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를 영화로 읊다] 〈132〉 시인이란 숙명
고려시대 이규보는 끼니도 거른 채 술 마시고 시만 써대는 자신의 집착이 병이 아닌가 걱정했다(‘詩癖篇’). 그러던 차에 우연히 읽은 당나라 백거이 시에 마음의 위안을 얻어 다음과 같이 썼다.
영화 속 인물들이 과거에서 이상을 찾고 위안을 받았다면, 시인은 옛 시인으로부터 해답을 찾고자 했다. 흥미로운 점은 시인이 위안의 대상으로 삼았던 백거이 역시 전대 도연명에게서 해답을 찾았다는 것이다. 이규보가 백거이의 시를 통해 자신의 고민을 해소했던 것처럼, 백거이는 이전 시기 도연명의 시에서 자신의 좌절에 대한 해결책을 찾았다(‘效陶潛體詩’16수).
영화 속 길은 결국 상업 작가로서의 안락한 삶을 포기하고 파리의 다락방에서 소설을 쓰며 살기로 결심한다. 시인도 벼슬을 사직하고 앞으로도 시작에 몰두하겠다는 속내를 드러낸다. 시와 영화 모두 옛사람의 자취에서 갈 길을 찾은 것처럼 보이지만, 내면의 열망이 또 다른 나의 발견으로 귀결된 것일 뿐이다. 시인이란 숙명은 백거이만이 아니라 시인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임준철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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