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인의 희생과 사랑, 그리고 전형적인 비극….
연극 '홍도'는 극 자체가 클리셰의 향연이라고 할 정도다. 주인공 홍도는 오빠의 학업을 위해 스스로 기생의 길을 택하고, 명문가 자제 광호와 사랑에 빠지지만 끝내 운명에 의해 파국으로 내몰린다. 희생과 순정, 그리고 한(恨)이라는 한국적 정서를 전면에 내세운 이 작품은 신파의 원조격이다.
무대는 극도로 절제돼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새하얀 공간 위에 사람 인(人) 자를 형상화한 구조물 하나로 지붕을 대신하고, 여백을 통해 정서를 환기하려는 의도가 분명하다. 여기에 디자이너 차이킴의 한복 의상이 더해지며 색채감 있는 한국적 미장센을 완성한다. 특히 마지막 장면, 홍도가 걸어 나가는 붉은 꽃길은 시각적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비극적 운명에 놓인 인물을 또렷하게 각인시킨다.
인물의 구성 역시 오늘의 시선에서는 다소 단선적으로 읽힐 수 있다. 선명한 대비 구도와 흥부와 놀부만큼이나 평면적인 캐릭터는 서사를 보다 직선적으로 이끌지만 그만큼 예측 가능성도 커진다. 더 나아가 여성 인물에게 가해지는 모욕적인 언사나, 기생이라는 존재를 줄곧 천하다며 욕설을 섞어 비난하는 방식은 지금의 관객에게는 불편하게 다가오는 지점이다.
지난 10년간 한국 사회에는 미투 운동이 있었고 수많은 사회적 이슈로 인해 사용하는 언어도 많이 달라진 까닭일 터다. 다만 홍도라는 인물이 살았던 시대적 배경을 감안하더라도 원색적 표현이 비판적 거리가 없이 반복될 때엔 그 당위성을 얻기 어려워보인다.
그럼에도 무대를 지탱하는 힘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홍도뿐 아니라 정보석, 이도유재 등 베테랑 배우들의 안정적인 연기와 더불어 색채감이 돋보이는 의상과 미장센은 아름답다. 특히 마지막씬, 붉은 꽃길 장면은 홍도란 이름이 가진 의미(붉은 길)은 작품이 지닌 정서적 핵심을 응축해 보여준다.
호불호가 명확할 공연일 수 밖에 없지만 그 간극 자체를 공연의 실패로 규정하긴 어렵게 만든다. 질문을 남기는 공연이기 때문이다. 10년 전 이 연극은 왜 관객의 선택을 받았으며 성공했는지, 그리고 2026년 다시 무대에 올려진 진짜 이유는 무엇인지.
한국적 신파와 전통적 비극의 정서가 오늘날에도 유효한 것인지를 되묻는 연극 '홍도'. 한 가지 답을 제시한다기보다 다른 세대의 감각 속에서 그 의미를 동시대적으로 구성할 수 있도록, 무대연출만큼이나 수많은 여백을 남겨두는 작품이다. 공연은 26일까지 이어진다.
이해원 기자 um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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