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SNS에서 촉발시킨 기다림의 문화…기다리기를 반복하는 삶 ‘웨이팅 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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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SNS에서 촉발시킨 기다림의 문화…기다리기를 반복하는 삶 ‘웨이팅 세대’

이주영(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 외부기고자)

입력 : 2026.05.20 00:23

‘웨이팅(예약 대기)’이라는 단어는 현대인에게 필수적인 게 되었다. 여길 가도 기다리고, 저기서도 기다린다. 기다리지 않으면 성취되는 일이 없을 정도다. 한 끼 먹으려 기다리고, 커피 한 잔을 하려고 해도 또 웨이팅을 걸어둔다. 우리네 삶은 이렇게 기다리기를 반복하며 지나가고 있다.

(일러스트 게티이미지뱅크)

(일러스트 게티이미지뱅크)

SNS 콘텐츠의 확산이 ‘기다림’을 촉발하다

약 4년 만에 일본 도쿄에 다녀왔다. 일본 내 많은 지점을 두고 있는 이치란 라멘은 그때도 유명했었다. 지금이라고 달라진 건 없었다. 아니 더 유명해져 있는 듯했다. 여기도 저기도 꽤 많은 대기 줄이 있었다. 도쿄의 작은 식당들은 여전히 줄을 세운다. 또 그렇게 줄 서는 것에 대해 손님들 또한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OTT 플랫폼, 특히 넷플릭스에는 2000년대 초반에 많은 인기를 끌었던 일본 드라마들이 대거 업로드되고 있다. 그중엔 과거에 좋아했던 ‘런치의 여왕’이라는 시리즈도 있다. 일본 샐러리맨들의 직장 점심 문화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 ‘파견의 품격’이라는 시리즈에서도 그런 문화를 엿볼 수 있다. 오랜만의 도쿄 방문에서 느낀 건 예나 지금이나 식당 앞에서의 대기 줄이 필수라는 점이었다.

이미지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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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부야 스크램블, 하라주쿠 다케시타 입구는 가히 인파의 절정을 보여주고 있었다. 내가 찾았던 시기는 4월 첫 주로 벚꽃 시즌이었다.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운집했을 수도 있다. 살짝 숨통을 트기 위해 도쿄 인접 지역인 기치조지에 들렀다. 그곳의 유명한 함박 스테이크 식당을 향해 오전 11시 오픈 시간에 맞춰 뛰었다. 내 인생에 몇 없는 오픈 런을 한 셈이다. 그런데 가게 앞은 이상하게도 한산했다.

점원이 나와 내게 물었다. “예약했냐”고. 아니라면 오후 5시에 식사가 가능할 거라고 했다.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느낀 건 일본의 작은 식당들에도 예약 문화가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일본은 과거에도 그랬지만 원래 줄을 서고, 기다리는 게 익숙한 나라다. 식당뿐만 아니라 모든 면에서 이건 일종의 관습처럼 이해된다.

이미지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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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한국은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나만 하더라도 한 시간 이상씩 기다리는 식당 앞에 굳이 줄을 서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 의문이 있다. 식사 시간이라는 러시아워 때문이 아니라 오픈과 동시에 줄 서는 식당들이 많아졌다는 이야기다. SNS라는 게 생겨나고, 새로운 세대에 의해 즐겨 찾는 플랫폼이 되었다.

“익히 알다시피 SNS 콘텐츠들의 대부분은 첫째로 ‘자랑하고 싶은 어떤 것’, 둘째로 ‘누구보다 빨리 알려주는 정보’로 압축된다. 불황이 지속되면서 많은 것들을 포기했지만, 먹는 것에서는 한 치의 양보도 생겨나지 않았다. 그러면서 새로운 세대가 생겨났다. 이른바 ‘웨이팅 세대’다.”

