다. 이번 전시의 기획자이자 참여 작가인 우한나의 설치 작업 ‘키친(Kitchen)’이다. 주방이자 해적선을 연상시키는 이 공간은 싱크대, 조리대(가스버너), 디너 테이블로 구성되어 세상의 모든 ‘먹고 먹히는’ 권력관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늘 먹히기만 하던 약자인 나방이 천적인 박쥐를 요리하는 등 전복된 관계를 보여주며, 인간 사회의 절대 강자인 미식가의 위치를 뒤흔든다. 여기에 생선의 혀를 갉아먹고 사는 기생충과 숙주의 관계를 다룬 기괴한 생선 요리, 그리고 듣기 싫은 말을 귀로 ‘먹어버려’ 생긴 스트레스 조직까지 잔혹한 생태계가 펼쳐진다. 우 작가는 “뒤늦게 신장 기형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면서 내장 조각을 시작하게 됐고, 일에서 타인의 내장을 합법적으로 목격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 시장의 주방이라는 점에 착안해 이번 시리즈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7월 31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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