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 직원, 협력사, 투자자는 기업이 미래를 정확히 예측하기를 기대하지 않는다. 대신 기업이 어떤 기준으로 판단하고, 어떤 방식으로 소통하며, 누구에게 부담을 전가하는지를 본다. 위기 상황에서 기업의 말과 행동이 일관되지 않으면 신뢰는 빠르게 약해진다. 반대로 모든 답을 갖고 있지 않더라도 의사결정 기준을 명확히 설명하고 이해관계자의 불안을 줄여주는 기업은 신뢰를 얻을 수 있다.
그렇다면 리더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첫째, 기업을 예측 가능성의 원천으로 만드는 것이다. 불확실성이 클수록 사람들은 나쁜 소식보다 기준 없는 결정을 더 두려워한다. 실적 악화로 비용을 줄여야 할 수 있다. 사업 우선순위를 바꿔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 무엇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줄이는지 설명하지 않으면 이해관계자는 기업을 믿기 어렵다.
예를 들어 회사가 채용 규모를 줄이거나 조직 개편을 단행한다고 가정해 보자. 직원들이 가장 불안해하는 것은 변화 자체가 아니다. 의사결정의 기준을 알 수 없을 때 불안은 더 커진다. 어떤 사업을 우선하고 어떤 역량을 보호할 것인지, 어떤 절차로 결정을 내릴 것인지를 설명하면 직원들은 상황을 더 잘 받아들일 수 있다. 협력사도 마찬가지다. 단가 조정이나 납기 변경보다 더 큰 불신을 낳는 것은 예고 없는 일방적 통보다.둘째, 기업은 확실성의 원천이 돼야 한다. 여기서 확실성이란 모든 것을 안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무엇이 확인됐고 무엇이 아직 불확실한지를 구분해 말하는 능력에 가깝다. 위기 상황에서 “문제없다”라고 반복하는 리더는 오히려 신뢰를 잃을 수 있다. 현실을 축소하거나 위험을 감추는 순간 이해관계자는 기업의 공식 메시지보다 비공식 정보에 의존하게 된다.
좋은 커뮤니케이션은 낙관적 메시지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다. 현재 확인된 사실, 아직 검토 중인 변수, 향후 의사결정 일정, 이해관계자에게 미칠 영향을 나눠 설명하는 것이다. 리더가 불확실성을 인정하면서도 대응 절차를 제시하면 이해관계자는 기업을 더 신뢰한다.
셋째, 기업은 안정성의 원천이 돼야 한다. 위기 때 기업은 비용을 줄여야 하고 리스크를 관리해야 한다. 그러나 그 부담을 약한 이해관계자에게만 떠넘기면 단기 실적은 지킬 수 있어도 장기 신뢰는 훼손된다. 원자재 가격 상승을 협력사에 일방적으로 전가하거나, 실적 압박을 이유로 직원 보상과 복지를 급격히 축소하는 식의 대응이 대표적이다. 이런 조치는 재무적으로는 합리적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해관계자에게는 “위기가 오면 이 회사는 우리를 보호하지 않는다”는 인식이 생길 수 있다. 고객은 대체 브랜드를 찾고, 직원은 이직을 고민하며, 협력사는 거래 리스크를 가격에 반영한다. 신뢰가 무너지면 기업은 이후 더 큰 비용을 치르게 된다.AI 확산은 신뢰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든다. 기업은 채용, 평가, 고객 응대, 금융 상담, 의료 상담 등 다양한 영역에 AI를 도입하고 있다. 그러나 AI가 내린 판단이 설명되지 않거나 과도하게 확신에 찬 방식으로 전달되면 사용자는 이를 사실로 받아들일 수 있다. 특히 음성 AI처럼 인간적인 인터페이스를 활용하는 경우, 확신에 찬 어조는 정보의 불확실성을 가릴 수 있다.
따라서 기업은 기술의 정확도뿐 아니라 전달 방식까지 관리해야 한다. AI가 어떤 상황에서 단정적으로 말해도 되는지, 어떤 상황에서는 유보적 표현을 써야 하는지 기준을 정해야 한다.
신뢰는 결국 말보다 구조에서 나온다. 기업이 어떤 기준으로 결정하고, 어떤 정보를 공개하며, 누구에게 부담을 나누는지에 따라 이해관계자의 판단이 달라진다. 불확실한 시대의 리더십은 강한 확신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불확실성을 신뢰 가능한 방식으로 다루는 능력에 달려 있다. 한국 기업에도 시사점이 크다. 많은 기업이 빠른 실행과 성과 달성에는 강하지만, 이해관계자에게 의사결정의 배경과 기준을 설명하는 데는 상대적으로 약하다. 그러나 불확실성이 일상이 된 환경에서는 속도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빠른 결정만큼 중요한 것은 예측 가능한 결정이다.
※이 글은 HBR(하버드비즈니스리뷰) 디지털 아티클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서 이해관계자의 신뢰를 쌓는 법’을 요약한 것입니다.
샌드라 서처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
정리=장재웅 기자 jwoong0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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