대기 시간을 활용하는 ‘0차 문화’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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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소비의 핵심 세대는 MZ세대다. 아니 밀레니얼은 이미 기성 세대 쪽으로 기울었고, 젠지와 알파 세대가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돈을 쓰는 핵심 주체가 변화하니 문화도 변했다. 웨이팅과 맛집, SNS 맛집이 일종의 트렌드로 자리매김했다. 이건 경험을 중시하고, 취향을 전파하는 세대적 특징이 한데 어우러져 도출된 결과다. 여기에 테크놀로지의 진보가 한몫 더 거든다. ‘테이블링’ ‘캐치테이블’ 등 식당과 계약을 맺은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대신 줄을 설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줄서기’ ‘대기하기’ 등의 기능 등은 현장에 내가 없어도 무방함을 가능하게 만들어 주었다. 나에게 부여된 대기 번호가 나를 대신하여 무형의 대기선 위에 서 있는 셈이다. 식사를 위해 적어도 몇 십 분, 많게는 한두 시간 이상을 줄을 서며 허비하던 그들은 이제 다른 것을 하며 소비한다. 여기에서 웨이팅의 또 다른 문화가 생겨나기 시작한다. 바로 대기 시간을 활용하는 ‘0차 문화’다. 이로 인해 자투리 시간을 활용할 수 있는, 일종의 삶 속 여백이 생겼다.

앱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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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이 대기 시스템 애플리케이션을 적극 활용하는 편이다. 가려는 식당이 백화점이나 대형 쇼핑몰에 입정한 곳이라면 금상첨화다. 여기저기 둘러보다가 모바일을 통해 내 앞에 몇 팀이 있는지를 확인하면 되니까. 심지어 이 애플리케이션은 내 차례가 다가오면 매장 앞에서 대기해달라는 알림까지 해준다.

그러니 성수동이나 명동처럼 여기저기 들러야 할 곳이 많은 지역의 식당가에서도 이 시스템은 빛을 발한다. 대기 예약을 하고 아이쇼핑, 구경을 즐기기 좋다. 이제는 모바일에 숫자로 명시된 그 번호가 나인 셈이고, 그 번호가 나 대신 줄을 서준다.

웨이팅은 욕망의 또 다른 표현

앱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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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 줄, 웨이팅이라는 단어들은 판매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어떤 욕망을 탑재하게 만든다. 식당 주인은 자기 가게 앞에 늘어난 줄을 보면서 하루 매출에 대한 기대감을 상승시킨다. 손님들은 그 줄을 보고 ‘저 식당이 맛집이다’ ‘저기가 핫플이다’ 등을 판단하며 가보고자 하는 욕구를 증폭시킨다. 이런 탓에 되려 웨이팅을 유도하는 마케팅 전략을 구사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몇 년 전 서울 도산공원 일대에 맛집, 핫플이 급작스럽게 늘어난 시기가 있었다. 미국식 피자를 파는 집도 있었고, 도너츠 가게도 있었다. 이런 곳들이 문을 열자 입소문이 무성하게 퍼졌다. 인플루언서들을 기용해 SNS에 멋스럽고 맛깔스러운 사진을 올렸다. 단숨에 대기 줄이 길게 생겨났다. 이것이 바로 웨이팅 유도 마케팅 중 하나다. 물론 치밀한 전략 하에 마케팅을 펼쳤다고 하더라도 결국 음식이 맛나고, 개성이 있어야만 그 웨이팅은 오래 지속된다. 이건 요식업계의 불문율 중 하나다.

 진실은 없어 그러나 모든 것은 가능하지]전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데이미언 허스트: 진실은 없어 그러나 모든 것은 가능하지]전

이제 새로운 세대에게 줄을 선다는 것 자체가 ‘핫, 힙함’ 등의 수사로 표현될 수 있는, 필수적 행위가 되었다. 쉽게 말해 경험을 중시하는 세대 트렌드에 부합한다는 것이다. 이제 줄을 서는 행위가 꼭 식당을 위시한 제품을 파는 가게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도 흥미롭다. 넷플릭스 콘텐츠 ‘케이팝 데몬 헌터스’ 이후 국립중앙박물관 입장을 위한 줄도 길어졌다.

또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전시 중인 데미안 허스트의 전시도 웨이팅의 사례로 볼 수도 있다. 일단 주말 예약 자체가 힘든 전시가 되었기 때문이다. 작년의 론 뮤익 전시 때처럼 말이다. 데미안 허스트의 전시도 퍼블릭 오픈 이전에 미디어와 인플루언서 등을 초청한 프리뷰 이벤트가 있었다. 국립 공간이기 때문에 분명 이들은 대중에게 전시를 홍보해야만 하는 책무가 있었을 것이다. 이 탓에 미디어, 인플루언서 등을 초청해 그들의 SNS를 홍보 플랫폼으로 적극 활용했다고 이해된다.

