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랬던 트뤼도가 트럼프 당선 한 달도 안 된 지난해 11월 말 트럼프 사저 마러라고 리조트로 급히 향했다. 2200km 거리를 날아간 그는 리조트 회원들 사이에 끼어 트럼프와 같이 저녁을 먹었다. 다음 날 소셜미디어에 “우리가 다시 함께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라고 올렸다. 캐나다가 불법 이민을 막지 않는다는 이유로 25%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한 트럼프의 나흘 전 엄포 때문이었다. 고물가 등으로 지지율이 20%대로 추락한 상태에서 관세 폭탄까지 맞으면 직 유지가 어렵다는 두려움에 마러라고행을 택했을 것이다.
▷불행히도 반전 기회로 삼으려 했던 그 만찬 테이블에서 트럼프의 ‘51번째 주지사’ 얘기가 처음 나왔다. 트럼프는 “(대미 흑자) 1000억 달러를 미국으로부터 뜯어내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뜻이냐. 그럼 미국의 51번째 주가 돼라”고 했다. 주권을 침해하는 치욕적 발언에도 트뤼도는 어색한 웃음만 지었다고 한다. 귀국 뒤 오락가락하던 그의 모습에 여론이 돌아섰고 재무장관이 저자세라고 비판하며 그만둔 것이 결정타가 됐다. 트뤼도는 6일 “이제 리셋할 시간”이라며 사임 의사를 밝혔다.
▷모진 트럼프는 트뤼도의 사임 회견 뒤에도 ‘51번째 주’ 얘기로 또다시 조롱했다. 주요 7개국(G7) 멤버이자 미국의 2위 교역국 정상을 끝까지 놀림감 삼았다. 관세 폭탄을 앞세운 트럼프식 미국 우선주의 칼날이 취임도 전에 동맹국 정상을 쓰러뜨린 셈이다. 세계 주요 정상들이 마러라고에 가 고개를 숙이고, ‘퍼스트 버디’(1호 친구)라 불리는 일론 머스크의 노골적 내정 간섭에도 영국 독일 정부가 비판 한마디 제대로 못 하는 이유일 것이다.▷그렇게 트뤼도는 ‘이익 앞에 적과 친구 구분 없다’는 트럼프의 첫 희생자가 됐다. 먼 나라 일로 치부할 게 아니다. CNN은 트럼프가 관세 위협을 이용해 캐나다의 정치 혼란을 부추기는 방식으로 이익을 취하려 한다며 모든 국가가 다음 차례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사례로 든 나라가 탄핵 정국의 한국이다. 한국의 대미 흑자 규모는 캐나다(6위)에 이어 8위다. 지난해 557억 달러로 역대 최대 대미 흑자를 기록한 한국이 ‘트럼프 스톰’의 다음 타깃이 되지 말란 법이 없다.
윤완준 논설위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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