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20년 전, 대한민국 해군은 해군사관학교 출신 소령 J씨를 이렇게 평가했다. 당시 J씨는 새벽 길거리에서 술에 취해 행패를 부리던 현행범을 맨몸으로 제압했다. 해군은 그의 미담과 얼굴을 보도자료로 배포했고, J씨는 여러 매체에 소개되며 ‘모범 장교’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그는 현재 대만 정부로부터 ‘국가 기밀을 외부로 빼돌려 중국과 가까운 정치인에게 유출했다’는 의혹을 받으며 수년째 수사기관의 주요 인물로 지목되고 있다. 젊은 시절 모범 장교로 불리던 인물이 어쩌다 중국과 내통 의혹까지 받으며 동아시아 국제 분쟁의 한복판에 서게 된 것일까. 그 사이 J씨의 삶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대만 잠수함 만든 이순신의 후예
J씨는 해군사관학교 졸업 후 엘리트 장교의 길을 걸었다. 퇴직 후에는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에서 근무한 잠수함 기술자이기도 하다. 2020년쯤 회사를 떠난 뒤 대만으로 건너가 대만국제조선공사(CSBC)가 추진하던 독자 잠수함 건조 사업에 참여했다. 당시 대만은 차이잉원 정부 출범 이후 중국의 군사적 압박에 대응하기 위해 자체 잠수함 확보에 국가적 역량을 쏟아붓던 시기였다.
J씨가 대만과 연을 맺은 경로는 한국계 컨설팅 업체 C사였다. 한국 해군 예비역 대령 출신이 운영하는 이 회사는 대만국제조선공사 (CSBC)와 조선소 건설·생산 공정 전반에 대한 기술 자문을 맡고 있었다. 문제는 J씨가 이탈을 시도했다는 점이다. 고용주인 C사를 배제한 채 대만 측과 직거래를 통해 사업 전반을 직접 맡으려 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대만 고위 관계자들을 상대로 “기존 컨설팅은 수준이 떨어진다”며 “자신을 에이전트로 세우면 대우조선해양에서 근무하는 장보고함 3 핵심 기술 인력을 연결하겠다”는 취지의 제안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실상 ‘한국 국방 기술자 네트워크’를 지렛대로 독자적 입지를 확보해 큰 수익을 노리려 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계획은 뜻대로 풀리지 않았고 J씨는 방향을 틀었다. 그동안 확보한 녹취파일과 잠수함 도면 등 각종 기밀을 현지 국회의원 등 대만 정치권에 전달하기 시작했다. 특히 친중 성향으로 알려진 국민당 소속 마원쥔 의원이 2022년 1월 관련 문건을 공개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국민당이 ‘하나의 중국’을 지지하는 정당인 만큼 ‘대만 군사 기밀이 어떻게 친중 국회의원에게 있느냐’, ‘잠수함 도면이 중국으로 넘어간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 사안은 대만 전역을 흔들었고, 중국은 물론 한국까지 얽힌 외교 이슈로 확대됐다.
J씨는 조선소 출입이 금지됐다. 또한 C사에서도 해고됐다. 현재까지도 그는 현지에서 각종 소송에 휘말린 채 귀국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만 검찰이 사건의 전모를 파악하기 위해 수사를 이어가고 있지만, 현지에서는 정치적 이유로 구체적인 실체를 확인하기 어려워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해군생도 때부터 사업가 기질 많았다”
경남경찰청은 ‘J씨 게이트’가 터진 뒤 대만으로 흘러간 수 많은 도면 등을 확보하고, 대우조선해양의 잠수함 기술이 대만으로 유출됐다는 의혹을 들여다봤다. 이 과정에서 에이전트 C사는 약 3년에 걸친 수사와 재판 끝에 2024년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를 선고받았다.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했던 한화그룹 측은 내부 실태를 파악한 뒤 “보안상 문제는 없었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대만에 함께 진출한 방산 소부장 업체 D사는 지난해 12월 기술 유출 혐의로 법원에서 유죄를 선고받으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2020년 이전 대우조선해양의 보안망이 취약했던 틈을 타 J씨 등 이탈한 다수의 기술자와 협력사를 통해 도면이 유출됐다는 의혹을 법원이 인정한 셈이다. 문제는 국내 잠수함 기술이 실제로 얼마나 유출됐는지에 대한 실태조사가 이뤄지지 않아 정확한 규모를 아무도 모른다는 점이다.
J씨 주변 인물들은 그를 젊은 시절부터 대범하고 사업가 기질이 강한 인물로 기억한다. J씨와 함께 해군에서 근무했던 A씨는 “학창 시절부터 사업 수완이 좋았던 인물”이라며 “당시에도 ‘전형적인 군인과는 다른 성향을 가졌다’는 평가가 많았다”고 말했다. 대우조선해양 퇴사 전, 회사로부터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해 ‘한을 품었다’는 동료들의 증언도 있었다. 대우조선해양에서 근무 시절 그는 잠수함 도면 전반을 살펴볼 수 있는 위치에 있던 관리자로 알려졌다. 대우조선해양에서 함께 근무한 B씨는 “회사 내에서는 J씨의 성을 따 ‘XX 특공대’라는 별명도 붙였다”며 “그만큼 그는 조용하기보다 적극적으로 나서는 인물이었다”고 말했다.
방위산업 기획 보도로 제411회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을 수상했습니다. 수년간 방산 하청업체 관계자들과 교류하며 산업 생태계의 가장 아래층부터 그 위까지 흐름을 추적해왔습니다. 국방부와 방위사업청은 물론 HD현대·한화오션 등 정점에 있는 기업들조차 쉽게 닿지 못한 현장의 이야기를 이곳에서 풀어냅니다.
조철오 기자 cheol@hankyung.com

5 day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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