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톡] 샤워실의 바보

14 hours ago 3
정다은 기자정다은 기자

샤워 중 수온 조절은 꽤 어려운 일이다. 온수로 조금만 돌려도 너무 뜨거워지고, 냉수로 살짝 움직이면 금세 차가워진다. 온도를 조절하느라 정작 샤워는 시작도 못 한 채 시간이 흘러간다.

경제학에서는 이를 이른바 '샤워실의 바보'라고 부른다. 온도 조절을 무한히 반복하며 적정한 수온을 찾는 행동을 임기응변식 단기 처방 경제정책에 빗댄 용어다. 성급한 정책이나 정부의 무리한 개입이 시장에 역효과를 낼 수 있다는 의미다.

은행권은 온수와 냉수 사이 무한굴레에 빠졌다. 거시경제 상황이 악화했고, 건전성과 밸류업이라는 과제 속 금융당국의 엇박자 정책에 발목을 잡히는 상황이다. 원·달러 환율 변동성은 이어지고, 미국 관세 정책에 따른 외환·자금 시장 유동성 리스크가 확대됐다.

금융당국의 주문도 밸류업과 건전성 사이 딜레마를 초래한다. 금융당국은 미국 상호관세로 인해 피해를 볼 중소기업·소상공인에 대출 규모 확대와 연체 분할 상환 기간 연장 등 상생금융 지원을 요구한다. 가계대출 관리는 항상 반복되는 주문이다. 기준금리 인하가 시작된 지난해 하반기부터 대출금리 인하를 요구하면서, 예대마진을 줄이라는 압박과 기업·가계에 자금을 공급하라는 상반된 요구에 금융지주는 건전성과 밸류업 전략 모두 사면초가 상황에 빠졌다.

'샤워실의 바보' 개념을 제시한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은 “정부 역할은 개인의 생명과 재산, 자유를 지키는 일로 최소화해야 하며 정부의 힘은 최대한 분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기 부양과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한 밸류업과 상생 금융까지 수많은 토끼를 잡으려다 단 한 마리도 잡지 못할 수도 있다. 심지어 그 역할을 오롯이 금융권에 지게 한다면 시장과 소비자 신뢰도 보장할 수 없다.

금융권은 최근 금융당국에 위험가중자산(RWA) 규제 완화를 요구했다. 상호관세로 인한 자금 공급에 따른 건전성 악화와 밸류업 정책 충돌 속 나름의 해답을 찾았다. 금융당국이 함께 답변을 고민할 때다.

정다은 기자 danda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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