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사진)이 1일 사임했다. 대통령 권한대행이 스스로 물러난 것은 헌정사상 처음이다. 한 권한대행은 2일 국회에서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하고 21대 대선 레이스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전망이다.
한 권한대행은 이날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국민께 드리는 말씀’을 발표하며 사의를 밝혔다. 한 권한대행은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의 직을 내려놓는다”며 “오랫동안 숙고한 끝에 이 길밖에 없다면 가야 한다고 결정했다”고 말했다.
사퇴 결심 배경으로는 한국이 거대한 위기에 직면했다는 점을 꼽았다. 그는 “세계 10위권의 한국 경제가 G7(주요 7개국) 수준으로 탄탄하게 뻗어나갈지 아니면 지금 수준에 머무르다 뒤처지게 될지, 또 정치가 협치의 길로 나아갈지 극단의 정치에 함몰될지 기로에 서 있다”며 “이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우리는 여기서 멈출지 모른다는 절박한 위기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중책을 완수하는 길과 중책을 내려놓고 더 큰 책임을 지는 길이 있다”며 “직면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직을 내려놓기로 최종 결정했다”고 말했다.
한 권한대행은 2일 국회에서 대선 출마를 선언하고 ‘경제 회복과 국민 통합’ 비전을 제시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대통령 예비후보 등록 후 광주를 방문해 국립 5·18 민주묘지를 참배하는 것으로 공식 일정을 시작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덕수 "협치 없으면 누가 집권하든 분열·갈등 반복"
韓, 무소속 출마 후 세 불린 뒤 국힘 후보와 '원샷 경선' 할 듯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은 1일 국무총리직을 내려놓으면서 공개한 ‘국민께 드리는 말씀’에서 경제와 안보 위기를 언급하며 ‘협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준비한 원고를 9분여간 읽은 뒤 “어떤 변명도 없이 마지막까지 가겠다”며 고개를 숙였다.
◇‘정치의 역할’ 강조한 韓
이날 한 권한대행은 경제와 통상 등 위기 상황에서 정치가 발목을 잡고 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지적했다. 한 권한대행은 “표에 따라 이랬다저랬다 하는 불합리한 경제정책으로는 대외 협상에서 우리 국익을 확보할 수 없고, 우리 산업의 경쟁력을 세울 수도, 지역 경제를 활성화할 수도 없다”며 “극단의 정치를 버리고 협치의 기틀을 세우지 않으면 누가 집권하든 분열과 갈등이 반복될 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한민국은 하나로 뭉쳐 위기를 극복해 온 나라인데, 지금 우리 사회는 양쪽으로 등 돌린 진영의 수렁에 빠졌다”며 “수년째 그 어떤 합리적인 논의도 이뤄지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짚었다. 한 권한대행은 사퇴를 놓고 고민이 컸다고도 했다. 그는 “그동안 무엇이 제 책임을 완수하는 길인가 고민해 왔다”며 “국가를 위해 제가 최선이라고 믿는 길을 지금 이 순간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어떤 변명도 없이 마지막까지 가겠다”고 했다.
한 권한대행은 2일 오전 국회에서 대선 출마를 선언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우선 무소속으로 출마해 세를 불린 뒤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 여론조사 등을 통한 ‘원샷 경선’으로 단일화하는 시나리오가 유력하게 검토된다. 2002년 대선 때 있었던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방식이다.
국민의힘 등 구여권에서는 이르면 대선 홍보물 발송 마감일인 오는 7일 이전, 늦어도 후보자 등록 마감일인 11일까지 단일화를 마치는 것이 좋다고 보고 있다. 최종 후보가 ‘기호 2번’을 받고 국민의힘과 함께 선거 운동을 할 수 있는 데드라인이어서다.
3일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결정되면 단일화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전망이다. 다만 국민의힘 경선을 치르고 있는 김문수·한동훈 후보 모두 추대 형식의 단일화는 없다고 공언한 만큼 룰 협상 등에 시간이 지체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 경우 투표용지 인쇄가 시작되는 25일이 2차 데드라인으로 여겨진다.
◇천상 관료, ‘尹 시즌2’ 논란 넘어야
한 권한대행은 보수와 진보 정부를 오가며 다양한 공직을 거쳤다. 김대중 정부에서 통상교섭본부장과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냈고 노무현 정부에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에 이어 국무총리에 올랐다. 이명박 정부에선 주미국대사, 윤석열 정부에선 약 3년간 국무총리로 활약하며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맡았다.
보수와 진보 정부에서 주요 직책에 오른 만큼 정치적 색채는 뚜렷하지 않다는 평가가 많았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의 공직자 줄탄핵, 무리한 법안 통과 등을 경험하면서 정치적으로 각성했다는 시각도 있다.
한 권한대행이 대선 국면에 뛰어들면 경제와 외교 분야에서 강점을 드러낼 것으로 전망된다. 경제관료 출신으로 경제 이해도가 높고, 주미대사 등을 지내 미국 등에 인맥이 많기 때문이다. 총리직에 복귀하자마자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통화한 것도 이 같은 강점이 발휘된 결과로 해석된다.
다만 정치 경험 부족은 넘어야 할 산이다. 윤석열 정부의 유일한 국무총리인 데다 친윤(친윤석열)계 국회의원들이 주로 한 권한대행 출마를 지지하면서 ‘윤석열 시즌 2’ 논란이 따라붙을 수 있는 점도 확장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