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프랑스 부르고뉴의 로마네 꽁티 1945 빈티지가 경매에서 한화 약 12억 원에 낙찰됐다. 술 한 병이 아파트 한 채 값이라니, 일반인 입장에서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세상에서 가장 비싼 술은 로마네 꽁티 하나뿐일까. 그리고 이런 천문학적인 가격에는 어떤 맥락과 서사가 숨어 있을까. 주종별로 그 비밀을 하나씩 들여다봤다.
일본 사케 — 레이쿄 크리스탈 0 (零響 Crystal 0) 2023
약 1,375만 원 (1,375,000엔 / 500ml)
사케는 와인 및 위스키에 비해 오랫동안 '저렴한 아시아 발효주'라는 이미지가 있었다. 와인이나 위스키에 비해 고가 시장이 작았고, 희소성의 서사도 약했다. 하지만 최근 일본 양조업계는 그 공식을 정면으로 깨고 있다.
미야기현 니이자와 양조장(新澤醸造店)이 내놓은 레이쿄 크리스탈 0은 현재 일반 소비자가 구매할 수 있는 사케 중 세계 최고가다. 500ml 한 병에 137만5000엔, 한화로 약 1300만 원에 달한다. 1ml당 2750엔 수준이다.
이 술의 핵심은 '정미율(精米率)'에 있다. 쌀을 얼마나 깎아내느냐를 나타내는 이 수치가 사케 품질의 척도인데, 레이쿄 크리스탈 0은 정미율 1% 미만을 달성했다. 쌀 한 톨에서 99% 이상을 깎아내고 단 1% 이하만 남겨 술을 빚는다는 의미다. 통상 최고급 등급인 다이긴조(大吟醸)급이 50% 이하인 것과 비교하면, 그 극단적인 정도를 짐작할 수 있다.
이 수준의 정미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여겨져 왔다. 니이자와 양조장은 2018년, 무려 5,297시간의 정미 작업 끝에 0.85% 정미율을 처음으로 구현했다. 이 성취는 일본 주세법 개정에까지 영향을 미쳤고, 업계에 '0%대 정미율'이라는 전례 없는 분류를 만들어냈다. 전 세계에 단 999병만 생산되는 이 술은, 연간 333병이 일본 내에 배정된다.
레이쿄 크리스탈 0의 경쟁자가 등장하려면 누군가 5000시간 이상을 정미 작업에 쏟아야 한다. 기술적 장벽이 곧 희소성의 성벽이다.
한편, 사케 역사상 가격 기준으로 절대적인 1위는 따로 있다. 닷사이(獺祭)를 만드는 아사히 주조와 미쓰비시중공업이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 양조 실험을 진행해 만든 '닷사이 MOON'은 100ml 한 병이 약 10억 원에 판매됐다. 다만 ISS에서 생산된 모로미(발효 술덧)를 지구로 귀환시켜 완성한 단 한 병의 실험적 산물인 만큼, 판매 가능한 상품으로 보기보다는 우주 양조의 상징적 결과물로 이해해야 한다. 판매 수익 전액은 일본 우주 개발 기부금으로 쓰였다.
프랑스 와인 — 로마네 꽁티 1945 빈티지
약 $812,500 (한화 약 12억 원) / 2026년 4월 Acker 경매 낙찰가
와인 업계에서 로마네 꽁티(Romanée-Conti)는 에르메스급 그 이상으로 불린다. 한국에서도 한 병에 가볍게 6000만 원을 넘기는 것이 일반적인 빈티지임에도 불구하고, 1945년산은 그 로마네 꽁티 중에서도 또 다른 차원에 있다. 2026년 4월 Acker 경매에서 81만 2500달러, 한화 약 12억 원에 낙찰되며 와인 경매 사상 최고가 기록을 다시 썼다.
로마네 꽁티라는 이름을 쓸 수 있는 밭의 총면적은 약 1.8헥타르, 축구장 두 개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 밭은 그 자체의 이름으로 프랑스 최고 등급인 그랑 크뤼(Grand Cru)를 획득했다. 옆에 붙은 밭 역시 특급 밭이지만 수천 년간 다르게 관리된 탓에 토양의 성질이 다르다. 두 밭을 합쳐도 '로마네 꽁티'가 될 수 없고, 다른 땅을 붙여서도 안 된다. 결국 세상에 아무리 부자가 늘어도 생산량이 그 수요를 따라갈 수 없는 구조다.
