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수교로 열린 대북 휴민트 통로의 빛과 그림자[정일천의 정보전과 스파이]

1 week ago 17

2013년 12월 북한 노동당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체포되는 장성택. 동아일보DB 정일천 전 국가정보원 국장 대한민국 스파이들이 휴민트 활동에 가장 어려움을 겪는 대상은 북한이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같은 민족이지만 폐쇄적인 환경 탓에 접근이 극도로 제한돼 있기 때문이다. 기본적인 정보가 부족한 데다 북한 주민을 접촉할 기회 자체가 적다 보니 정보원을 포섭하기가 쉽지 않다. 이에 비해 북한은 상대적으로 훨씬 유리하다. 언론을 비롯한 다양한 매체를 통해 한국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고, 제3국을 거쳐 공작원을 침투시키기도 용이하다. 남북한의 휴민트 전쟁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벌이는 경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비대칭 휴민트 환경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온 계기가 있다. 바로 1992년 ‘한중 수교’다. 중국으로 향하는 문이 열리면서 대북 접근성이 획기적으로 높아졌고, 정보 수집을 위한 큰 통로도 마련됐다. 수교 이전까지만 해도 주재국 행사 등에서 남북 외교관들이 어색하게 마주치는 경우를 제외하면 사실상 북한 사람을 접촉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그나마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를 통한 접근이 사실상 유일한 정보 수집 통로였을 정도다. 그런 점에서 한중 수교는 한국 스파이들에게 축복이었지만 북한으로서는 앞마당을 내준 것과 다름없었다. 수교 이후 단둥과 옌지 등 중국 동북 3성 지역은 남북 스파이들의 전쟁터로 변했다. 대북 휴민트망 개척이 본격화되면서 북한을 왕래하는 조선족 상인과 중국을 방문한 북한 밀무역상 등을 통해 각종 대북 첩보가 쏟아져 들어왔다. 문제는 첩보의 질이었다. 입수된 첩보 중 상당수는 이른바 ‘카더라 첩보’로 불리는 소문 수준이거나 허위·과장된 정보였다. 심지어 가짜 비밀 문건을 만들어 거액을 요구하거나, 실존하지 않는 북한 내 반체제 조직의 구성원을 자처하며 지원을 요청하는 일도 있었다. 대북 정보에 목말라 있던 한국 스파이들의 상황을 악용해 첩보를 돈벌이 수단으로 삼는 정보 장사꾼들이 리스크였다. 게다가 중국의 방첩 능력을 얕본 채 원칙을 벗어난 아마추어식 활동을 벌이다가 휴민트망을 노출하는 실수도 범했다. 결국 한중 수교 이후 1990년대까지는 현지 사정에 대한 정보와 경험이 부족해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혹독한 수업료를 치러야 했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거치며 오랜 기간 축적한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2000년대 들어 대북 휴민트 역량은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첩보의 출처와 질부터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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