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vin and Hobbes, 진정성을 지킨 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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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ll Watterson은 전 세계 2,400개 이상 신문에 실리던 Calvin and Hobbes를 1995년 말 끝내기로 하며, 창작 통제와 타협 거부를 작품의 핵심 조건으로 지켜냄
- 그는 글, 선, 일요판 채색, 책 삽화까지 직접 맡는 1인 작업 방식을 고수했고, 형식과 장인정신이 작품의 의미와 분리될 수 없다고 봄
- Universal Press Syndicate와의 충돌은 라이선싱·상품화에 집중됐으며, Hobbes 인형·티셔츠·애니메이션·영화 제안을 6년간 거부함
- 1991년 재협상 뒤 두 차례 9개월 안식기를 가졌고, 반쪽 지면·패널 제한 없는 일요판으로 더 큰 자유를 얻었지만 작업 부담도 커짐
- 마지막 연재 이후 Watterson은 공개 활동을 거의 끊었고, 작품은 독자들에게 남았지만 창작자는 자신의 사적 삶과 Calvin and Hobbes를 분리하려 함
Kenyon College 천장화에 담긴 태도
- 1978년 Kenyon College 2학년이던 Bill Watterson은 기숙사 방 천장에 Michelangelo의 “Creation of Adam”을 직접 그리기로 함
- 자신이 뛰어난 화가는 아니라고 봤지만, 오래된 맥주 캔과 빨래 냄새가 나는 방에 르네상스 걸작이 놓이는 부조화의 코미디를 기대함
- 침대 위에 의자 두 개를 세우고 그 위에 테이블을 얹은 임시 구조물에 누워 천장 가까이에서 그림을 그렸음
- 뒤늦게 허가가 필요하다는 점을 깨달았고, 주거 담당자는 이미 진행 중인 작업임을 알아차린 듯 조건부로 허가함
- 여름에 떠나기 전 천장을 원래대로 되돌리는 조건이 붙음
- 몇 달간의 작업을 마친 뒤 Watterson은 흰 페인트로 자신의 그림을 덮어 천장을 다시 비워 둠
- 이 일화는 이후 Calvin and Hobbes 마지막 장면의 흰 여백과 연결되는 상징으로 배치됨
1995년 종료 편지
- 1995년 Watterson은 37세였고, Calvin and Hobbes는 전 세계 2,400개 이상 신문에 실리고 있었음
- 그는 신문 편집자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그해 말 Calvin and Hobbes를 중단하겠다고 밝힘
- 편지에는 결정의 배경이 압축돼 있음
- 최근에 내린 결정도, 쉬운 결정도 아니었음
- 자신의 관심사가 바뀌었고, 일일 마감과 작은 패널의 제약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은 했다고 믿음
- 더 사려 깊은 속도와 더 적은 예술적 타협 속에서 작업하고 싶어 함
- 향후 프로젝트는 정하지 않았지만 Universal Press Syndicate와의 관계는 계속된다고 밝힘
- 그는 Calvin and Hobbes를 그린 일을 특권이자 기쁨으로 표현하며 신문들의 지원에 감사함
1인 작업과 장인정신
- Watterson의 작업 도구는 연필, 지우개, 흑담비 붓, Rapidograph 만년필, crowquill 펜 등으로 이뤄진 저기술 작업 환경이었음
- 단순한 도구가 오히려 작품에 대한 통제를 더 크게 준다고 봄
- 그는 모든 글, 모든 선, 모든 일요판 채색, 모든 책 삽화를 직접 한다는 점을 강하게 자부함
- Calvin and Hobbes는 그에게 1인 작업이어야 했고, 그것이 공예적 진정성을 지키는 방식이었음
- 과거 최고의 신문만화는 단지 웃긴 그림이 아니라 아름답고 예술에 해당한다고 생각함
