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암 치료, 종양만 줄이는 시대 끝났다… 핵심은 ‘간 기능 유지’

16 hours ago 1

간암의 최신 치료 트렌드
간 기능 상실땐 후속 치료 무의미… 장기 생존 위한 ‘순차 치료’ 부상
기능 유지하며 6년 장기 생존 입증… 1차 치료 전략 ‘STRIDE 요법’ 주목


국내 간암 치료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과거에는 얼마나 강력하게 종양을 억제하느냐가 치료의 핵심이었다면 최근에는 환자의 간 기능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면서 장기 생존으로 이어가느냐가 더 중요한 기준으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면역항암제 기반 치료가 확대되면서 첫 단추인 1차 치료 단계부터 후속 치료까지 미리 내다보는 ‘장기적 순차 치료 전략’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실제로 간암은 국내 암 발생률 순위에서는 다소 낮아졌지만 사망률은 여전히 높다. 2024년 기준 국내 암 사망 원인 2위가 간암이다. 의료진은 그 이유로 간암의 특수성을 꼽는다. 상당수 환자가 암을 진단받는 시점에 이미 간염이나 간경변(간경화) 등 기저 간질환을 동반하고 있어 단순히 암세포만 제거한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도영 세브란스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간암은 다른 암과 달리 종양 치료와 간 기능 관리가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며 “아무리 좋은 항암제라도 간 기능이 무너지면 치료 자체를 지속하기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김도영 세브란스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최근 간암 치료에서는 간암을 강력하게 억제하는 것보다 ‘간 기능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면서 장기 생존으로 이끌고 가느냐’가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이진한 의학전문기자·의사 likeday@donga.com

김도영 세브란스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최근 간암 치료에서는 간암을 강력하게 억제하는 것보다 ‘간 기능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면서 장기 생존으로 이끌고 가느냐’가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이진한 의학전문기자·의사 likeday@donga.com

간암 치료 핵심은 ‘기능 유지’와 ‘치료 지속성’

간암이 여전히 난치암으로 평가받는 가장 큰 이유는 환자 상당수가 이미 간 기능이 저하된 상태에서 발견되기 때문이다. 간암은 초기 증상이 거의 없다 보니 진행성 간질환으로 병원을 찾았다가 뒤늦게 암을 발견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 경우 간 기능과 전신 상태가 이미 악화돼 있어 적극적인 항암 치료를 시작조차 하기 어려운 사례가 많다.

의료진은 간 건강 상태를 파악하는 지표인 ‘차일드-퓨(Child-Pugh)’ 분류에서 B 또는 C 단계에 해당하는 환자들의 치료가 특히 까다롭다고 입을 모은다. 간 기능이 떨어지면 황달이나 복수 증상이 나타나고 식사나 거동이 어려울 정도로 전신 상태가 급격히 나빠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간경화가 심한 환자는 식도정맥류 출혈 위험까지 커 항암제를 사용하는 데 제약이 따른다. 전문의들은 간암 치료에서 단순히 항암제의 단기 반응률(종양이 줄어드는 비율)만 봐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환자가 얼마나 오랫동안 좋은 간 기능을 유지하며 다음 후속 치료로 연결될 수 있느냐가 전체 생존 기간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간암은 재발 위험이 매우 큰 암종이다. 한 연구에 따르면 약 8년의 추적 기간 환자의 66.2%가 재발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1차 치료가 실패하더라도 2차, 3차 치료로 유연하게 이어지는 ‘순차 치료 전략’이 필수적이다.

문제는 1차 치료에서 간 기능이 악화되면 이후 치료 기회 자체가 박탈될 수 있다는 점이다. 김 교수는 “전체 환자의 60∼70%는 결국 2차 치료가 필요한 상황에 놓인다”며 “1차 치료에서 간 기능을 얼마나 잘 보존하느냐가 향후 치료 전략 전반을 결정짓는다”고 말했다.

‘STRIDE 요법’ 간 기능 지키며 장기 생존도

이런 흐름 속에서 최근 주목받는 1차 치료 전략이 바로 ‘더발루맙·트리멜리무맙 병용 요법’(STRIDE 요법)이다. STRIDE 요법은 2023년 국내 허가 이후 올 3월부터 건강보험 급여가 적용되면서 환자들의 접근성이 좋아졌다.

STRIDE 요법의 가장 큰 특징은 간 기능을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하면서도 탁월한 장기 생존 효과를 입증했다는 점이다. 실제 글로벌 임상 연구(HIMALAYA) 결과, 현재까지 허가된 간암 치료 옵션 가운데 최초이자 유일하게 ‘6년 장기 생존 데이터’를 확인하며 장기 생존의 길을 열었다.

투여 방식도 환자 친화적이다. 두 가지 면역항암제 중 트리멜리무맙은 첫 주기에 단 1회만 투여해 면역 세포를 강력하게 활성화하고, 더발루맙은 4주 간격으로 유지 투여하는 구조다. 의료진은 이를 통해 환자의 병원 방문 및 치료 부담을 크게 줄이면서도 장기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평가한다. 특히 부작용 측면에서 식도정맥류 출혈 위험과 관계없이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점도 큰 강점이다. 이는 출혈 위험 때문에 기존의 ‘면역항암제+표적치료제’ 병용 요법을 쓰기 어려웠던 환자들에게 훌륭한 대안이 된다.

1차 ‘면역항암’ 후 2차 ‘표적치료’로 시너지

최근에는 1차 치료 후 선택할 수 있는 2차 치료 선택지가 확대됐다는 점도 고무적이다. 특히 올해부터 대표적인 표적치료제인 ‘렌바티닙’의 2차 치료 건강보험 급여 적용이 가능해지면서 환자들의 경제적 부담이 크게 줄었다.

다만 렌바티닙 급여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전제 조건이 있다. 바로 환자의 간 기능이 가장 양호한 단계인 ‘차일드-퓨 A’ 상태로 유지되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만약 1차 치료를 받는 동안 간 기능이 관리되지 않아 B나 C 단계로 악화되면 효과적인 2차 치료제가 있어도 급여를 적용받지 못해 치료를 포기해야 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생길 수 있다. 의료진이 1차 치료 단계에서부터 후속 치료의 급여 조건까지 계산해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1·2차 치료 간 시너지도 크다. 1차 치료로 쓰이는 STRIDE 요법은 혈관 생성(VEGF) 억제 기전을 포함하지 않는 순수 면역항암 기반 치료인 반면 2차 치료제인 렌바티닙은 VEGF를 억제하는 표적치료제다. 이처럼 1차와 2차에 서로 다른 공격 기전의 치료제를 순차적으로 활용하면 암세포가 약에 내성을 갖는 부담을 줄이면서 치료 효과를 안정적으로 이어갈 수 있다.

김 교수는 “진행성 간암이라도 1차 치료부터 간 기능을 최대한 유지하며 종양을 관리하면 장기 생존할 가능성은 충분하다”며 “간암 역시 암을 완전히 없애는 것에만 매달리기보다 평생 관리해 나가는 만성질환의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진한 의학전문기자·의사 liked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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