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주로 US스틸 경영 간섭, 코카콜라 원료까지 이래라 저래라…중국 뺨치는 美 개입 경제 [★★글로벌]

8 hours ago 2

트럼프 2기서 놓치고 있는 변화
코카콜라 원료까지 이래라 저래라
미국 경제의 힘 ‘방임주의’ 쇠퇴

행정명령·DPA 활용해 자율 침해
관세·금리보다 美 경제 위협요소

지난 5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US스틸 본사를 찾아 연단에서 춤을 추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AP 연합뉴스>

지난 5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US스틸 본사를 찾아 연단에서 춤을 추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AP 연합뉴스>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미국이 자랑하는 ‘자유방임’ 시장 질서에 중대 변화가 감지되고 있습니다.

정부가 개입해 수출과 생산은 물론 제품 원료까지 통제하는 ‘국가 자본주의’의 출현입니다.

세계 경제에서 압도적 경쟁력을 자랑하는 미국 경제의 힘은 기업의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s)’을 자극하는 ‘자율성’를 원천으로 합니다.

집안 차고에서 출발한 구글 아마존이 세계 경제를 뒤흔드는 빅테크로 성장한 비결입니다.

그런데 민주당보다 시장 개입을 끔찍이 싫어하는 공화당과 트럼프 행정부의 요즘 행보는 국가 자본주의로 초고속 성장을 달성한 중국을 닮아가는 모습입니다.

중국은 선진국을 효과적으로 추격하고자 정부가 ‘관전자’ 혹은 ‘심판’의 역할을 넘어 직접 ‘시장 참여자’로 뛰며 기업 의사결정에 참여하고 사업 목표와 인사, 이윤을 통제합니다.

‘제조 2025’ 프로젝트가 대표적인 사례로 부문별로 수조 원 이상 기술 혁신 펀드를 가동해 기업들에 자금을 대고 산관학 협력을 주도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선진국 경제를 마비시킬 수 있는 마법의 지점을 찾았습니다.

‘공급망’이라는 급소입니다.

원자재와 중간재, 최종재에 이르는 공급망 순환 과정에서 세계의 굴뚝인 중국 기업이 요소마다 포진하면서 초크 포인트를 장악하게 됐습니다.

최근 트럼프 2기 무역전쟁에서 미국을 맥없이 무너뜨린 것도 중국의 희토류 및 영구자석 공급 능력이었습니다.

지난 5월 백악관에서 차세대 미사일 방어시스템인 ‘골든 돔’ 구축 계획을 발표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첨단 무기체계에 필수인 희토류 공급망 독립이 트럼프 행정부에 발등의 불로 떨어졌다. <AP 연합뉴스>

지난 5월 백악관에서 차세대 미사일 방어시스템인 ‘골든 돔’ 구축 계획을 발표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첨단 무기체계에 필수인 희토류 공급망 독립이 트럼프 행정부에 발등의 불로 떨어졌다. <AP 연합뉴스>

희토류에 비할 바가 아니지만 한국도 과거 ‘요소수’ 부족 사태에서 중국이 가진 공급망의 위력을 실감했습니다.

중요한 산업의 길목에서 공급망 패권을 쥔 중국의 영향력에서 뒤늦은 통찰을 얻은 것일까요.

트럼프 2기 국방부는 최근 미국 토종 희토류 기업 ‘MP머티리얼즈’에 수조 원을 투자할 계획입니다.

첨단 무기에 쓰이는 희토류와 영구 자석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려는 전략입니다.

거액 투자를 대가로 국방부는 이 회사의 최대 주주에 오르게 됩니다.

뉴욕 증시에 상장된 미국 토종 희토류 업체의 정체성이 많은 중국 기업처럼 반민반관(半民半官)이 되는 것입니다.

트럼프 행정부가 지난 4월 엔비디아를 상대로 H20 제품의 대중 수출 통제를 차단한 것도 국가 자본주의를 가리키는 중요한 양상입니다.

H20 칩은 엔비디아가 바이든 행정부의 첨단 기술 통제를 우회하기 위해 고의로 사양을 떨어뜨린 제품입니다.

