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나’를 만들어 진짜 ‘나’를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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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아트 선구자’ 린 허쉬만 리슨… 亞최초 미술관 개인전 서울서 개막 여러 개의 자아로 정체성 갈등 표현 사회적 ‘틀’ 맞서 가상 인물 만들기도 카메라-리모컨 등 활용한 작품 눈길 “기술을 물감처럼 사용해 질문 표현” 린 허쉬만 리슨은 사회가 정해주는 정체성과 사람의 내면 사이의 복잡한 관계를 탐구했다. 왼쪽 사진은 1970년대 리슨이 만든 가상의 인물 ‘로베르타 브라이트모어’의 구성 차트다. 그녀가 어떤 화장품을 쓰는지까지 구체적으로 설정했다.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평생 단 하나의 얼굴을 지키며 사는 게 옳았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불과 몇십 년 사이에 ‘부캐’로 다른 자아를 실현하는 게 자연스러워졌다. 소셜미디어에선 여러 계정을 만들어 다양한 삶을 사는 이도 적지 않다. 그런데 무려 50년 전에 ‘여러 개의 자아’로 미술계에 뛰어든 작가가 있다. 미국 출신의 미디어아트 선구자, 린 허쉬만 리슨(85)이다. 오른쪽 사진은 인형 작품 ‘사이버로베르타’ 설치 전경.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오른쪽 사진은 인형 작품 ‘사이버로베르타’ 설치 전경.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리슨의 아시아 최초 미술관 개인전 ‘린 허쉬만 리슨: 나의 [나]들’이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서 21일 개막했다. 리슨은 70대에 접어든 2014년 독일 카를스루에 예술미디어센터(ZKM) 회고전으로 뒤늦게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2021년 미 뉴뮤지엄 회고전은 “기술과 정체성의 관계를 진단한 예지자”라는 호평을 받았다. 이번 한국 전시는 리슨이 60년 넘게 이어 온 예술 세계를 200여 점의 작품으로 조명한다. 초기 작품인 1960년대 드로잉엔 사람들 앞에 서 있거나 홀로 앉아 있는 인물이 등장한다. 공통점은 손가락질 받거나, 두 개 이상의 얼굴을 하고 있다는 점. 여성으로서 겪는 ‘사회가 요구하는 정체성과 자기 내면 사이의 갈등’을 표현했다. 작가는 이런 고민 앞에서 물러서지 않았다. 사회가 요구하는 답답한 틀은 상자에 넣고(설치 작품 ‘숨 쉬는 기계’), 스스로 여러 개의 ‘탈’을 만들기 시작했다. 1970년대에는 가상의 인물 ‘로베르타 브라이트모어’를 창조해 그 삶을 기록하거나, 심지어 자기가 가명의 평론가로 나서기도 했다. 리슨은 당시 미술계의 높은 벽에 막혀 여성 작가에게 전시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자, 가상의 평론가 3명을 만들어 직접 평론을 실었다. 이 과정은 매우 치밀하다. 작가는 전통적 남성 미술 비평가 ‘허버트 구드’와 진보적이고 날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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