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의 대가, 티모시 브룩 지음, 박찬근 옮김, 너머북스 펴냄, 2만6500원
17세기 중국 명나라 몰락이 급격한 기후변화 탓이라는 신선한 관점을 제시한다. 중국 역사서에 명 왕조의 붕괴는 흔히 위정자의 부패와 무능, 기근과 이에 따른 농민 반란, 마지막 황제의 자살 같은 정치적 혼란으로 서술되지만, 도덕주의적 관점을 떠나서 보면 전 지구적인 소빙하기(장기간 기온 하강) 상황이 결정적이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흥미로운 점은 저자가 정치적 격동에 휘말린 명나라 사람들과 치명적인 기후 재앙 사이의 관계를 ‘물가’를 매개로 설명한다는 점이다. 명 말기의 1640년대엔 심각한 한파, 가뭄, 전염병 등이 복합적으로 발생했고 곡물 가격은 도저히 지불하기 어려울 정도로 상승해 있었다. 저자는 물가 변동이 기후 재앙의 징후를 파악하는 동반 지표가 될 수 있음에 주목했다. 일부 역사학자들이 명나라 후기 물가 상승의 원인으로 은 유입, 무역 시스템 같은 경제 문제를 꼽지만 여기엔 오류가 있다며 반기를 든다.
저자의 관점에서 1630년대 후반부터 닥친 춥고 건조한 기후의 악영향은 명나라가 회복력을 발휘하기엔 너무나 압도적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가 최근까지 환경 압박의 규모에 주목하지 않았던 것처럼 그들 역시 압도당했던 것”이라며 현재의 기후변화 양상에 대한 경각심도 촉구한다.
저자는 미국 하버드대 박사를 거쳐 현재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중국사 교수로, 이 연구를 위해 약 3000권에 달하는 일기, 회고록, 지방지와 777건의 곡물 가격 자료를 분석했다. 당대 쌀, 보리, 밀, 콩 등 72개 상품의 가격을 추적하고 일반 가정의 생활 모습도 되살려냈다. 가령 명나라의 가장 적은 화폐 단위였던 동전 ‘1문’으로는 당시 두부 한 모, 젓가락 두 쌍, 목탄 1파운드를 살 수 있었다. 은 1냥이 동전 700문과 동등한 가치였고, 노동자·군인·어부 등 가난한 가정에선 한 해를 버티는 데 은 14냥 이상이 필요했다. 이들의 연간 임금은 5~12냥 수준이었기에 텃밭에서 먹거리를 자급자족하는 이들이 많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