그러나 중국과 관세 전쟁에서 예상치 못한 희토류 역습을 받은 뒤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의 대미 희토류·영구자석 수출 정상화에 대한 보상 조치로 H20 수출 통제를 다시 해제했습니다.

기업의 첨단 제품이 트럼프와 시진핑 간 기 싸움의 인질로 붙잡혔다가 화해 국면에서 다시 풀려나는 영화 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지난 4월 30일(현지시간) 미국 백악관에서 젠슨 황 엔비디아 CEO와 만난 뒤 옆에서 그의 발언을 듣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EPA 연합뉴스>

지난 4월 30일(현지시간) 미국 백악관에서 젠슨 황 엔비디아 CEO와 만난 뒤 옆에서 그의 발언을 듣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EPA 연합뉴스>

이뿐만이 아닙니다.

트럼프는 취임 전부터 ‘일본제철’이 미국 철강 산업을 상징하는 ‘US스틸’을 인수하려는 계획에 반대했습니다.

그런데 취임 후 입장을 바꿔 인수가 아닌 ‘투자’ 형식으로 이 거래를 승인합니다.

대신 조건이 붙었습니다. ‘황금주’라는 정부의 경영 참여입니다.

황금주란 경영 중요사항에 대해 거부권을 가진 특별한 주식을 말합니다.

US스틸과 일본제철이 새로 만들게 되는 합작사에서 미국 행정부가 ‘황금주’를 가지고 의사 결정 과정에 개입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지난 5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US스틸 본사를 찾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AP 연합뉴스>

지난 5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US스틸 본사를 찾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AP 연합뉴스>

트럼프 2기만큼은 아니지만 앞선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왜곡된 국가 자본주의가 출현하기 시작했습니다.

엔비디아 H20 사례로 상징되는 대중 첨단기술 통제가 그것입니다.

바이든 행정부는 역내 투자 기업에 보조금과 정부 대출을 지원하는 ‘칩스법’을 제정해 대만 TSMC, 삼성전자 등 외국 반도체 기업을 국내로 유인하는 전략을 취했습니다.

양의 얼굴을 한 지원책입니다. 하지만 악마는 디테일에 있습니다.

바이든 행정부는 칩스법 뒤로 대중 첨단 반도체와 관련 설비 수출을 차단하는 기형적인 조치를 강화합니다.

매년 수출관리규정(EAR)을 업데이트하는 방식으로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을 통제합니다.

550여명을 거느린 상무부 내 산업안보국(BIS) 조직이 온갖 기술 규제를 쏟아내며 바이든표 국가 자본주의의 추진체로 작동했습니다.

지난해 처음으로 한국이 강점인 고대역폭메모리(HBM) 특정 사양을 규제 대상에 넣었습니다.

애리조나와 텍사스에 천문학적 자금을 쏟아부은 TSMC와 삼성전자의 입장에서 보면 바이든 행정부가 내미는 당근(칩스법 보조금)보다 채찍(대중 반도체 수출 통제)의 파장 때문에 미국행을 택했을 것입니다.

그 방증이 애리조나 새 공장에서 TSMC의 좌충우돌이었습니다. 새 공장을 최적화할 미국 내 고숙련 인력이 없는터에 TSMC는 급기야 대만 공장 인력을 출장 형식으로 투입했습니다.

사전 타당성 조사에서 이 문제를 충분히 예상했을 것임에도 무리해서 미국행을 선택한 것이죠.

월스트리트저널(WSJ)의 그레그 입 최고경제평론가는 바이든표 당근과 압박을 세련된 형태(refined version)의 국가 자본주의라고 꼬집었습니다.

지난 3월 미국 백악관을 찾은 웨이저자 TSMC 회장의 미국 투자 계획에 환대하며 그의 어깨를 토닥거리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로이터 연합뉴스>

지난 3월 미국 백악관을 찾은 웨이저자 TSMC 회장의 미국 투자 계획에 환대하며 그의 어깨를 토닥거리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로이터 연합뉴스>

안보와 경제의 영역이 모호해지는 흐름 속에서 일본도 특정 산업에서 국가 자본주의화(化)를 따라가고 있습니다. 반도체와 자동차 부문입니다.

