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뉴미디어 자리에 새 기자가 왔습니다. 매튜 폴디, 부츠가 멋지네요. 매튜는 워싱턴 리포터의 편집장입니다.”
15일(현지시간) 오후 1시30분, 백악관 웨스트윙의 제임스 S 브래디 브리핑룸. 캐럴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트럼프 대통령의 성과를 설명하는 모두발언을 마친 후 단상 앞쪽 오른편에 마련된 ‘뉴미디어석’에 앉은 기자를 소개했다. “새롭고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매체”라면서 “기업과 정부의 최고위층이 이 매체의 독자”라고 했다.
성조기 무늬 부츠를 신은 폴디 편집장은 레빗 등과 구면인 듯 했다. 그는 “하버드대와 개혁을 거부하는 다른 대학에 정부가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를 물었고, 레빗 대변인은 “대통령의 입장은 상식에 근거한 것”이라면서 하버드대에 대한 지원 삭감 조치를 옹호했다.
○개방성은 최고 수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한 후 백악관 브리핑 분위기는 확연히 달라졌다. 일단 브리핑이 훨씬 잦아졌다. 대변인 브리핑은 주 3회 이상 이뤄지고 있고, 트럼프 대통령도 1~2일에 한번 꼴로 기자들의 질문을 받는다. 모든 기자회견은 물론 국무회의까지 실시간으로 온라인에 스트리밍된다.
지난 조 바이든 정부에서는 볼 수 없었던 풍경이다. 바이든 정부는 일부 미디어를 상대로 백악관 브리핑을 먼저 진행한 후 엠바고 시간에 맞춰 브리핑 내용을 송부하는 경우가 많았다. 백악관에서 만난 한 기자는 “개방성 측면에선 그 어떤 정부보다도 트럼프 정부가 훨씬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지난 9일 상호관세 유예 발표 후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과 레빗 대변인은 백악관 입구 잔디밭에서 깜짝 브리핑을 열었고, 트럼프 정부 관계자들은 연일 TV에 출연해 정책을 홍보하고 있다. 기성 매체를 통한 간접 전달 대신 국민에게 직접 정책을 알리기를 선호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철학이 반영된 것이다.
브리핑룸은 한층 더 북적이고 있다. 트럼프 정부가 워싱턴리포터와 같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 성향의 뉴미디어들의 출입을 적극 장려하고 있어서다. 가운데 배치된 49개 좌석은 전통매체들의 고정석이다. 의자 하단에 매체명이 써 있다. 자리가 없는 매체는 서서 브리핑을 들어야 하는데, 점점 밀집도가 높아지고 있다. 비좁은 브리핑룸에 100여명이 꽉 들어차고 나면 한겨울에도 꽤 후끈하다. 경쟁적으로 손을 들어 질문 기회를 요청할 때면 열기가 더해진다.
○‘친트럼프’ 미디어 약진
뉴미디어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비판적인 질문의 비중은 자연스레 줄어들고 친정부 성향의 질문이 늘었다. 정부가 홍보하고 싶어하는 분야를 일부러 묻는 질문, 외부의 비판을 거론하며 정부의 입장을 설명하도록 자리를 깔아주는 질문이 많다. 리얼아메리카보이스의 브라이언 글렌 기자가 지난달 말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회담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왜 양복을 입지 않았느냐”고 지적한 것이 대표적이다.
15일에도 비슷한 장면이 여러 번 연출됐다. 피터 두시 폭스뉴스 기자가 15일 하버드대에 관해 “아이비리그 대학들이 연방정부 지원을 많이 받는 이유가 뭐냐”고 묻자 레빗 대변인은 즉각 “아주 좋은 질문”이라면서 “그들은 우리나라의 학생들을 세뇌시키고 있으며 다양한 연방기관의 대표자들이 매주 모여서 방금 제기한 질문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고 답했다.
소수 인원만 취재를 허용하는 풀 기자단 구성도 바뀌고 있다. 통상 풀 기자단은 매체 종류(취재, 사진, 통신, 영상, 라디오)에 따라 주요 매체들이 돌아가면서 맡는다. 하지만 백악관은 대형 매체 대신 친 트럼프 성향 중소매체를 선호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레빗 대변인은 이날 AP와 로이터, 블룸버그 등 뉴스 통신의 백악관 풀 기자단 상시 참여 자격을 박탈하는 지침을 제시했다.
그렇다고 해서 CNN이나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와 같이 친 민주당 성향의 매체에 질문 기회가 돌아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참석하는 기자회견은 대부분 풀 기자단이나 사전에 선별된 매체만을 대상으로 진행되는데, 진보성향 매체도 포함된다.
트럼프 대통령도 이들에게 질문 기회를 준다. 다만 구박은 좀 한다. 지난 14일에는 CNN 기자의 질문을 받으면서 “평판이 나쁜 앵커의 질문을 들어보자”고 했다. 또 질문을 듣고 나서는 “그들은 항상 편향된 시각으로 질문하고, 그래서 아무도 그들을 보지 않는다”고 했다.
레빗 대변인에 대한 평판은 엇갈린다. 수많은 질문에 척척 대답하는 그의 역량이 뛰어나다는 점에 대해서는 많은 기자들이 동의한다. 27세라는 나이를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객관적인 정보 전달보다 “이것이 바로 트럼프 효과”라는 식의 용비어천가를 반복하면서 진짜 궁금한 점에 대한 답변은 회피한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비판적 질문이 나온 후에는 친 트럼프 성향 매체에 질문 기회를 줘서 흐름을 끊는 것도 그가 자주 쓰는 수법이다. “프랑스가 독일어를 안 쓰는 것은 (2차 세계대전에서 이긴) 미국 덕분”이라는 발언 등은 오만하다는 비판도 받았다.
○비판적 질문은 줄어
브리핑 룸 뒷편은 기자실이다. 지하실까지 쓰고 있지만 공간이 너무 비좁아 상주 가능한 기자는 많지 않다. 기자실 초입엔 ‘우리는 AP와 함께 한다’고 적힌 A4 용지가 붙어 있다. AP통신은 백악관 풀 기자단에 관례적으로 취재기자와 사진기자를 배치해 온 큰형님 같은 통신사지만, 멕시코만을 미국만으로 수정하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를 이행하지 않아 브리핑룸 출입을 금지당한 상태다. 작년 7월 트럼프 대통령 피격 순간을 ‘세기의 사진’으로 남긴 이 통신사 소속 에번 부치 기자도 출입하지 못하고 있다. 이 조치가 부당하다는 출입기자 연판장에는 친 트럼프 매체인 폭스뉴스와 뉴스맥스도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저항은 거기까지다. 83년 역사를 가진 미국의소리(VOA) 등이 한 순간에 해체 위기에 처하고, 중립 성향으로 분류되는 대형 통신사 AP가 쫓겨난 만큼, 목소리를 내다간 다음 타깃은 내가 될 수도 있다는 분위기가 깔려 있다. 한 매체 기자는 “일단 취재할 수 있는 자격을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면서 질문 기회를 얻기 위해서는 “MAGA 모자라도 쓰고 있어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워싱턴=이상은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