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렉스 에티몰로지’란 ‘자랑용(flex) 어원풀이(etymology)’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쓰는 말들의 본래 뜻을 찾아, 독자를 ‘지식인싸’의 세계로 안내합니다. 작은 단서들로 큰 사건을 풀어 나가는 셜록 홈즈처럼, 말록 홈즈는 어원 하나하나의 뜻에서 생활 속 궁금증을 해결해 드립니다.
우리는 단어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지만, 정작 그 뜻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쓰곤 합니다. 고학력과 스마트 기기가 일상화된 시대에, ‘문해력 감소’라는 ‘글 읽는 까막눈 현상’은 오히려 증가하고 있습니다. 단어는 사물과 현상의 특성을 가장 핵심적으로 축약한 기초개념입니다. 우리는 단어의 뜻을 찾아가면서, 지식의 본질과 핵심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학생들의 학업성취도와 학교를 떠난 이들의 지식 인싸력도 레벨업됩니다.
1992년 봄, 스페인 바르셀로나 올림픽이 열리기 몇 달 전이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생이었던 저는, 처음으로 노래방에 발을 디뎠습니다.
엄청난 감동이었습니다. 내가 가요톱10에 나오는 인기가수들처럼 화려한 반주에 노래를 부를 수 있다니!!! 그전까지 기껏해야 학교 음악시간에 선생님 풍금 소리에 맞춰 ‘등대지기’나 ‘겨울나무’를 부르는 게 고작이었는데, 읍면리 단위 사는 가난뱅이 촌보이에게도 김현식의 ‘내 사랑 내 곁에’와 이승환의 ‘세상에 뿌려진 사랑만큼’을 부를 수 있는 기회가 온 겁니다. 단돈 500원에!
처음 갔을 때 노래방 요금은 곡당 500원이었습니다. 당시 농심 신라면 두 개 반의 가격으로, 지금 실물가치로 환산하면 대략 2,500원 안팎입니다. 이전에 상상도 못 했던 환상의 세계로 가는 입장권 가격으로는 저렴했지만, 선뜻 용기를 내기는 어려웠습니다. 한 곡만 부르고 나오지는 않았으니까요. 이듬해였던 1993년부터 노래방들은 시간제 요금을 받기 시작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때부터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 같은 긴 노래를 부르는 녀석들은, 우정의 손찌검에 정신을 번쩍 차렸습니다. 대개 각자 돌아가며 새로운 노래에 도전해 보거나 좋아하는 노래를 한 곡씩 부르며, 곡 배분의 평등으로 노래방의 평화를 수호했습니다. 어쩌다가 매혹적인 이성이 함께하면, 숨겨뒀던 필살곡에 영혼을 한 줌씩 연소시키며 시간을 더 쓰는 녀석들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그 순간만큼은 우리 심장에서 응원의 똘레랑스[tolerance. 관용(寬容: 너그러울 관, 받아들일 용)]가 움텄습니다. B612의 ‘나만의 그대 모습’이나 신성우의 ‘노을에 기댄 이유’ 같은 기나긴 락 발라드(rock ballad) 곡을 부르는 친구가 있어도, 누구 하나 탬버린이나 선곡목록도서로 머리통을 가격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고등학교 교육까지 마친 지성인이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