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키 리카넨 국제회계기준재단 의장 인터뷰
제대로 된 공시, 비용 아냐
글로벌 투자자 신뢰 인프라
한국 亞에서 가장 이른 IFRS 도입
코리아 디스카운트 완화에 기여
“투자자들이 기업 공시를 같은 기준으로 비교할 수 있어야 시장 신뢰가 높아집니다. 그래야 시장 유동성이 커지고 기업의 자본조달 비용도 낮아질 수 있습니다.”
최근 방한한 얼키 리카넨 국제회계기준(IFRS)재단 의장은 매일경제와 만나 한국 자본시장이 글로벌 투자자의 신뢰를 얻기 위한 조건으로 ‘공시의 비교가능성’을 꼽았다.
한국 기업의 재무정보와 지속가능성 정보가 해외 기업과 같은 잣대로 비교될 수 있어야 투자자 입장에서 불확실성이 낮아지고, 기업도 더 낮은 비용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는 의미다.
IFRS는 전 세계 140개 이상 국가·지역에서 기업 재무제표 작성에 쓰이는 ‘국제 회계 언어’다. IFRS재단은 국제회계기준을 만드는 IASB와 지속가능성 공시 기준을 제정하는 ISSB를 산하에 두고 있다. 핀란드 중앙은행 총재와 유럽연합(EU) 집행위원, 유럽중앙은행(ECB) 정책위원을 지낸 리카넨 의장은 2018년부터 IFRS 재단을 이끌고 있는 인물이다.
현재 국내에서는 밸류업 공시의 실효성과 지속가능성 공시 의무화 속도를 둘러싼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이와 관련, 리카넨 의장은 제도의 형식보다 투자자들이 믿고 비교할 수 있는 정보 체계가 핵심이라고 짚었다. 글로벌 투자자들은 좋은 이야기보다 비교 가능한 숫자와 일관된 기준을 본다는 것이다.
공시는 기업에 부담이 될 수 있지만, 제대로 설계된 공시는 비용이 아니라 신뢰를 만드는 인프라가 된다. 한국 기업이 세계 시장에서 더 낮은 비용으로 자금을 조달하고 장기 투자자를 끌어들이려면 결국 국제적으로 통하는 언어로 자신을 설명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리카넨 의장은 현재 한국 정부의 밸류업 프로그램이 자율공시 중심으로 운영되는 데 대해 의무공시 필요성을 직접 권고하지는 않았다. 대신 “공시가 자율이든 의무든 중요한 것은 기준이 실제로 같은 방식으로 적용되느냐” 라고 설명했다.
그는 “의무공시는 시장의 신뢰를 높이는 데 더 확실한 방식일 수 있다”면서도 “자율공시라 하더라도 기업들이 같은 기준을 같은 방식으로 적용할 유인이 있다면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는 한국 자본시장의 과제인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와도 맞닿아 있다. 기업이 내놓는 정보가 제각각이면 투자자는 이를 할인해서 볼 수밖에 없다. 반대로 같은 기준으로 작성된 정보가 쌓이면 기업 간 비교가 쉬워지고, 투자자는 더 낮은 불확실성 속에서 자금을 넣을 수 있다.
리카넨 의장도 “IFRS 도입으로 인한 한국 기업들의 공시 개선은 한국 자본시장 투명성을 높이고 코리아 디스카운트 완화에 기여해왔다” 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이 2007년 IFRS 회계기준 도입 로드맵을 발표하고, 아시아 주요국 중 비교적 가장 이른 시기에 국제 기준을 수정 없이 전면 도입한 점을 높게 평가했다. 그는 “IFRS 기준은 투명하고 글로벌하며, 여러 국가의 기업 정보를 비교할 수 있게 해준다”며 “한국은 IFRS에서 중요한 국가 중 하나”라고 말했다.
지속가능성 공시와 관련해서는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가 제정한 IFRS S1·S2 기준의 역할을 강조했다. S1은 지속가능성 전반의 일반 공시 원칙을, S2는 기후 관련 정보 공시를 다루는 기준이다. 리카넨 의장은 “S1과 S2는 지속가능성 공시의 글로벌 베이스라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베이스라인이란 각국 기업과 투자자가 공통으로 활용할 수 있는 최소한의 국제 기준선을 뜻한다.
현재 EU의 기업지속가능성보고지침(CSRD), 미국 캘리포니아 기후공시 규제 등 각국의 공시 요구가 겹치면서 한국 수출 대기업들은 같은 정보를 여러 기준에 맞춰 반복 보고해야 하는 부담을 느끼고 있다.
이와 관련, 리카넨 의장은 “기업들의 부담과 문제 제기는 정당하다”며 “누군가 추가적인 요구사항을 더하더라도 같은 내용을 두 번 보고할 필요는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하나의 글로벌 베이스라인이 있고, 여기에 각 지역이나 제도의 추가 항목을 더하는 방식이어야 한다”며 공시 제도 간 상호운용성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한국의 IFRS 거버넌스 대표성 문제에 대한 질문에는 “문은 열려 있다”고 답했다. 한국은 지난 1월 최중경 전 지식경제부 장관이 IFRS재단 평의원으로 선임됐고 금융위원회도 모니터링이사회에 참여하고 있지만, 기준을 직접 만드는 IASB·ISSB 보드에는 현재 한국인이 없다. 그는 “보드 위원은 자격을 기준으로 선발한다”며 “공석이 생기면 한국 후보에게도 기회는 언제나 열려 있다”고 말했다.
리카넨 의장은 세계 경제가 미·중 갈등과 보호주의, 공급망 재편 속에 분절될수록 모두가 공유하는 글로벌 기준의 가치는 더 커진다고 내다봤다. 그는 “기후 대응 같은 막대한 공공 과제를 풀려면 결국 민간 자본을 끌어와야 하는데, 그 자본은 건전한 기업 보고가 있어야 움직인다”며 신뢰할 수 있는 공시가 투자의 출발점임을 재차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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