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로 회사는 돈 긁어모으는데…'왜 내 월급은 제자리?' [글로벌 머니 X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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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2025.12.19 07:00 수정2025.12.19 07:00

전기차 패터리 자동화 공장의 모습. 게티이미지

전기차 패터리 자동화 공장의 모습. 게티이미지

AI로 기업은 부자됐는데, 왜 내 월급은 제자리?[글로벌 머니 X파일]

최근 글로벌 경제에 이른바 ‘총수요의 증발’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자본주의의 작동 원리인 '생산-분배-소비'의 연결 고리가 끊어지면서다. 인공지능(AI) 등 첨단 기술이 벌어들인 막대한 부가가치가 사람(임금)에게 분배되지 않고 해당 기계와 알고리즘을 소유한 자본으로만 이윤이 고이는 '동맥경화'가 시작됐다는 지적이다.

생산성 향상, 배분 악화

19일 미국 노동통계국(BLS)과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FRED)에 따르면 지난 2분기 미국의 비농업 부문 노동생산성은 연이율 기준 3.3%를 기록했다. 이는 팬데믹 이전 10년 평균인 1.5%대를 두 배 이상의 수치다. 생성형 AI, 로봇 등 첨단 IT 기술 도입에 따른 결과라는 분석이다.

하지만 같은 기간 노동자가 가져가는 몫을 나타내는 ‘노동소득분배율 지수(2017년 100 기준)’는 97.703에 머물렀다. 이전보다 소폭 반등했지만 여전히 기준점(100)을 밑도는 수치다.

반면 기업 이익은 늘었다. 미국 상무부 경제분석국(BEA)에 따르면 올 2분기 미국 기업 이익(국내 산업)은 연이율 환산 기준 3조 4582억 달러를 기록했다. 2019년과 비교하면 GDP 대비 비중이 9.0%에서 11%대로 증가한 수치다.

기술 낙관론자들은 AI가 파이 자체를 키워 결국 모두를 부유하게 할 것이라는 '낙수 효과'를 주장한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최근 한 포럼에서 "AI는 인류가 발명한 가장 강력한 생산성 도구이며, 이는 원자폭탄이 아니라 전기와 같은 범용 기술"이라고 역설했다. 이어 그는 "생산성 향상은 제품 가격 하락을 유도하고, 이는 소비자의 실질 구매력을 높여 새로운 수요를 창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claude.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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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관론자들은 성장의 질과 '분배 방식'을 문제 삼는다. 경제학적으로 총수요 위축의 핵심 원인은 '한계소비성향(MPC)'의 격차다. 노동자는 월급이 100만원 오르면 그중 70~80만 원을 소비한다(높은 MPC). 이 돈은 식당, 미용실, 마트, 학원 등으로 흘러가 지역 경제를 돌리는 혈액이 된다.

'AI 수혜' 양극화

반면 AI 데이터센터를 소유한 빅테크 주주나 자본가는 소득이 100만 원 늘어도 이미 소비가 충분하기 때문에 대부분을 저축하거나 주식, 부동산 등 자산 시장에 재투자한다(낮은 MPC). 돈이 실물 시장에서 돌지 않고 자산 시장에만 고이기 쉽다.

AI가 소득을 노동자(고소비 성향) 주머니에서 자본가(저소비 성향) 주머니로 옮기고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올해 내놓은 'AI 도입과 불평등' 보고서에 따르면 AI 도입이 생산성을 높이는 시나리오에서 임금 불평등(지니계수)을 1.73% 포인트 개선할 수 있다.

하지만 자산 소득까지 포함한 '부의 지니계수'는 오히려 7.18%포인트 악화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자들끼리 임금 격차는 줄어들지 몰라도, 자본을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격차는 벌어진다는 뜻이다.

일부 경제학자는 현재 상황을 1929년 대공황 직전의 '과잉 생산' 국면과 비교한다. 당시에도 전기 모터와 컨베이어 벨트의 도입으로 생산성은 폭발했다, 하지만 노동자의 임금은 이를 따라가지 못해 구매력이 고갈되면서 창고에 재고가 쌓였다.

