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스타in 김보영 윤기백 기자] “환율이 오른 게 당장 업계에 큰 타격이 될 거라 보진 않는다. 오히려 해외에 콘텐츠를 팔거나 해외에서 돈을 버는 작품들엔 기회이자 이익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0월 열린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기간동안 개막한 아시아 콘텐츠 필름 마켓 현장. (사진=연합뉴스) |
영화 ‘범죄도시’ 시리즈, 드라마 ‘재벌X형사’ 등을 제작한 장원석 비에이엔터테인먼트 대표의 말이다.
24일 금융권 등에 따르면 전날 주간거래에서 원·달러 환율은 1452원에 장을 마쳤다. 환율이 1450원을 넘긴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있던 2009년 3월(1483.5원) 이후 약 5년 만이다. 이에 해외로부터 원자재를 수입해 상품 및 서비스를 생산하는 기업들은 비상에 걸렸다. 급격히 치솟은 환율이 K팝 가수들의 해외 활동 및 K드라마·영화 제작 환경 등 엔터업계에도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원·달러 환율이 1500원선 돌파까지 예상된다는 관측이 나온 만큼, 엔터업계 관계자들도 상황을 예의 주시 중이다. 우선 가수들의 해외 콘서트 투어나 해외를 배경으로 촬영하는(해외 로케이션) 드라마·영화들은 오른 환율로 인해 예산 운영 등에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다만 K콘텐츠의 세계화와 함께 최근 들어 해외를 상대로 콘텐츠를 판매하는 경우는 환율 상승이 오히려 엔터업계에 수혜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해외 로케 비용 상승 걱정…콘텐츠 세일즈엔 기회
해외 로케이션 촬영을 진행 중이거나 진행을 앞둔 작품 제작사들은 오른 환율에 근심을 드러내고 있다. 공개를 예정하고 있는 한국 콘텐츠 중 해외 로케이션을 진행 중인 작품은 류승완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제작사 외유내강이 제작 중인 영화 ‘휴민트’(가제)가 대표적이다. 지난 10월 크랭크인한 ‘휴민트’는 한국과 라트비아 2개국에서 촬영을 진행한다. 조인성, 박정민, 신세경, 박해준 등이 출연한다. ‘휴민트’ 측은 환율 상승으로 인한 타격을 당장 직접 체감하고 있진 않다고 전했다. ‘휴민트’의 배급사 NEW 측은 환율 상승이 미칠 영향에 대해 “콘텐츠의 국외 로케이션 촬영 시 환율 상승으로 인해 일시적인 비용 상승이 발생한 가능성은 있다”면서도 “산업 전반으로 시야를 넓혀 생각한다면 콘텐츠 수출에 해당하는 해외 선판매, 세일즈 측면에선 오히려 환율 상승이 업계의 전체 이익률에 긍정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또 “앞으로 원·달러 환율의 변동성이 상당 기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관련한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 티빙 시리즈 ‘몸값’, 넷플릭스 영화 ‘황야’ 등을 제작한 클라이맥스스튜디오의 변승민 대표는 “해외 촬영이 많이 있는 일부 작품들을 제외하고 작품을 직접 제작하는 입장에서 환율 상승으로 인한 변화가 체감되는 부분이 아직은 없다”고 답했다. 이어 “해외 세일즈 측면에선 오히려 환율 상승을 통해 얻는 긍정적 영향도 분명 있을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다만 한국 콘텐츠를 향한 세계적 관심 상승과 함께 최근 K콘텐츠 제작 과정에서 배우, 작가 등 해외 아티스트들과의 협업이나 해외 원작과의 협업 등이 늘어나는 추세인 만큼 이 과정에서 환율 상승이 부담으로 작용하는 측면도 있지 않을까 예상해본다”고 부연했다.
장원석 대표는 “해외 로케이션을 진행했거나 계획하고 있는 작품들은 계약금 중도금 잔금 등을 해외로 송금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오른 환율로 예산이 기존 예상 금액을 초과하는 이슈가 일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국내 콘텐츠 제작 예산은 대개 원화를 기준으로 짜여지기 때문”이라고 생각을 전했다. 또 “반대로 해외에 콘텐츠를 수출하는 경우는 계약금 중도금 잔금을 해외로부터 입금받게 되니 환차로 인한 추가 수익 등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도 덧붙였다.
최근 미국투어를 다녀온 그룹 피프티 피프티(사진=어트랙트) |
해외투어·앨범·굿즈 매출 ↑… K팝 환율 상승 ‘호재’
K팝 가요기획사들도 환율 급등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기획사들은 해외 투어, 해외 프로모션 등을 진행할 경우 현지 체류비용이 늘어날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환율 상승이 수혜로 작용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해외투어 수익, 앨범 및 굿즈 매출이 원화로 환산되면 이전보다 더 높은 가치로 평가받을 수 있어서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그룹 방탄소년단, 세븐틴 소속사 하이브의 경우 해외 매출의 비중이 63.7%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미국 빌보드 메인 앨범차트 빌보드200에서 6연속 1위를 차지한 그룹 스트레이 키즈 소속사 JYP엔터테인먼트도 해외 매출이 55.7%에 달한다. 이들 기획사의 경우 영미권에서 월드투어, 해외공연를 활발하게 진행 중이고, 앨범 판매량도 높은 편이다. 환율이 급등하면서 공연 및 앨범 판매 수익도 자연스레 증가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미국 현지에서 투어를 진행 중인 한 K팝 기획사 관계자는 “대부분의 월드투어, 해외 프로모션은 현지 업체에서 비용 일체를 지불하고, 출연 아티스트는 개런티를 받는 구조”라며 “기획사 입장에선 추가로 투입하는 비용이 없기에 오히려 환율의 수혜를 본다”고 말했다. 이어 “아티스트 및 스태프의 현지 체류비가 늘어날 수 있겠지만, 엄청난 손실을 가져올 만큼 손해보는 구조는 아니다”라며 “오히려 한국에서 제작해 수출한 앨범, 굿즈, 2차 지식재산권(IP) 콘텐츠 등의 경우 환율이 상승하면 그만큼 매출 증가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짚었다.
K팝 기획사 관계자들은 원달러 환율보다 엔화 약세를 더욱 민감하게 바라보고 있다. 엔저 현상이 지속되면서 일본에서 벌어들이는 수익이 이전보다 낮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투어를 진행 중인 한 K팝 기획사 관계자는 “최근 미국에서 K팝의 활약이 두드러지긴 하지만, 매출적인 면에선 일본 수익이 압도적으로 많은 게 사실”이라며 “K팝 기획사 입장에선 엔화 약세에 더 민감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귀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