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t] 동물병원에서 생각한 것들…삶과 죽음을 지켜보며

1 week ago 9

[Pet] 동물병원에서 생각한 것들…삶과 죽음을 지켜보며

이경혜(프리랜서, 외부기고자)

입력 : 2026.06.01 18:28

수리 잇몸에서 피가 나서 동물병원에 갔다. 본래도 한 시간 대기는 기본인데, 그날은 두 시간이 훌쩍 넘어서야 진료를 볼 수 있었다. 평소라면 분노를 폭발시키고 말았을 테지만 도저히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수리가 다니는 동네 동물병원은 늘 붐벼서 진료를 보기까지 큰 인내심을 발휘해야 한다. 얼마 전부터 양치를 하면 잇몸에서 피가 나길래 수리를 데리고 동물병원에 갔다. 이날도 대기 시간이 한 시간을 훌쩍 넘겼고, 화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던 참에 한 보호자가 다급히 문으로 뛰어 들어왔다. 그의 품에는 작고 흰 개가 축 늘어져 있었다. 간호사가 달려 나와 보호자를 안으로 안내했고, 곧 반려견 이름을 애타게 부르며 흐느끼는 보호자의 목소리가 병원에 울려 퍼졌다. 대기 시간이 너무 길다며 토로하던 보호자들은 입을 꾹 닫고 눈물을 훔쳐냈다.

(사진 프리픽Freepik)

(사진 프리픽Freepik)

시간이 흐르고 적막이 희미해질 즈음 드디어 수리 이름이 불리는 순간, 또 응급 환자가 들이닥쳤다. 개는 고통에 찬 비명을 질러 댔다. 간호사가 개를 안고 들어가고 보호자는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수의사와 상담 과정에서 개의 발작이 급체 때문임이 밝혀졌다. 보호자에 따르면 반려견이 이빨을 뽑은 뒤 영 기운이 없어 소고기를 먹이면 나을까 싶었던 것인데, 잘 받아먹길래 제법 주었다고. 몇 년 전에도 소고기를 먹고 급체했다며, 그걸 잊고 또 소고기를 먹인 자신을 호되게 책망했다. 대기실 보호자들이 그를 다독였다. 자기들도 다르지 않다며.

마침내 수리 차례가 되어 진료실에 들어갔다. 수의사의 퀭한 눈을 보니 기다림에 지친 나와 수리의 피로는 명함도 못 내밀 판이었다. 의사는 수리의 출혈은 잇몸이 내려앉아 이빨이 흔들렸기 때문이고, 노견이라 마취가 어려우니 한 달쯤 두었다가 더 흔들리면 무마취로 빼자고 말했다.

집으로 돌아오며 병원에서의 시간을 복기해 보았다. 한 편의 상황극을 보는 듯도 했는데, 대기 시간이 길어지면서 끓어오른 보호자들의 불만은 반려견을 떠나보낸 보호자 앞에서 한순간 사그라졌고, 또 다시 차오르던 불만은 자책하는 보호자를 위로하는 동안 절로 잊어버렸다. 생사를 다투는 상황에서 누구랄 것 없이 성큼 물러나 기다려 주고 진심으로 위로하는 모습은 새삼 낯설고 따뜻했다. 이런 일은 언제든 ‘내 일’이 되기도 할 것이고, 반려동물과의 이별은 가능한 미루고 싶은 공통된 소망의 발로이기도 할 것이다.

사람 사는 세상은 복잡하고 광활해 때때로 잊고 사는 이런 마음들을 그날 동물병원에서 폭풍처럼 마주친 일은 오래 기억될 듯하다. 이 역시 반려동물이 사람에게 선물한 삶의 공부 거리 아닐까.

[ 이경혜(프리랜서) 사진 프리픽]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1032호(26.06.02) 기사입니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들었다면, 좋아요를 눌러주세요.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