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를 뒤흔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상호관세가 미 법원 판결로 제동이 걸렸다. 미국과의 관세 협상 전략에도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①어떤 관세가 무효화되나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에 근거해 세계 각국에 상호관세(기본관세+국가별 개별관세)를 부과했다. 이후 기본관세 10%만 부과하고 나머지는 7월 초로 관세 부과 시점을 미뤘다. 하지만 이번 법원 판결로 기본관세는 물론 국가별 개별관세의 법적 정당성이 상실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캐나다·멕시코·중국에 부과한 이른바 ‘펜타닐 관세’도 IEEPA에 따라 부과된 만큼 이번 판결로 효력이 사라질 상황이 됐다. 펜타닐 관세는 현재 캐나다와 멕시코 제품 일부에 25%, 중국산 제품에 20%가 적용되고 있다.
②재판부 판단 근거는
재판부는 IEEPA가 제정(1977년)되기 전 도입된 무역법(1974년)에 이미 무역적자 대응 방법이 규정(122조)돼 있는 점을 들어 상호관세 조치가 대통령 권한을 넘어섰다고 판단했다. 펜타닐 관세 역시 예외적이고 비상한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IEEPA를 쓴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했다. 또 외국 정부가 마약 밀매자와 마약을 차단하지 않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 합법적인 수입에 관세를 부과하는 조치 사이에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관세가 외국 국가들이 행동을 바꾸도록 ‘압력’을 가하고 ‘레버리지’를 창출하기 때문에 허용될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법원은 “이런 해석을 따른다면 사실상 어떠한 조치도 허용하게 되는 것”이라며 트럼프 행정부 입장을 거부했다.
③관세 무효화 시점은
법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IEEPA에 근거해 부과한 관세에 대해 “취소되며, 그 효력은 영구히 금지된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10일 내 관세 조치를 되돌리는 행정명령을 내놓으라고 정부에 명령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즉각 항소한 만큼 실제 관세 부과가 언제부터 중단될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지금까지 낸 상호관세 등을 언제 돌려받을 수 있을지도 확실하지 않다. 미국 세관당국이 내놓을 지침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다.
④미국과 협상 안 해도 되나
이번 법원 판결로 상호관세의 정당성이 사라진 만큼 한국을 포함한 한국 정부는 미국과의 무역협상에서 좀 더 여유를 갖게 됐다. 상호관세 중 국가별 개별관세 유예 시점인 7월 8일까지 관세 협상을 서둘러야 할 필요도 줄었다. 다만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의 무역적자를 줄이겠다는 계획을 바꿀 가능성은 낮다. 기존 무역협정을 재검토하고, 품목별 관세를 부과하며 압박하는 행동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자동차, 철강, 알루미늄 외에 반도체, 의약품, 목재 등으로 품목관세를 확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IEEPA 이용이 막히더라도 트럼프 정부는 다른 관세 조항을 적용해 비슷한 정책을 시도할 수 있다.
특히 150일간 최고 15% 관세 부과를 허용하는 무역법 122조와 미국을 상거래에서 차별한 나라의 수입품에 최대 50% 관세를 부과할 수 있게 한 338조는 유력한 대체후보다.
⑤법원 판결이 뒤집힐 가능성은
트럼프 행정부는 이번 법원 판결에 즉각 항소했다. 쿠사 데사이 백악관 부대변인은 “국가 비상사태에 적절히 대처하는 방법을 결정하는 것은 선출되지 않은 판사들이 할 일이 아니다”고 했다.
항소심은 연방순회항소법원에서 맡는다. 최종적으로는 대법원까지 소송이 이어질 수 있다. 항소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현재 판결의 효력이 유지된다. 다만 트럼프 행정부가 가처분신청을 해 법원이 받아들일 경우 관세 효력이 연장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⑥다른 관세에 미치는 영향은
이번 법원 판결은 IEEPA만을 다루고 있다.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라 철강, 알루미늄, 자동차, 자동차 부품에 부과된 품목별 관세 25%는 이번 판결의 영향을 받지 않고 그대로 유지된다. 반도체, 구리, 목재, 의약품과 같이 아직 관세 부과가 되지 않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부과하겠다고 한 품목도 이번 판결과 무관하다. 철강, 알루미늄 관세는 트럼프 1기 때부터 부과됐고 전임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유지된 만큼 법적으로 문제가 될 여지가 적다.
워싱턴=이상은 특파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