주요 반도체 기업이 공동 출자해 만든 국가대표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회사인 ‘라피더스’에 혈세 지원을 대가로 ‘황금주’를 받을 태세입니다.

지난 4월 일본 정기국회에서 정보처리촉진법 개정안이 통과됐습니다.

이는 라피더스 출자를 위한 맞춤형 개정법으로, 오는 8월 중순 발효될 예정입니다.

새로 바뀐 정보처리촉진법을 근거로 일본 정부는 라피더스에 9400억원을 지원하고 그 대가로 황금주를 요구할 방침입니다.

이를 통해 기업 의사결정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등 국가안보 차원에서 라피더스를 관리할 것으로 보입니다.

작년 말에는 세계적 완성차 기업인 혼다와 닛산을 상대로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움직임을 보였습니다.

‘경영통합’ 협상이 그것으로, 대만 폭스콘의 닛산 경영권에 관심을 보이자 경제산업성이 혼다를 백기사로 지목해 닛산과 경영통합을 추진하라고 지시한 것이죠.

마치 1997년 한국의 외환위기 국면에서 김대중 정부가 대기업 총수들을 불러 모아 자동차·반도체 등 핵심 산업별 빅딜을 추진한 것과 비슷한 모습입니다.

정부 개입으로 시작된 혼다와 닛산 간 희대의 경영통합 논의는 지난 2월 두 회사 간 입장차가 커 결국 무산됐습니다.

외교·안보 전문 매체인 포린폴리시(FP)는 최근 보도에서 미국 경제에 일고 있는 트럼프 2기의 국가 자본주의 흐름을 조명하며 “효율성과 이윤이 자원 배분을 결정하는 미국의 강력한 자유 시장 질서가 바뀌고 있다”고 진단합니다.

이 매체는 트럼프 2기의 민간 기업 개입 수준이 도를 넘어섰다고 경고하며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기 집권 때 코로나 팬데믹에 대응하기 위해 국방물자생산법(DPA)을 발동하고 마스크와 백산을 만들어낸 사례가 자주 반복될 수 있다고 예상합니다.

국방물자생산법은 미국 대통령이 민간기업에 주요 물품을 확대 생산하고 공급하도록 하는 권한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군수물자 보급을 위해 만든 법으로 미국 대통령이 원자재 수급과 가격 통제 권한, 생산 규제 권한 등을 갖습니다.

2020년 7월 마스크를 쓴채 메릴랜드주 월터리드 국립 군 의료센터를 방문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CNBC 영상 캡처>

2020년 7월 마스크를 쓴채 메릴랜드주 월터리드 국립 군 의료센터를 방문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CNBC 영상 캡처>

자신이 원하는 분야에서 정부 자금을 투입하는 마법 지팡이로 DPA를 보다 빈번하게 활용할 것이라는 관측이죠.

트럼프는 최근 코카콜라에 들어가는 원재료까지 트집을 잡고 변경을 요구했습니다.

코카콜라는 일부 해외 시장에서 사탕수수 추출 설탕을 사용하지만, 미국 내에서 유통되는 제품에는 고과당 옥수수 시럽을 씁니다.

트럼프는 지난 16일(현지시간) 코카콜라가 시럽 대신 사탕수수 설탕을 쓰기로 합의했다고 공개했고 코카콜라는 “조만간 새로운 제품 구성을 발표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반도체 수출 통제, 일방적인 관세 부과, 희토류 기업에 직접 투자, 철강기업에 황금주 요구에 이어 식음료 성분까지 대통령이 통제하는 세상이 됐습니다.

자유방임을 지향하는 미국 경제가 점점 중국을 닮아가는 흐름입니다.

이 변화가 수년 뒤 미국 경제를 어떤 모습으로 바꿔놓을지 궁금합니다.

20% 안팎의 상호 관세, 0.25~1%의 향후 기준금리 인하 여부 이상으로 미국 시장의 투자 가치와 산업 경쟁력에 영향을 줄 변수일 것입니다.

2022년 골프 카트에서 타이어트 콜라를 마시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MSNBC 영상 캡처>

2022년 골프 카트에서 타이어트 콜라를 마시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MSNBC 영상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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