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기운 채우고, 물방울 감성 더하고, 추석 더 풍성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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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서울 리움미술관에서는 이불의 대규모 개인전과 '호작도' 전시가 관람객들의 주목을 받으며 성황리에 개막했다.

특히 이불의 전시는 기술과 인간의 공존에 대한 불안을 담고 있으며, 기계장치가 더해진 하이브리드 인체상 같은 작품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또한, 김창열의 회고전과 마크 브래드포드의 개인전 등 다양한 글로벌 아트 전시들이 서울 전역에서 열리고 있어 관람객들에게 풍성한 문화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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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 호랑이'라는 별칭이 붙은 호작도. 88서울올림픽 마스코트 호돌이의 모티브가 됐다.  리움

'피카소 호랑이'라는 별칭이 붙은 호작도. 88서울올림픽 마스코트 호돌이의 모티브가 됐다. 리움

지난달 30일 오전 10시. 서울 한남동 리움미술관엔 문을 열자마자 물밀듯 인파가 몰려들었다. 배낭을 멘 외국인 관람객도 상당수였다. 이들의 발길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뉘었다. 한국 현대미술의 거장 이불(61)의 대규모 개인전과 넷플릭스 '케이팝 데몬 헌터스' 열풍으로 새삼 주목받는 '호작도' 전시다. 일주일간의 긴 추석 황금연휴에 가족·연인과 함께 미술관 투어를 떠나보면 어떨까. 서울이 글로벌 아트의 격전지로 떠오르면서 국내외 거장들의 수준 높은 전시가 곳곳에서 열리고 있다. 추석 당일인 6일만 제외하고 대부분 미술관이 연휴 기간 문을 연다. 꼭 봐야 할 5대 전시를 골라 관전 포인트를 짚어봤다.

이불의 '사이보그 W6', 2001년작.  리움

이불의 '사이보그 W6', 2001년작. 리움

리움미술관이 이불의 최근 30년 작업을 총망라한 '1998년 이후'는 인공지능(AI) 시대 더욱 현실감 있게 다가오는 화제의 전시다. 공중에 하얗게 매달린 그의 초기작 '사이보그'는 머리와 팔다리가 잘려 있다. 완전하고 완벽한 신체를 갈망하지만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인간의 욕망과 한계를 보여준다. 동시에 기계와 인간이 공존하는 미래에 대한 불안과 혼란을 담고 있다.

이불은 지난해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정면 파사드에 조각 '롱테일 헤일로' 4점을 설치해 가장 핫한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 뉴요커를 홀린 조각 중 한 점인 검은 조각상이 전시장 초입에 금의환향한 듯 놓여 있다. 멀리서 보면 승리의 여신상 같은 고전적인 느낌을 자아내지만 가까이 다가갈수록 기계장치가 더해진 하이브리드 인체상이다. 홍익대 재학시절부터 유명했던 작가의 드로잉 실력과 평면 회화를 마음껏 즐길 수 있다는 점도 이번 전시의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다.

사진설명

다면적이면서 난해한 이불의 전시를 보고 나면 우리 민족의 해학과 풍자가 일품인 까치호랑이 그림들이 기다리고 있다. 리움의 '까치호랑이' 전시는 '케데헌 열풍'에 편승해 급조한 전시라는 오해를 살 수 있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준비한 전시였다. 단 7점이 벽에 걸렸을 뿐인데도 친숙한 이미지가 강렬하게 뇌리에 남는다.

호랑이는 액운을 막아주는 산신이며 까치는 좋은 소식을 전하는 길조의 상징이다. 19세기 민화에서 유행했던 도상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호랑이가 없는 틈을 타 여우와 이리가 위세를 부리는 이른바 '호가호위'하는 상황을 바로잡기 위해 호랑이가 산에서 내려오는 '출산호(出山虎)'이며, 또 하나는 호랑이가 새끼를 키우는 '유호(乳虎)' 그림이다. 임진왜란 발발 당시인 1592년 그려진 가장 오래된 '호작도'에서 화폭을 뚫고 나올듯 생동감을 자랑하는 김홍도의 '송하맹호도', 1988년 서울올림픽 마스코트인 호돌이의 모티브가 된 19세기 민화 속 이른바 '피카소 호랑이', 구한말 탐관오리를 상징했던 호랑이 그림까지 호작도의 변천사를 확인할 수 있다.

