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봉쇄 꺼낸 이란 '벼랑 끝 전술'…세계 경제 초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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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란 핵시설 18곳 이상 파괴 > 미국 공습 직후인 22일(현지시간) 위성으로 촬영된 이란 이스파한 핵시설 모습. CNN은 사진을 분석한 결과 최소 18개의 구조물이 파괴되거나 손상됐다고 보도했다. 미군은 전날 이스파한을 비롯해 포르도, 나탄즈 등 이란 핵시설 세 곳을 벙커버스터와 순항미사일로 폭격했다. /로이터연합뉴스

< 이란 핵시설 18곳 이상 파괴 > 미국 공습 직후인 22일(현지시간) 위성으로 촬영된 이란 이스파한 핵시설 모습. CNN은 사진을 분석한 결과 최소 18개의 구조물이 파괴되거나 손상됐다고 보도했다. 미군은 전날 이스파한을 비롯해 포르도, 나탄즈 등 이란 핵시설 세 곳을 벙커버스터와 순항미사일로 폭격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봉쇄 가능성을 꺼냈다. 실제 봉쇄에 나서면 세계 경제는 물론 이란도 경제적, 외교적으로 직격탄을 맞을 수 있어 미국에 맞서기 위한 ‘벼랑 끝 전술’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란 의회는 지난 22일 미국이 이란 핵시설 세 곳을 폭격한 직후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의결했다. 다만 실제 봉쇄가 이뤄지려면 이란 최고국가안전보장회의(SNSC) 승인과 이란 최고지도자인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의 재가가 필요하다. 하메네이는 23일 X에 “시오니스트 적(이스라엘)이 심각한 실수를 저지르고 엄청난 범죄를 자행했다”며 “응징당해야 하고 지금 응징을 당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앞서 SNS에 “정권 교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게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지만, 만약 현 이란 정권이 이란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지 못한다면 왜 정권 교체가 없겠느냐”고 밝혔다. 미국은 ‘이란 정권 교체’,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 등 최고의 압박 카드를 꺼내 들고 서로를 위협했다.

국제 해운업계는 경계 모드에 들어갔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홍콩 선사인 코스위즈덤레이크호, 마셜제도에 등록된 사우스로열티호 등 초대형 유조선 2척이 미국의 이란 폭격 직후 호르무즈 해협 초입에서 항로를 정반대 아라비아해 방향으로 급변경했다. 한국 기업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호르무즈 해협 대신 홍해를 통한 운송을 늘릴 계획이다. 정유업계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에 대비해 중동산 원유를 대체할 스폿(단기) 물량 찾기에 나섰다.

코너 몰린 이란 '호르무즈 봉쇄' 카드 꺼냈다…美 "자멸 행위"
韓日中 등 아시아로 수출되는 원유 하루 2000만 배럴 통과

호르무즈 봉쇄 꺼낸 이란 '벼랑 끝 전술'…세계 경제 초긴장

이란의 호르무즈해협 봉쇄 방안은 ‘벼랑 끝 전술’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자국 경제 동맥을 스스로 끊는 자해 조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란은 과거에도 호르무즈해협 봉쇄 가능성을 거론했지만 실행에 옮기진 않았다.

◇‘호르무즈 봉쇄’ 거론한 이란

이란 의회(마즐리스)는 22일(현지시간) 미국의 이란 핵시설 폭격 직후 호르무즈해협 봉쇄를 의결했다. 다만 이는 최종 결정은 아니다. 해협 봉쇄 최종 결정권은 이란 최고국가안전보장회의(SNSC)에 있다. 이란 국가안보회의는 외교·안보·국방·정보 정책 전반을 결정하는 최고 전략 기구다. 마수드 페제시안 이란 대통령이 의장이다.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의 최측근이 사무총장을 맡고 국방장관과 외무장관, 정보부 수장, 혁명수비대 사령관, 군 최고위 인사, 최고지도자가 지명한 전문가 등 12명 내외로 구성된다.

이란의 각종 분쟁과 안보, 외교 사안 등에 대한 결정은 대부분 이 회의를 통해 이뤄진다. 회의 결정은 최고지도자 재가를 반드시 받아야 한다. 결국 호르무즈해협 봉쇄 여부는 하메네이의 손에 달려 있다.

호르무즈해협은 세계 주요 원유 수송로이자 ‘병목 지점’이다. 길이 약 160㎞에 폭은 가장 좁은 곳 기준으로 50㎞ 정도에 불과하다. 페르시아만을 대양으로 이어주는 유일한 해로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이 최근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이 해협을 통한 원유 운송량은 2024년 기준 하루 평균 2000만 배럴이다. 세계 원유 소비량의 약 20%에 해당한다. 올해 1분기에도 이 같은 운송량은 큰 변화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 석유 소비량의 20% 통과

이 해협을 통과하는 원유는 대부분 한국을 포함해 중국 일본 인도 등 아시아 시장을 향한다. KOTRA는 최근 보고서에서 한국으로 오는 중동산 원유의 99%가 이 해협을 거친다고 분석했다. 이런 호르무즈해협의 지정학적 중요성 때문에 해협 봉쇄는 이란이 미국과 이스라엘을 위협할 수 있는 회심의 반격 카드로 꼽힌다.

하지만 호르무즈해협 봉쇄는 이란에도 직격탄이다. 이란은 미국 제재로 원유 수출을 제한받고 있다. 하지만 하루 수십만 배럴의 원유를 호르무즈해협을 통해 중국 등으로 수출하고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원유 수출은 이란 전체 수출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국내총생산(GDP)의 20~30%를 맡고 있다.

JD 밴스 미국 부통령은 “이란의 호르무즈해협 봉쇄는 자살 행위”라며 “이란 경제가 해협을 통한 수출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스스로 숨통을 끊는 일”이라고 경고했다. 마이클 루빈 미국기업연구소(AEI) 선임연구원도 “이란이 호르무즈해협을 막으면 적이 타격받기 전에 이란 경제가 먼저 마비될 것”이라며 “이란의 군사·경제 역량이 스스로 소진돼 오히려 정권의 생존을 위협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외교적 고립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호르무즈해협 봉쇄는 글로벌 에너지 안보에 대한 공격으로 읽힐 가능성이 있다. 중국 등 이란에 우호적인 국가마저 등을 돌릴 수 있다. 중국은 이란 석유 수출 물량의 90% 가까이를 소화하고 있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해협 봉쇄 효과 제한적?

이런 이유로 그동안 이란은 호르무즈해협 봉쇄를 주저했다. 1984년 ‘탱커 전쟁’, 2011년 ‘이란 핵 위기’, 2018년 ‘미국과 이란 긴장’ 등이 발생했을 때 이란은 유조선 공격, 미사일 발사 등에 나섰지만 호르무즈해협 전면 봉쇄는 하지 못했다.

호르무즈해협 봉쇄의 효과가 제한적일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란은 수십 년간 해협 봉쇄 훈련을 했다고 선전해 왔다. 이란혁명수비대(IRGC) 해군은 수백 척의 고속 공격정과 드론, 대함미사일, 해상 기뢰 부설 능력도 보유했다. 그러나 미국 해군 등의 대기뢰 작전과 호위함대 투입으로 항로 복원이 어렵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은 바레인에 주둔한 제5함대와 카타르, 아랍에미리트(UAE) 기지 등에 강력한 해공군 전력을 상시 배치하고 있다. 이란 의회 결의가 나오자마자 미국 국무부는 “이란이 해협을 봉쇄하면 사태가 급격히 격화될 것”이라고 밝혔다.

김주완/신정은 기자 kjw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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