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형욱 정다슬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월2일 미국 수입제품에 대한 대대적인 관세 부과 발표를 예고한 가운데, 이 조치가 어떤 방식으로 이뤄질지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현지 언론에선 자동차, 반도체 같은 품목별 관세 부과는 연기한 채, 대미국 무역수지 흑자 규모가 큰 주요국을 상대로 한 타깃형 상호관세 부과에 집중하리란 전망이 나온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이 앞선 예고대로 국가별 상호 관세와 개별 품목 관세를 동시에 부과할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고 대응방안을 고심한다.
![]()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2일(현지시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에서 열린 미국대학스포츠협회(NCAA) 주최 레슬링선수권대회 관전 중 관중들의 환호에 화답하고 있다. (사진=AP) |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는 23일(현지시간) 보도를 통해 트럼프 행정부가 자칭 ‘미국 해방의 날’로 지목한 오는 4월2일 ‘지저분한 15개국’(Dirty 15) 등 주요국을 겨냥한 상호관세 부과에 초점을 맞출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상호관세와 함께 주요 품목에 대한 관세 부과도 발표하겠다고 했으나 관세 부과 대상의 범위를 좁혔다는 분석이다.
대미 무역수지 흑자 규모가 8위에 이르는 한국이 트럼프 행정부의 상호관세 조치를 피해 가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부 장관은 앞선 18일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상호관세 부과 대상국 질문에 “미국 제품에 상당한 관세를 부과하는 ‘지저분한 15개국’이 있다”고 답한 바 있다. WSJ는 또 이를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지난달 관보에 게재한 대미 무역 불균형 국가일 것으로 추정했다. 여기엔 중국, 인도, 유럽연합(EU) 외에 한국도 있다.
정부의 판단도 마찬가지다. 한국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로 원칙적으로 대미 관세를 부과하고 있지 않지만, 미국 업계가 30개월 이상 미국산 소고기 수입 제한이나 구글 등에 대한 한국 지도 데이터 반출 금지 등을 한국 측 비관세 장벽으로 지목하고 있고, 미국 당국 역시 이를 문제 삼아 관세를 부과할 가능성이 있다.
지난 20~2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 다녀온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23일 밤 귀국길 관련 질의에 “미국의 관세 정책 대응은 단판 승부가 아니지만, (4월2일 조치에 대해선) 대부분 국가가 벗어나기 쉽지 않아 보인다”고 답했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앞선 21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한 명에게 (상호관세) 예외를 해주면 모두에게 해줘야 한다”며 “유연성은 필요하만 기본적으론 상호주의”라고 못 박은 바 있다.
![]() |
안덕근(오른쪽 앞 2번째)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하워드 러트닉(왼쪽 앞 2번째) 미국 상무장관이 지난 2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에서 면담하고 있다. 둘은 지난달 27일(현지시간) 첫 회담에 이어 3주 만에 다시 만나 미국 상호관세 등 현안을 논의했다. (사진=산업부) |
품목별 관세도 함께 발표될 가능성도 있다. WSJ를 비롯한 현지 언론은 발표 연기에 무게를 두고 있지만, 우리 정부는 예단하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12일(현지시간) 철강·알루미늄과 그 파생상품에 대해 예외 없는 25% 관세 부과 조치를 시행했고, 다른 주요 품목에 대한 관세 부과도 검토 중이다.
안 장관은 귀국길 관련 질문에 “(미국 측이) 명확히 하고 있지 않지만 4월2일 상호관세 부과와 함께 여러 관세들이 같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모든 시나리오에 대비해 여러가지 준비를 할 것”이라고 답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이와 관련 “미국 행정부가 4월2일 품목별 관세 발표를 시사한 것은 아니다”라며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둔 가능성 차원에서의 언급”이라고 부연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국가별 상호관세와 품목별 관세를 동시다발적으로 부과한다면, 한국 산업계는 큰 불확실성을 마주하게 된다. 대미 수출 차질 속 조치의 내용에 따라 우리 제품의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더 좋아질 수도 나빠질 수도 있다. 일례로 우리 철강업계는 트럼프 행정부의 일괄 관세 부과로 연 263만톤(t) 규모의 관세 면제 조치가 사라졌으나, 오히려 쿼터 제한 속 캐나다 등에 밀렸던 고망간강 등 고부가 제품 수출 기회가 열리기도 했다.
정부 관계자는 “현 시점에선 트럼프 행정부가 언제 어떤 조치를 내놓을지 쉽게 예단하기 어렵고 그런 만큼 어떤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며 “모든 시나리오에 대비해놓고 있다가 조치가 나오는 대로 업계와의 긴밀한 소통 아래 미국 행정부와 협의해 산업계의 부정적 영향을 줄여나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