김창열 '물방울 ABS N°', 1973,  샘터화랑 소장

김창열 '물방울 ABS N°', 1973, 샘터화랑 소장

경복궁 옆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도 블랙홀처럼 관람객을 빨아들이고 있다. 이곳에서 열리는 '물방울 화가' 김창열(1929~2021) 회고전은 개막 40일 만에 관람객 12만명을 돌파했으며, 하루 평균 3000명이 찾는 대성황을 이루고 있다.

이 전시가 주는 가장 큰 감동은 하나의 물방울을 그리기 위해 화가의 한평생이 필요했다는 사실이다. 물방울의 탄생은 우연도 행운도 아니었다. 절망과 좌절을 딛고 일어선 작가의 불굴의 의지요, 투지의 결과물이었다는 것을 전시는 촘촘하게 시간 순으로 보여준다. 물방울은 애초 핏빛을 띠고 있었다. 한국전쟁 중 중학교 동창 120명 중 절반이 사망한 것을 목격한 작가는 "살갗에 난 구멍을 보고 물방울을 그렸다"고 토로했을 정도다. 1950년대 앵포르멜(비구상) 운동을 주창하며 뉴욕으로 건너갔지만 미국 화단의 외면과 냉대를 받으며 기하학적 추상을 시도한다. 그러다 1972년 파리 외곽의 허름한 마구간에서 대야에 물을 떠 놓고 세수하다가 마주한 작은 물방울에 마음을 뺏겨 지금의 영롱한 물방울을 탄생시킨다.

관람객들은 뜨거운 후기를 소셜미디어에 남기고 있다. 한 관람객은 인스타그램을 통해 "전시를 보고 왔는데 내 눈에서 김창열의 물방울이 흐르고 있다"며 먹먹해했다.

외국 거장들의 전시도 이번 연휴 나들이에서 빠질 수 없다. 용산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서 열리는 마크 브래드포드(64) 개인전은 흙수저·성소수자·흑인이라는 세 가지 비주류 특성이 어떻게 환상적으로 작품에 녹아들며 미국의 추상 회화 맥을 잇는지 보여준다. 그는 지난달 서울 프리즈에서 회화 작품이 단일 최고가인 63억원에 판매되며 시장의 주목을 받았다.

마크 브래드포드의 2024년작 'The Betrayal of a Belief'. 파마할 때 쓰는 얇고 작은 파마지를 수없이 반복해 캔버스에 붙인 작품이다.  아모레퍼시픽미술관

마크 브래드포드의 2024년작 'The Betrayal of a Belief'. 파마할 때 쓰는 얇고 작은 파마지를 수없이 반복해 캔버스에 붙인 작품이다. 아모레퍼시픽미술관

2017년 베네치아비엔날레 미국관 대표 작가였던 브래드포드는 미용실에서 일했던 홀어머니 밑에서 가난하게 자랐다. 마흔줄에 작가로 늦깎이 데뷔하기 전까지 그 역시 미용사 일을 병행했다. 그래서 그의 캔버스에는 물감 대신 머리를 말고 파마할 때 쓰는 얇은 반투명 파마지가 수없이 등장한다. 길거리 벽에 붙어 있던 전단지와 포스터, 거리에 나뒹구는 폐지도 작품의 소중한 재료가 된다. 무엇보다 이 전시의 백미는 250평 남짓한 전시장 바닥을 가득 메운 평면 추상 작품이다. 관람객들은 이 작품 위를 마음껏 걸으며, 작품의 일부가 될 수 있는 특권을 누린다. 전시 제목 '킵 워킹(Keep Walking)'처럼 계속 걸으며 내가 서 있는 지점이 어디인지 떠올려본다.

용인 호암미술관에서 열리는 루이즈 부르주아(1911~2010) 회고전 '덧없고 영원한'도 역대급 전시다. 뉴욕 이스턴 재단의 아시아 순회전의 일환이다. 부르주아를 거미 조각 '마망(Maman·엄마)'의 작가로만 알고 있었다면 이번 기회를 통해 조각과 회화, 드로잉, 설치 등 다양한 매체를 자유자재로 구사한 그의 진면목을 확인해보자. 어린 시절 아버지에 대한 증오와 트라우마가 어떻게 모두를 위로하고 치유하는 위대한 예술로 승화했는지 그 여정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값진 경험이다.

[이향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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