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증시가 연일 신기록 행진을 벌이고 있다. 인공지능(AI) 투자 붐이 이어지는 가운데 미국 중앙은행(Fed)의 금리 인하 재개로 경제가 회복할 것이라는 기대까지 가세했다. 월가는 S&P500지수가 연내 7000선을 넘을 것으로 관측한다. 일부에서 1999년과 같은 기술주 버블을 경고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7일(현지시간) 월가에 따르면 도이치뱅크, BMO캐피털마켓, 야데니리서치, 펀드스트랫 등은 S&P500지수의 연말 목표를 7000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날 6714.59로 마감한 S&P500지수는 올해 벌써 14% 이상 올랐지만, 연내 추가로 4% 넘게 더 뛸 것으로 예상한다. 오펜하이머는 7100, 골드만삭스는 6800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지속되는 AI 투자 지출과 기업의 탄탄한 실적 성장세, Fed 금리 인하 등의 기대 때문이다. 오픈AI는 최근 엔비디아, AMD와 각각 1000억달러, 600억달러 규모의 AI 컴퓨팅 공급 계약을 맺었고, 오라클은 4550억달러에 달하는 계약 잔액을 공개했다. 이달 말 한국에서 열릴 미·중 정상회담으로 무역전쟁 긴장도 낮아질 것으로 본다.
지난달 재개된 Fed의 금리 인하도 상승장 기대를 높이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올해 추가로 두 차례, 내년까지 네 차례 금리 인하를 전망하며 “기업들의 주가 수준은 역사적인 고점이지만, 거시경제적 배경과 기업 펀더멘털을 고려하면 적정 가치에 가깝다”고 분석했다.
월가에서는 AI 과잉 투자 우려, 연방 대법원의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 관세 불법 판결 가능성, 경제 성장 및 인플레이션율 반등에 따른 Fed의 매파 전환 등을 랠리를 방해할 요소로 꼽는다.
일부에서는 증시가 연일 고점을 경신하는 상황에서 Fed의 금리 인하가 1999년처럼 버블을 부를지 모른다고 지적한다. 월가의 유명 투자자인 폴 튜더 존스는 최근 “폭발적 상승(blow off)을 위한 모든 요소가 갖춰진 것 같다”며 “지금이 1999년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AI 랠리 속 금리인하 땐 골디락스 온다"…3분기 실적이 시험대
"S&P500지수 연내 7000 간다" 월가 자신감
“투자자들은 지금 인생에 두 번 오기 힘든 기술 혁명의 기회를 맞고 있다.”
관세 불확실성과 7년 만에 재연된 미국 연방정부 셧다운(일시적 업무 정지), 가라앉지 않는 기술주 거품 논쟁까지. 산적한 과제에도 월가 투자은행들이 증시 강세론을 쏟아내는 배경엔 인공지능(AI)이 호황을 이끌 것이라는 낙관이 깔려 있다. 최근 미국 S&P500지수가 내년 말 9000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전망해 주목받은 줄리언 이매뉴얼 에버코어ISI 수석 주식·퀀트 전략가는 “지금은 (30년 전) 인터넷 혁명처럼 또 다른 AI 혁명 랠리가 펼쳐지고 있다”며 “기술 혁명이 주가와 사회 전반의 성장률을 사상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있다”고 했다.
◇금리 인하가 증시 이끌 동력
미국 증시는 AI 낙관론에 힘입어 지난 4월 저점 이후 불과 5개월 만에 31% 상승했다. 경기 침체기 때 단기 반등한 경우를 제외하면 약 20년 만에 가장 좋은 성과다. 이미 쉼 없이 달려온 미국 증시를 향후 더 높은 고점으로 이끌 핵심 동력은 미국 중앙은행(Fed)의 금리 인하다.
지난달 8개월 만에 금리 인하를 재개한 Fed는 이달과 오는 12월 금리를 추가 인하할 것으로 기대받고 있다. 미국 경제는 고용시장이 둔화하는 와중에도 올 2분기 3.8% 성장하며 침체 위험을 일단 비껴갔다. 경쟁적으로 늘린 AI 인프라 설비투자가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한 덕분이다. 여기에 Fed의 연속 금리 인하까지 가세하면 위험자산에 우호적인 ‘골디락스’ 시나리오가 펼쳐질 수 있다. 최근 글로벌 주식에 대한 향후 3개월 투자의견을 ‘중립’에서 ‘비중확대’(매수)로 상향한 골드만삭스의 크리스티 뮐러글리스만 자산배분전략 총괄은 “탄탄한 기업 이익 증가와 Fed의 금리 인하, 그리고 세계적인 재정 확장이 증시에 지속적 상승 모멘텀을 줄 것”이라고 평가했다.
◇기업 실적도 상승 뒷받침
7월 발효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감세법도 경기 개선과 주가 상승 기대감을 키우는 요인이다. 이 법엔 기업의 장비·기계·연구개발(R&D) 지출에 대해 공제 한도를 늘리고 즉시 비용 처리할 수 있게 하는 조항이 포함됐다. 두브라브코 라코스부야 JP모간 글로벌 시장전략 총괄은 “기업 투자의 물꼬를 터 관세 및 이민 정책으로 인한 성장 역풍을 일부 상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금리 인하와 감세는 증시의 펀더멘털과 직결되는 기업 실적에 긍정적이다. 월가는 오는 14일 대형 은행을 시작으로 막을 올리는 3분기 기업 실적 발표 시즌이 연말 랠리 여부를 가늠하는 중요한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본다. 최근 S&P500지수 연말 목표치를 7000으로 상향한 야데니리서치는 “3분기에도 예상보다 좋은 기업 실적이 증시의 기록적 상승을 뒷받침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현재 월가가 추정하는 3분기 S&P500 기업 주당순이익(EPS) 증가율은 전년 동기 대비 6%다. 야데니리서치는 10.7%로 전망했다.
10월 하반기부터 연말까지는 역사적으로 미국 증시 성과가 가장 좋았던 시기다. S&P500지수는 1950년 이후 4분기에 4.9% 상승률(중간값)을 기록했다. 상승 확률은 81%였다. 특히 올해처럼 Fed가 9월부터 금리를 인하한 1998년, 2024년에는 4분기 평균 상승률이 13.8%에 달했다.
◇美 증시 블랙스완은
일각에선 단기 조정 가능성을 거론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바클레이스는 미국 증시의 핵심 엔진인 AI 설비투자가 가장 큰 ‘블랙스완’(예기치 못한 위기) 리스크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AI 모델 효율이 개선되거나 전력 부족 또는 자금 조달 압박으로 데이터센터 자본지출이 현재 예고된 것보다 향후 2년간 20% 줄어들 경우 S&P500 기업 EPS가 3~4% 감소할 것이라는 분석에 따라서다.
월가는 미국 경제가 예상보다 더 강하거나 인플레이션이 다시 가속화해 Fed가 시장 기대만큼 금리를 많이 내리지 못하는 시나리오도 경계하고 있다. 이미 시장에 과도하게 반영된 낙관론이 되돌려지면서 일시적인 충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뉴욕=김현석/빈난새 특파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