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소재 설계·공정 관리" 130개 산학연 뭉친 K-화학산업 '승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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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2025.12.23 16:00 수정2025.12.23 16:00

정부가 석유화학 산업을 '범용 제품의 늪'에서 벗어나 고부가가치 스페셜티 산업으로 바꾸는 ‘대전환’을 선포했다. 산업계, 학계, 연구계 등 130개 기관을 모아 2030년까지 글로벌 화학 강국 4위로 도약하겠다는 야심 찬 청사진을 공개했다.

산업통상부는 23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화학산업 혁신 얼라이언스’ 출범식을 개최하고, 향후 5년간의 핵심 실행 전략을 담은 ‘K-화학 차세대 기술혁신 로드맵 2030’을 전격 발표했다.

핵심은 AI(인공지능)이다. 소재 설계부터 제조 공정 전반에 AI을 도입해 새로운 고부가 제품의 개발 기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하고 공정 효율을 극대화하겠다는 전략을 공개했다. 반도체, 미래차 등 국가 전략 산업과 연계한 ‘9대 플래그십 프로젝트’를 통해 밸류체인 전반의 경쟁력을 강화한다.

박동일 산업부 산업정책실장은 “최근 석유화학 기업들이 제출한 사업재편안을 바탕으로, 고부가가치 산업으로의 체질 개선을 위해 정부의 R&D 역량을 총집중할 것”이라며 “이번 로드맵이 우리 화학산업이 다시 한번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는 변곡점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제품 개발 기간 AI활용해 절반으로 단축

정부는 화학산업의 패러다임이 근로자, 공정의 경험에서 ‘데이터’로 이동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AI를 활용한 소재 설계 및 공정 관리의 전면 도입키로 한 이유다.

과거 새로운 화학 소재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수만 번의 직접 실험이 필요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AI가 분자 구조를 미리 시뮬레이션하여 최적의 조합을 찾아낸다. 자동화 실험 장비가 연계된 ‘자율 실험 체계’가 구축되면 연구원이 퇴근한 밤 사이에도 AI 로봇이 실험을 계속하여 데이터 분석까지 마칠 수 있다.

생산 현장도 똑똑해진다. 원료 투입부터 중합, 분리, 가공에 이르는 전 과정에 AI 지능형 제어 시스템을 도입하기로 했다. AI가 공정 조건을 최적화하면 불량률을 낮추고,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하여 탄소 배출도 감축할 수 있다.

정부는 화학산업의 분절화된 R&D 구조를 깨기 위해 수요 산업과 연계된 ‘9대 플래그십 프로젝트’를 가동하기로 했다. 화학기업이 단순히 소재를 만들어 판매하는 게 아니라, 실제 사용하는 기업의 요구사항을 처음부터 반영하는 ‘수요 맞춤형’ 모델을 도입하기로 했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분야에선 삼성전자, 삼성디스플레이 등 앵커 기업이 제안한 핵심 성능을 구현하기 위해 롯데케미칼, LG화학 등이 컨소시엄을 구성한다.

미래차·이차전지 분야에선 현대자동차와 LG에너지솔루션이 필요로 하는 고성능 경량화 소재 및 차세대 배터리 소재 개발에 박차를 가한다.

우주항공·방산 분야에서도 화학·소배는 매우 중요하다. KAI와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등과 협력하여 극한 환경에서도 견딜 수 있는 특수 복합소재 국산화에 주력한다.

이런 협력 모델은 단순히 대기업에 그치지 않는다. 산업부 관계자는 “중소·중견 기업이 글로벌 공급망에 진입할 수 있는 사다리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장단기 맞춤형 전략

산업부는 로드맵 수립을 위해 지난 6개월간 80여 명의 전문가를 투입해 217개의 요소기술을 도출했다. 정부는 이를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해 맞춤형 지원에 나선다. 단기적으로 이미 시장이 크고 우리 기술 수준도 높은 분야야는 ‘상용화 R&D’를 추진한다. 즉각적 매출 창출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다.

시장성은 크나 기술 격차가 있는 분야는 장기 R&D로 추진해 원천기술 확보에 주력한다. 시장개척형은 성장이 기대되는 신산업 분야로, 특허 분석과 신기술 선점형 R&D를 지원해 미래 먹거리를 확보한다느는 전략을 마련했다.

기술이 어느 정도 성숙한 분야는 공정 효율화와 인프라 지원을 통해 수익성을 높이는 방식으로 뒷받침하기로 했다.

글로벌 환경 규제는 한국 화학업계에 거대한 장벽이자 새로운 기회다. 정부는 폐플라스틱 열분해 기술, 탄소 포집 및 활용(CCU) 기술, 바이오 매스 기반의 화이트 바이오 소재 개발 등을 주요 과제로 삼아 집중적으로 자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현대중공업, 한국조선해양 등과 협력해 조선 분야의 친환경 규제에 대응하는 고성능 도료 및 소재 개발을 진행하기로 했다.

화학산업 얼라이언스가 컨트롤타워

이런 정책에서 ‘화학산업 혁신 얼라이언스’는 사령탑 역할을 맡는다. 과로 승격이 확정된 산업부 화학산업팀이 총괄하고, 한국산업기술기획평가원(KEIT)과 화학산업협회가 간사를 맡기로 했다.

지역 거점과의 연계도 강화하기로 했다. 충남, 전남, 울산 등 주요 석유화학 단지가 위치한 지자체들이 참여하여 기반 구축 사업과 정책 지원에 힘을 보탤 예정이다. 정부는 전날 16개 3개 산단 기업들이 제출을 완료한 사업재편안과 연계해 R&D를 해나가기로 했다. 설비 합리화 및 사업 구조 개편안에 참여하는 기업에는 내년 1분기 추진 예정인 대형 R&D 사업에서 가점 등 최우선적인 혜택을 부여할 예정이다.

김대훈 기자 daep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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