다론 아세모글루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는 "우리는 지금 '과도한 자동화(Excessive Automation)'의 덫에 걸려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서 "현재의 AI 투자는 노동자의 생산성을 높여 임금을 올려주는 '친노동적(Pro-worker)' 방향이 아니라, 단순히 인간을 기계로 대체해 비용을 절감하려는 '노동 대체형'으로만 질주하고 있다"며 "이는 단기적으로 기업의 재무제표를 개선할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물건을 사줄 중산층 기반을 붕괴시키는 자살골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AI는 산업 생태계를 '자본 집약적 승자'와 '노동 집약적 패자'로 갈라놓고 있다는 분석이다. 스위스 금융업체 UBS가 지난달 세계 IT업계 임원 13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 기업의 17%가 AI를 전사적으로 대규모 구현하고 있다고 답했다. 79%가 이미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를 도입해 테스트 중이라고 밝혔다.

기업들의 자본 지출(CapEx)이 고용이 아닌 서버, 전력 설비 등에 집중하고 있다는 뜻이다. 로봇도 마찬가지다. 국제로봇연맹(IFR)의 '월드 로보틱스 2025'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산업용 로봇 신규 설치 대수는 54만 2000대를 기록하며 4년 연속 50만 대를 돌파했다. 공장은 사람 없이도 더 빨리, 더 많이 생산하는 체제를 갖추고 있다.

반면 기존의 구매력이 높은 '화이트칼라' 계층은 부정적인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 미국의 대형 유통업체 타깃과 월마트의 최근 3분기 실적 컨퍼런스콜에서는 필수재가 아닌 선택적 소비재, 특히 전자제품, 의류, 가구 등의 매출이 둔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AI 등이 생산비용을 낮춰 물건값을 떨어뜨린다는 긍정적 측면보다 '내 월급이 오르지 않아 물건을 살 수 없다'는 부정적 측면이 시장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해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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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진짜 '수요 절벽' 온다?

전문가들이 진짜 우려하는 시점은 2025년이 아니다. 현재의 AI 투자가 수요를 지탱하는 '허니문 기간이 끝나고, 투자가 일단락되며 고용 대체효과가 본격화하는 2026년 이후가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세계무역기구(WTO)는 최근 수정 전망에서 내년 세계 상품무역 물량 증가율을 0.5%로 하향 조정했다. 이는 2025년 전망치(2.4%)의 4분의 1 수준이다. WTO는 "AI 관련 하드웨어 교역이 2025년 무역 성장의 절반을 견인했지만, 2026년부터는 기저 효과 소멸과 글로벌 소비 둔화가 맞물려 교역량이 급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형적인 '과잉 투자 후유증'이다. 2024~2025년 기업들은 경쟁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빚을 내서라도 AI 서버를 샀다. 이 투자가 국내총생산(GDP)을 떠받쳤다. 하지만 내년 이후 AI가 기대만큼의 수익을 내지 못하거나, 소비 침체로 기업의 매출이 꺾인다면 이 투자는 거대한 부실 덩어리가 될 수 있다.

한국 경제 사정도 비슷하다. 수출 대기업과 내수 중소기업, 반도체 엔지니어와 자영업자 간의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한국은행의 '2025년 2분기 국민소득 잠정 추계'에 따르면 기업이 가져가는 몫인 '총 영업잉여'는 전기 대비 4.0% 늘었다.

반면 노동자가 가져가는 '피용자보수'는 0.8%** 증가하는 데 그쳤다. IMF는 2025년 한국 연례협의 보고서에서 "반도체 수출이 44% 증가하며 경상수지 흑자를 이끌었지만, 내수는 여전히 취약하다"고 지적했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자동화가 가장 많이 진행된 국가로 꼽힌다. 국제로봇연맹(IFR)의 '월드 로보틱스 2025'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제조업 로봇 밀도는 근로자 1만 명당 1012대로 세계 1위다. 세계 평균(162대)의 6배가 넘는다. 이는 한국 기업의 제조 경쟁력을 유지하는 비결이기도 하다 하지만 고용 없는 성장의 요인이기도 하다.

KDI 분석에 따르면 올 10월 제조업 고용보험 피보험자는 전년 동기 대비 1만 4000명 감소했다. 로봇이 사람을 대체하면서 '중간 소득' 일자리가 사라지고, 이는 다시 내수 소비 여력 감소로 이어지는 악순환 고리가 생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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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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