- Peanuts의 Charles M. Schulz는 The Essential Calvin and Hobbes 서문에서 Watterson이 침대 옆 탁자, 거실 소파, 의자, 램프 같은 일상 사물을 우아하게 그려 만화를 보는 재미를 만든다고 평가함
- Schulz는 만화가가 농담을 그림으로 설명하는 데 그치면 진다고 봄
창작과 상업의 충돌
- Watterson의 핵심 갈등은 창작 대 상업의 싸움으로 정리됨
- Universal Press Syndicate는 만화가와 신문 사이의 중개자였고, Watterson은 이들이 신문사의 편에 선다고 봄
- 그는 신문의 대중시장·상업적 필요가 예술적 표현의 관심사와 자주 맞지 않는다고 판단함
- 많은 사업 결정은 Watterson에게 단순한 비즈니스가 아니라 윤리적 결정으로 다가옴
- 그의 태도는 때로 과거를 이상화하고 불만을 크게 드러내는 방식으로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 강한 확신을 갖고 싸운 것으로 정리됨
6년간의 상품화 거부
- Watterson의 계약상 Universal Press Syndicate는 Calvin and Hobbes를 장난감, 티셔츠 등으로 만들 권리를 갖고 있었음
- 1980년대에는 유명 만화 캐릭터 상품화가 큰돈을 벌던 시기였고, Garfield는 봉제 인형, 잠옷, 슬롯머신, 영화, 테마 크루즈 등으로 연 7억 5천만~10억 달러를 벌어들였다고 소개됨
- Universal은 Calvin 스웨트셔츠, Spaceman Spiff 범퍼스티커, 애니메이션 토요일 쇼, 영화, Hobbes 인형 등을 구상함
- Watterson의 입장은 “나는 만화를 그리려고 만화계에 들어왔지, 기업 제국을 운영하려고 들어온 것이 아니다”에 가까웠음
- 특히 Hobbes 인형을 강하게 싫어함
- Hobbes는 Calvin에게는 한 방식으로, 다른 사람들에게는 다른 방식으로 보임
- Watterson은 두 버전의 현실이 각 참여자에게 완전히 타당하다고 봄
- 실제 봉제 인형은 Hobbes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상품이 대신 확정해, 작품의 마법을 빼앗는다고 판단함
- 라이선싱은 원작을 싸게 만들고, 캐릭터를 시장에 과도하게 노출하며, 미묘함을 즉각성에 희생시킨다고 주장함
- 그는 Calvin and Hobbes가 만화 strip으로 설계됐고 자신은 그것만을 원한다고 밝힘
- Universal과 Watterson의 논쟁은 6년간 이어짐
상품화 분쟁의 결말
- Watterson은 자신에게 상품화를 막을 힘이 거의 없고, 그만두더라도 syndicate가 대필·대리 작가 팀을 고용할 수 있다고 봄
- 다만 이 해석에는 반론도 제시됨
- Calvin and Hobbes의 가치는 Watterson이 계속 독자를 매혹시킬 때 유지됐다고 봄
- Lee Salem은 Watterson이 “그만두겠다”고 말하지 않은 것이 syndicate로서는 다행이었다고 인정함
- 분쟁이 오래 지속된 사실 자체가 syndicate가 그를 단순히 굴복시키려 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고 해석됨
- Lee Salem은 불법 Calvin·Hobbes 티셔츠 상자를 들고 Watterson을 찾아가, 공식 라이선싱이 해적 상품을 줄이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주장함
- 수익을 전 세계 호랑이 보호 기금으로 보내자는 제안도 있었지만 Watterson은 거절함
- 결국 1991년 분쟁은 Watterson에게 유리하게 끝남
- Universal은 상품 라이선싱을 하지 않기로 물러섬
- 계약도 Watterson에게 유리하게 다시 쓰임
안식기와 일요판 형식 변경