또 하나는 포도나무의 마지막이다. 로마네 꽁티는 당시 필록세라(Phylloxera)라는 해충에 취약한 프랑스 토종 포도나무를 밭 전체에서 걷어내고, 필록세라에 강한 미국 포도나무 대목에 접목하기로 결정했다. 1945년은 그 토종 포도나무로 수확한 마지막 해였으며, 그 해 생산된 병은 단 600병에 불과했다. 이후 밭은 묵혔고 새 묘목이 충분히 자란 1952년에야 생산이 재개됐다. 즉 1946년부터 1951년까지의 로마네 꽁티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 공백의 시작점, 토종 포도나무의 마지막 수확이 담긴 600병이라는 서사가 가격에 반영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무엇보다 1945년은 제2차 세계대전의 마지막 해라는 상징성이다. 연합군이 독일에 승리한 바로 그 해, 나치의 억압 속에 자유를 외치던 프랑스의 승리의 상징이라고도 볼 수 있다.
수집용 고급 와인 시장에는 신제품이 나와도 구제품 가격이 떨어지지 않는 독특한 역학이 있다. 오래되면 오래될수록 하나라도 마시거나 파손되면 그만큼 수량이 줄어들고, 새로 생산할 방법은 없다. 누군가 개봉해서 마시면 마신 만큼 가격이 오를 가능성이 커진다.
최고가 와인들의 비즈니스 모델은 '생산'이 아닌 '소멸'로 가치가 상승하는 독보적인 구조다. 신제품 출시로 구형 모델이 할인되는 업계와는 정반대다.
스카치 위스키 — 맥캘란 발레리오 아다미 1926
£2,187,500 (한화 약 35억 원) / 2023년 11월 소더비 경매 낙찰가 (역대 위스키 경매 최고가)
위스키 수집 시장에서 맥캘란(The Macallan)은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파인앤레어 1926(Fine & Rare 1926)'은 위스키 경매 역사를 반복해서 다시 쓴 제품이다. 2005년 국내에서 7000만 원에 낙찰된 제품은 2019년 영국 소더비 경매에서 150만 파운드(약 22억 원)에 낙찰되며 당시 세계 최고가 기록을 세웠다. 그리고 4년 뒤인 2023년 11월, 같은 소더비 경매에서 이탈리아 팝아티스트 발레리오 아다미(Valerio Adami) 라벨 버전이 218만 7500파운드, 한화 약 35억 원에 낙찰됐다. 주류 경매 사상 최고가 기록을 또다시 경신한 것이다. 경매 전 예상가는 75만~120만 파운드였다. 낙찰가는 예상 상단의 약 두 배에 달했다.
이 술의 원점은 192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맥캘란 263번 캐스크(Cask #263)에서 증류된 원액은 60년 동안 셰리 오크통에서 잠들어 있었다. 당시 맥캘란 최장기 숙성 기록이었다. 1986년, 숙성의 정점에서 개봉된 이 캐스크에서 나온 병은 총 40병뿐이었다. 초기 출고가는 5000파운드였지만, 이후 경매가는 수백 배 치솟았다.
40병의 구성도 흥미롭다. 영국 팝아트의 아버지로 불리는 피터 블레이크(Peter Blake)가 12병, 이탈리아 화가 발레리오 아다미(Valerio Adami)가 12병, 아일랜드 화가 마이클 딜런(Michael Dillon)이 6병의 라벨 디자인을 맡았다. 나머지 14병은 브랜드 고유의 '파인앤레어(Fine and Rare)' 라벨이 붙었다. 2023년 최고가를 기록한 것은 아다미 라벨 버전이다. 그런데 이 12병 중에서도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1병이 파손됐고, 1병은 음용됐다고 알려져 있다. 남아 있는 정확한 수량은 공개되지 않는다. 가격이 오를수록 남은 수량에 대한 정보는 더욱 감춰진다.
