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재영]‘황제 사택’

2 days ago 9

도로에서 연두색 번호판을 단 수억 원대 페라리나 람보르기니를 마주치면 고개를 갸웃하는 사람들이 많다. 저 납작하고 시끄러운 스포츠카가 도대체 회사 업무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 특히 주말 교외나 휴양지에서 목격되는 슈퍼카들은 오너 일가가 사적으로 이용하고 있을 것이란 강한 의심을 지울 수 없다. 회삿돈을 제 주머닛돈처럼 쓰는 ‘회사 찬스’는 주차장에만 머물지 않는다. 전망 좋은 한강뷰 초고가 아파트를 법인 명의로 구입해 자기 집처럼 쓰는 경우도 있다. ▷최근 국세청이 국민주택 규모인 전용면적 85㎡를 초과하면서 공시가격 9억 원(시가 약 13억 원)을 넘는 법인주택들을 전수조사했더니 이른바 ‘황제 사택’ 관행이 생각보다 만연해 있었다. 조사 대상 2639채 가운데 사주 일가가 거주하거나 사적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41.6%(1097채)나 됐다. 가장 비싼 주택은 공시가격 기준 200억 원을 넘어 시가로는 300억 원에 가까웠다. 연 매출 수십억 원의 중소기업부터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매출 수십조 원의 대기업까지 기업 규모를 가리지 않았다. ▷회삿돈을 쌈짓돈처럼 쓰는 수법은 다양하다. 법인 명의로 서울 강남·용산 등의 고급 주택을 산 뒤 사주 일가가 무상으로 거주하는 경우가 많다. 이때 증축이나 인테리어 공사 비용, 수입 가구 구입비, 관리비 등을 법인 비용으로 처리하기도 한다. 다주택 규제 회피를 위한 떠넘기기 수법도 있다. 사주 소유의 고가 주택을 법인 명의로 돌려 1가구 1주택 과세 혜택을 챙기는 것이다. 해외로 유학 간 자녀에게 현지 고급 주택을 ‘해외 지사 사택’ 명목으로 쥐여주기도 한다. ▷직원 복리후생 시설이라는 명목을 내세우지만 실상은 오너 일가의 전용 별장으로 활용되는 사례도 있다. 일단 법인 명의로 유명 회원제 골프장 내 콘도나 리조트 회원권을 사들인다. 부가가치세 환급 등 세제 혜택만 챙기고 정작 예약 시스템은 일반 직원들이 접근할 수 없게 막아 둔다. 가장 은밀하고 추적이 어려운 수법은 ‘임차사택’이다. 법인이 집을 직접 사지 않고 비싼 보증금을 내고 고급 아파트를 빌린 뒤 사주 가족에게 무상으로 내어주는 방식이다. 등기부등본에 법인이 소유주로 남지 않아 과세 당국의 감시망을 빠져나간다. ▷법인 자산은 기업의 생산성을 높이고 임직원의 사기를 북돋는 데 쓰여야 할 공적 자원이다. 투명하게 원천징수를 당하고 사무실 볼펜 한 자루 쓰는 것조차 눈치를 보는 평범한 직장인들로선 오너 일가의 수백억 원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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