- 재협상된 계약 뒤 Watterson은 안식기를 얻게 됨
- Nevin Martell의 Looking for Calvin and Hobbes에는 Watterson이 두 차례 안식기를 요구한 것으로 나오지만, Watterson은 Universal이 제안했고 자신이 받아들였다고 주장함
- 신문 연재 만화가에게 안식기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일이었음
- 독자는 몇 달간 새 연재가 없어도 관심을 유지해야 했음
- 편집자는 이미 비용을 낸 작품의 재연재분에 다시 돈을 내는 상황을 받아들여야 했음
- 1991년 5월 Calvin and Hobbes는 재연재에 들어갔고, Watterson은 9개월간 휴식함
- 그는 Kenyon 시절 미술 교수와 함께 그림을 그리며 회복의 시간을 보냄
- 1992년 초 복귀한 뒤에는 일요판 형식을 바꾸려 함
- 과거 일요만화는 한 페이지 전체를 쓸 수 있었지만, 이후 반 페이지로 줄었고 신문 편집상 상단 줄이 잘리는 경우도 많았음
- Watterson은 일요판을 “반 페이지짜리 feature, 패널 제한 없음”으로만 제공하겠다고 요구함
- Universal은 신문 절반과 수입 절반을 잃을 수 있다고 경고했지만, Watterson은 자신의 능력 한계까지 작업할 수 있다면 감수할 가치가 있다고 봄
- 실제로는 1,800개 신문 중 15개만 게재 중단을 위협했고, 7개만 실행함
창작 자유의 비용과 번아웃
- 패널 제한 없는 일요판은 더 큰 창작 자유를 줬지만 Watterson의 작업량도 늘림
- 기존 일요판은 하루면 그릴 수 있었지만, 새 형식은 하루 반 또는 그 이상이 걸림
- 그는 마감 직전 작업에는 품질 관리가 없고 “garbage in, garbage out”이 된다고 봄
- 그래서 마감보다 충분히 앞서 작업하며, 평범한 소재를 버리고 더 나은 것을 쓸 시간을 확보하려 함
- 더 많은 폐기물이 더 좋은 strip을 만든다는 식의 양을 통한 품질 관리를 추구함
- 일요판 개편 뒤 Calvin and Hobbes를 유지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해졌고, 그는 그 시간을 “어느 정도 평범한 삶”에서 훔쳐야 했다고 말함
- 1994년 4월 두 번째 9개월 안식기를 가졌지만, 1995년 1월 복귀했을 때는 Calvin and Hobbes를 끝낼 때가 됐다고 확신함
마지막 strip과 이후의 침묵
- Watterson의 아내가 종료 사실을 가장 먼저 알았고, Lee Salem과 syndicate가 그다음으로 알게 됨
- 관계자들은 1992년 첫 안식기 이후 그가 언젠가 그만둘 것임을 예상했지만 시점은 몰랐음
- 새 Calvin and Hobbes의 마지막 게재일은 1995년 마지막 날로 정해짐
- 마지막 strip은 다섯 패널로 구성됐고, 마지막 패널이 가장 컸음
- Watterson은 1980년대 연재 초기에 64색을 쓸 수 있었지만, 마지막 시점에는 125색을 사용할 수 있었음
- 마지막 strip에서는 패널 테두리와 말풍선을 보통처럼 색칠하지 않고 Calvin, Hobbes, 썰매에만 색을 넣어 희박하고 열린 느낌을 만들려 함
- 이 흰 여백은 Kenyon 기숙사 천장화를 흰 페인트로 덮은 장면과 연결됨
- 이후 Watterson은 약 30년 동안 인터뷰를 세네 번만 했고, Calvin and Hobbes와 무관한 책 한 권을 냈으며 홍보도 거의 하지 않음
- 자신의 웹사이트에는 Calvin and Hobbes를 조금이라도 언급하는 팬레터는 읽지 않겠다는 공지를 싣게 함
- 작품은 독자들에게 남았고, Calvin과 Hobbes의 세계도 독자들의 것이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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