하이킹 문화 등산, 이제 ‘소원 맛집’ 웨이팅도

북한산 전경

북한산 전경

최근 8살 난 아이와 아내는 주말이면 산을 자주 간다. 우리가 거주하고 있는 아파트 뒤편으로 인왕산에 오를 수 있는 길이 나 있기 때문이다. 아이가 조금 더 어렸을 때부터 아내는 그와 함께 종종 등산을 가곤 했었다. 봄 기운이 완연해진 4월의 주말, 아내와 아들은 인왕산엘 다녀오겠다며 김밥을 포장해 배낭에 챙겨서 나갔다.

몇 시간 후 돌아온 아이의 말이 참 흥미로웠다. “아빠, 인왕산 정상에 형, 누나들이 엄청 많아졌어!”라는 것. 산에도 줄 선다는 뉴스를 분명 어디선가 본 기억이 났다. 맞다. 관악산 연주대였다. 그곳에서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관악산 입구에서부터 대기 줄이 형성될 정도라고 했다. 그러니까 이제는 줄을 서다 못해 산에서도 줄을 서야 하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관악산 정상 연주대에서 소원을 비는 등산객 모습 (매경DB 윤성아 기자 촬영)

관악산 정상 연주대에서 소원을 비는 등산객 모습 (매경DB 윤성아 기자 촬영)

나와 같은 세대에게 등산은 ‘꼰대’의 상징적 문화 같은 것이었다. 회사 임원이 등산하러 가자고 하면 어쩔 수 없이 따라나서야 하는 걸 드라마에서 많이 봐왔지 않나. 그랬던 등산 문화가 몇 년 전에는 꽤 젊은 세대의 새로운 라이프스타일로 자리잡기 시작했었다. 전문적인 복장보다는 조금 더 가벼워진 하이킹 개념으로서의 등산이 트렌드가 되었던 것. 하지만 SNS의 입소문은 등산이라는 문화에 또 다른 개념을 얹어버렸다. 바로 관악산 연주대에서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것.

정말 소원이 이루어지는가에 대한 진실공방은 있겠지만, 이곳은 하나의 현상으로서 발원되었고, 소문을 타며 일종의 ‘소원 맛집’이 되어버렸다. 이 탓에 서울 근교의 각종 산들에 사람들이 갑자기 증가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인왕산도 그런 예일 것이다.

Z세대에게 웨이팅은? 일종의 놀이

(일러스트 게티이미지뱅크)

(일러스트 게티이미지뱅크)

최근 들어 영화의 흥행과 관련된 장소들도 폭발적인 인파로 대기 줄을 만들어내고 있다. 한국영화의 흥행 역사를 다시 써내려간 ‘왕과 사는 남자’ 속 단종과 관련 있는 영월도 증폭된 인파로 몸살을 앓았다. 또 공포영화 ‘살목지’의 주 공간인 충남 예산의 저수지 살목지에도 사람들이 많이 몰렸다. 관악산과 영월 일대에 대기 등록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할 판이다. 그럼 또 그곳에서의 ‘0차 문화’가 파생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이다.

이제는 기다리지 않으면 무언가를 하기 힘든 시대가 되었다. 사실 그렇게 기다리는 데를 너도나도 꼭 가지 않아도 될 터다. 하지만 작금의 새로운 세대는 그곳에 꼭 가야만 직성이 풀리는 세대다. 그런 이들이 시대의 주류가 되었다.

이미지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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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세대의 지형도는 ‘좋다’ ‘싫다’로 이분할 수 있는 그런 성질의 것이 아니다. 이들에게 기다림이란 일종의 놀이다. 그러다 보니 그들의 라이프스타일 자체가 매번 기다림의 연속으로 채워지는 듯하다.

사실 기다린다는 것에 내재된 의미는 소망 혹은 바람을 담은 행위다. 정말 아이러니한 일이다. 작금의 청년 세대는 삶의 대부분을 기다리며 보낸다. 이런 웨이팅 세대라 불리는 새로운 세대의 놀이로서의 기다림을 바라보며 생겨나는 바람이 있다. 그건 바로 그들의 기다림이 좌절로만 귀결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다.

[ 이주영(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 일러스트·사진 게티이미지뱅크, 픽사베이]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1030호(26.05.19)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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