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당시 청와대 주도로 이뤄진 주택, 소득, 고용 국가통계 조작 사건을 맡은 감사원이 감사 착수 3년 만에 관련자들에 대한 징계 요구와 인사자료 통보 등 최종 조치를 내렸다. 감사원은 2023년 중간 감사결과를 발표하며 김수현·김상조 전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 김현미 전 국토부 장관, 황덕순 전 일자리수석, 홍장표 전 경제수석, 강신욱 전 통계청장 22명을 직권남용, 업무방해, 통계법 위반 등의 혐의로 검찰에 수사 의뢰했고 검찰은 지난해 이들 가운데 등 11명을 기소,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원장님 사표 내시죠"...협박성 지시로 주택 통계 '마사지'
감사원은 17일 이 같은 내용의 '주요 국가통계 작성 및 활용실태' 감사보고서를 공개했다. 전국주택가격동향조사(주택통계), 가계동향조사(소득통계), 경제활동인구조사(고용통계)를 대상으로 집중 감사를 벌인 끝에 4년 넘게 광범위하게 통계를 조작했다는 결론을 확정했다.
국토교통부는 통계 기관인 한국부동산원(옛 한국감정원)에 예산 삭감과 인사 조치 등의 압박을 가해 통계를 102차례에 걸쳐 왜곡한 것으로 드러났다. 감사원에 따르면 청와대와 국토부는 2017년 6월부터 부동산원에 '집계 결과를 미리 알고 싶다'며 통계 기관인 한국부동산원(옛 한국감정원)에 작성 중인 통계를 사전에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 부동산원은 통계 신뢰성 확보가 어렵다는 등의 이유로 최소 12차례 거부 의사를 밝혔으나 청와대와 국토부는 오히려 추가 자료를 요구했다.
2019년 상반기 서울 집값이 오른 것으로 집계되자, 청와대·국토부는 대통령·장관 취임 2주년이라는 이유로 부동산원에 변동률 하향 조정을 요구했다. 실무자들이 저항하자 7~8월에는 국토부 실장이 부동산원장을 불러 "원장님 사표 내시죠"라며 압박했다. 국토부 과장은 부동산원 부장에게 “제대로 협조하지 않으면 주택동향조사 업무를 다른 기관으로 넘기고 조직과 예산은 날려버리겠다”는 말까지 했다. 민간아파트 분양가 상한제 적용 검토 등 정부 발표에도 집값이 오르자 통계치를 조작하기 위해서였다.
2020년에는 4월 총선을 앞두고는 여론을 의식해 수도권 일대 집값 통계에도 손을 댔다. 당시 '7·10 부동산대책' 발표 직후에도 집값 상승세가 지속되자 청와대는 국토부에 "국토부는 지금 뭐하는 거냐"고 질책했다. 국토부는 정부 대책으로 시장이 안정된 것으로 가장하기 위해 상승률을 한 자릿수(0.09% 이하)로 맞추도록 부동산원에 요구했고, 부동산원은 표본가격을 총 149차례 수정해 전주보다 변동률이 낮게 하향 조정(0.12%→0.09%)해 공표했다. 부동산원 관계자들은 단체 대화방에서 "얘들아, 국토부에서 낮추란다. 낮추자", "최근에는 대놓고 조작하네요"라는 메시지를 남기기도 했다.
'소득 불평등 역대 최악, 비정규직 급증' 통계 은폐
청와대가 문재인 정부의 핵심 정책 '소득주도성장'의 성과를 홍보하기 위해 통계를 조작한 사실도 드러났다. 감사원에 따르면 통계청은 2017년 2~4분기 가계소득을 가집계한 결과, 전년 대비 감소한 것으로 나타나자, 정당한 절차 없이 표본설계에 없는 가중값을 임의로 적용해 가계소득을 증가시키는 등 통계를 왜곡했다.
2018년 1분기엔 소득 분배상황이 악화되면서 소득5분위 배율이 역대 최악(5.95)으로 나타나자, 통계청은 청와대 지시에 따라 임의로 가중값 적용 기준을 변경해 상황이 덜 악화된 것처럼 소득5분위 배율 수치를 낮춘 통계와 보도자료 등을 냈다. 청와대 경제수석실은 노동연구원 소속 연구원에게 개인적으로 분석을 의뢰한 뒤 이 보고서를 바탕으로 대통령에게 '최저임금 인상으로 개인 근로소득 불평등은 개선됐다'고 보고하기도 했다.
이듬해엔 비정규직 비율이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자 고용 부문 통계인 경제활동인구조사의 근로형태별 부가조사를 결과 발표를 조작했다. 통계청은 2019년 경제활동인구조사의 근로형태별 부가조사 가집계 결과, 비정규직(기간제) 근로자 급증했다고 보고하자 청와대는 '있을 수 없는 수치’라고 질타하며 '통계 조사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하라'고 지시했다. 통계청은 결국 보도자료 인포그래픽에서 '비정규직 86만7000명 증가' 등의 수치를 모두 삭제했다.
감사원은 이 같은 일을 저지른 대통령비서실·국토부·부동산원·통계청의 위법·부당하게 업무처리한 관련자 총 31명에 대해 징계요구(14명)·인사자료통보(17명) 등 엄중 조치하는 한편, 국토부와 통계청 등에 통계의 정확성·신뢰성 제고 방안을 마련하고 향후 관련 업무를 철저히 하도록 제도개선 통보 및 주의요구 처분했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