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사고 예방 목적으로 정부가 집행하는 노후 장비 교체 지원금이 중국산 장비 구매에 집중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국산 장비 육성을 위해 마련한 인증 제도는 허술하게 운영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후 장비 교체 자금을 지원할 때 국내 제조업 생태계에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세금으로 중국산 장비 지원
5일 고용노동부에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에 따르면 정부는 올해 노후 장비 교체를 위한 ‘안전동행 지원사업’에 3320억원을 배정했다. 2021년부터 시행한 정부 사업이다. 사출성형기, 절곡기, 레이저가공기 등 노후 장비를 교체하는 50명 미만 중소기업은 장비 가격의 50%(최대 1억원 한도)를 지원받는다. 소성가공, 주조, 표면처리 등 뿌리 기술을 활용하는 영세 제조업체의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사업이다.
산업안전보건공단은 300인 이하 중소·중견기업에 ‘산업재해 예방 시설자금’도 지원하고 있다. 15억원 한도로 연간 1.5%의 저리로 자금을 빌려주는 사업으로, 올해 총 5388억원이 책정됐다. 안전동행 지원사업처럼 중대 재해 예방을 위한 노후 장비 교체 등에 쓰인다.
관련 업계는 이런 정책 자금의 상당액이 저가의 중국산 장비 구매에 사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출성형기 제조업체 B사 대표는 “최근 차량용 플라스틱 부품을 생산하는 거래처가 7000만원짜리 중국산 사출기를 구입하겠다고 했다”며 “값이 30% 이상 싼 중국산을 당해낼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국내 레이저가공기 제조업체의 한 관계자도 “6㎾ 표준장비 기준으로 국산이 3억원대, 중국산이 1억원대로 가격 차가 커 대부분 중국산 제품 구매에 정책 자금이 쓰인다”며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한국에 진출한 중국 업체가 30곳이 넘는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김위상 국민의힘 의원에 따르면 2024년부터 2025년까지 2년간 레이저가공기 안전동행 지원사업 중 외국산 장비 지원은 총 739건으로 국산 장비 구매(189건)보다 약 4배 많았다. 같은 기간 전단기와 절곡기 실적도 외국산 장비 구입 지원이 총 490건으로, 국산 장비 지원 건수(262건)의 약 두 배다.
◇정부 지원금 받으려 인증 조작도
국산 장비 구매를 지원하기 위한 인증 제도는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절곡기는 현재 자율안전확인신고(KCS) 인증을 받은 제품만 수입할 수 있지만, 실제 수입 과정에선 인증 여부가 제대로 검증되지 않고 있다. 절곡기 제조업체 관계자는 “절곡기가 아니라 다른 성형 기계 등으로 수입한 뒤 전문 브로커를 통해 KCS 인증을 취득하고 용도를 다시 변경해 공급하는 사례가 수두룩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산업 재해를 줄이기 위해 지원한 정책 자금이 안전 기준에 미달하는 중국산 장비 구매에 쓰인다는 비판도 많다. 레이저 가공기업체 관계자는 “작업자가 실명할 위험성 때문에 국산 장비는 레이저 불빛을 차단하는 커버(덮개)를 씌우지만 중국산은 이런 안전 기능 자체가 없다”고 했다.
플라스틱 압출성형기 제조업계는 정부 정책을 계기로 중국산 제품이 확산할 가능성을 우려했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중동 전쟁으로 쓰레기봉투 공급난이 심해지자 재생 원료 봉투 생산을 촉진하기 위해 다음달부터 장비 교체를 지원한다. 예산 138억원이 배정됐다. 한기윤 합성수지가공기계조합 전무는 “별도의 가이드라인이 없으면 저가의 중국산 설비가 정부 지원금을 싹쓸이할 것”이라고 걱정했다. 라정주 파이터치연구원 원장은 “국민 세금으로 지원하는 정책자금은 산업계에 미치는 영향을 세밀하게 고려해 집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정선 중기선임기자 leewa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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