맥캘란 1926의 위력은 위스키 시장의 경계를 훌쩍 뛰어넘는다는 점에 있다. 1986년 출시 당시는 스카치 위스키 산업 자체가 침체기였다. 이 제품은 와인 컬렉터와 럭셔리 구매자들을 위스키 시장으로 끌어오기 위한 시도였고, 그 서사가 통했다. 소더비는 이 제품에 대해 "모든 경매인이 팔고 싶어 하고, 모든 컬렉터가 소장하고 싶어 한다"고 평했다. 조니 파울 소더비 위스키 스페셜리스트는 "위스키 시장이 어떻게 흘러가든, 맥캘란 1926은 항상 극도로 희귀한 존재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단 40병. 60년의 침묵. 예술가와의 협업. 그리고 재난으로 사라진 수량. 맥캘란 1926은 병이 깨지고 마셔질수록 남은 것의 가격이 오르는 구조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한국 전통주 — 고운달
36만 원 (500ml) / 경북 문경 오미나라
한정판을 제외하고, 국내 전통주 일반 제품 중 최고가 라인에 꼽히는 술이 경북 문경에서 나온다. 오미나라의 '고운달'이다. 52도짜리 오미자 증류주로, 500ml 한 병이 36만 원이다.
술의 배경에는 이종기 대표가 있다. 그는 서울대 농화학과 출신으로 한국 대표 위스키인 윈저와 골든블루를 개발한 마스터 블렌더 출신으로, 36년간 세계 주류업계에서 일한 최고의 양조 전문가다. 세계 명주의 기준이 되는 재료를 국산에서 찾다가 택한 것이 오미자였다. 보리나 옥수수보다 10배 이상 비싼 원료를 쓰고, 오미자 와인을 상압식 동(銅) 증류기로 두 차례 증류한 뒤 수년 간 숙성한다.
고운달은 백자와 오크 두 종류로 출시된다. 백자는 문경 전통 도자기 항아리에서 숙성해 오미자 본연의 맛을 살린 맑고 투명한 증류주이고, 오크는 오크통 숙성으로 골드 컬러와 함께 오크향이 더해진 버전이다. 한정판이 아닌 정규 라인업으로 꾸준히 판매된다는 점에서, 희소성보다 제품 자체로 가격을 정당화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오미자라는 한국의 독특한 농산물로 세계와 겨루겠다는 도전, 고운달이 가진 남다른 서사이기도 하다.
최고가 술들의 공식
이 술들은 겉보기에 제각각이다. 프랑스 포도밭에서 나온 와인, 스코틀랜드 오크통에서 60년을 버틴 위스키, 경북 문경의 오미자 증류주, 일본의 극한 정미 사케. 그러나 공통점은 분명하다.
첫째, 빈티지가 있으면 유리하다. 생산 연도가 각인된 술은 대체 불가능한 좌표를 갖는다. 1945년 로마네 꽁티는 다시 만들 수 없고, 1926년의 맥캘란도 마찬가지다. 역사가 새로운 생산을 원천 차단한다. 빈티지가 없는 술도 희소성을 만들 수 있지만, 특정 연도라는 좌표가 붙는 순간 그 희소성은 시간이 갈수록 절대적이 된다.
둘째, 이러한 빈티지가 있는 제품은 수량이 줄어들기만 한다. 누군가 마시면 그만큼 세상에서 사라진다. 새로운 경쟁 제품이 나와도 원본의 가치는 오히려 올라간다. 신제품이 출시될수록 구형 모델 가격이 폭락하는 대부분의 소비재와 정반대의 구조다.
셋째, 지금 사지 않으면 더 사기 어려워진다는 인식이다. 한정판을 통해 수량이 계속 줄어듦을 무의식 속에 알려주는 것이다. 컬렉터들에게 이 술은 단순한 식음료가 아니라 한정 발행되는 절판 예술품으로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맛은 가격에 비례할까. 개인적인 견해로 수천만 원을 넘어서는 술의 경우, 그 맛이 가격과 정비례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정비례하는 것이 하나 있다. 주변의 반응이다. 수억 원짜리 병을 꺼내는 순간 허세든 진정성이든, 그 자리의 공기가 달라진다. 그리고 그것이 특정 네트워크 안에서 지위를 만든다.
결국 최고가 술을 사는 행위는 수천만 원짜리 핸드백을 사거나 수백억짜리 아파트에 투자하는 것과 같은 맥락에 닿아 있다. 맛을 사는 것이 아니라, 희소성이 만들어낸 서사와 그것이 주는 사회적 신호를 사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저녁은 최고가 술들을 상상하며, 저렴한 마트 와인 한 잔으로 조용히 건배를 올려본다.

2 hou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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