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업, 이사회 규모의 적정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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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회 규모가 무한정 커질수록 좋은 것은 아니다. 대신경제연구소가 내놓은 보고서는 국내 상장사를 대상으로 이사회 규모와 기업가치 간의 관계를 살펴본 결과, 역U자형의 관계가 있다고 밝혔다. 전략적 의사결정이 가능한 수준으로 이사회 규모를 유지하며, 사외이사의 전문성을 강화하는 것이 국내 기업의 과제다.

[한경ESG] 이슈 - 이사회 규모와 기업가치

이사회 규모가 큰 것과 기업가치는 상관이 있을까? 기업의 경영을 이끄는 구심점으로서 이사회의 역할이 점점 더 중요해지는 지금, 글로벌 주요 시장에서는 이미 이사회 슬림화가 구조적 흐름으로 나타나고 있다.

글로벌 신용평가사인 S&P 글로벌이 2024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미국 S&P 500 기업의 평균 이사 수는 1980년대 초반 16명에서 약 10.8명으로 축소되었고, 일본과 영국의 주요 상장사들도 10명 내외의 정예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S&P는 미국 시장에서 이사회 슬림화가 지속된 배경에는 기관투자자들의 적극적인 스튜어드십 활동과 의결권 자문사들의 권고가 주요하게 작용하였다고 지적했다.

대신경제연구소가 국내 2500개 상장사의 10년 패널 데이터를 활용한 실증분석 결과, 이사회 규모와 기업가치(Tobin's Q·총자산성장률) 간에는 역U자형 관계가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사회 규모가 일정 수준까지는 감시 기능 강화와 전문성 확대 효과로 기업가치를 제고하지만 일정 규모를 초과하는 시점부터는 의사결정 지연, 책임 분산, 조정 비용 증가 등의 비효율이 발생해 성과가 저하되는 경향이 나타났다.

이사회 규모와 기업가치 간 상관관계 입증

분석 결과, 이사회 규모가 증가함에 따라 토빈스 Q 비율로 대표되는 기업의 시장가치는 전반적으로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이사회 규모 확대가 경영진에 대한 감시 기능을 강화하고 다양한 전문성과 경험이 의사결정 과정에 반영됨으로써 시장가치 제고에 기여함을 시사한다. 그러나 이사회가 일정 규모를 초과하면 시장가치 상승세는 지속되지 않고 변동성을 나타냈다. 대신경제연구소가 이사회 규모의 제곱항을 포함한 비선형 모형을 추정한 결과, 이사회 규모가 증가함에 따라 기업 시장가치는 일정 수준까지 상승하다가 특정 임계점을 초과한 이후부터는 정체하고, 이후 오히려 감소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사회 규모와 기업의 양적 성장(총자산이익률, ROA) 간의 관계를 분석한 결과에서도 유사한 패턴이 확인되었다. 이사회 규모 증가에 따라

총자산성장률은 일정 수준까지 지속적인 증가세를 보이나 일정 임계 규모를 초과하면 양적 성장 지표 역시 유의하게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기업가치를 시장가치, 질적 성장, 양적 성장이라는 세 가지 측면에서 분해하여 분석한 결과, 각 모형은 이사회 규모의 효과에 대해 상이하면서도 상호 보완적인 함의를 도출했다. 세부 지표별로 영향이 나타나는 시점에 일부 차이는 존재하나 임계 수준을 초과할 경우 기업가치를 구성하는 세 가지 차원 모두에서 하향곡선을 그리는 경향이 일관되게 관측됐다.

통계적으로도 이사회 규모와 기업가치 간의 역U자형 관계가 입증되었다. 이는 이사회 규모의 양적 팽창이 기업가치 제고에 반드시 긍정적으로 작용하지는 않으며, 과도한 이사회 규모가 의사결정 체계의 비효율성과 조정 비용 상승, 책임 소재의 분산 문제를 야기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결과는 이사회가 비대해질 경우 내부 의사결정 속도가 저하되고 개별 이사의 실질적 기여도가 낮아지며 집단적 무임승차 문제가 심화될 수 있다는 기존의 학술적 논의(Jensen, 1993; Yermack, 1996)를 뒷받침하는 실증적 근거로 해석된다.

한국 기업, 이사회 규모의 적정선은

국내외 주요 기업 주요 사례는

유럽의 경우를 보면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유럽 국가, 특히 독일은 독일의 노동자와 주주가 이사회에 동수로 참여하는 공동결정제도(Codetermination)의 영향으로 감사회(Supervisory board) 규모가 20명을 초과하는 비대한 구조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유럽의 글로벌 기업인 알리안츠·바스프·포르셰와 같은 기업들은 과거 20인이 넘던 감사회를 최소 12명 수준으로 대폭 축소했다. 지배구조 슬림화 이후 이들 기업은 신속한 전략적 의사결정이 요구되는 기업 인수합병(M&A), 구조조정, 신시장 진출 등의 국면에서 탁월한 대응 능력을 발휘했다고 평가되고 있다.

미국 대기업들도 1980년대 초반 평균 16명에 달하던 이사 수를 최근 10.8~12명 수준으로 지속적으로 축소해 왔다. 일본도 과거 내부 인사가 장악한 비대하고 형식적인 이사회 구조를 가지고 있었으나 최근 일본 주요 상장사(니케이 225)의 이사회 규모는 평균 10.4명 수준으로 슬림화됐다.

한국에서도 신한금융지주의 경우 12명이던 이사회 구조를 2022년 14명으로 크게 늘렸으나, 2023년 정기 주주총회를 통해 다시 11명으로 축소하며 효율 중심의 이사회 구조로 복귀했다고 대신경제연구소는 설명했다.

한국 기업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대신경제연구소는 이사회 규모의 전략적 합리화와 구성의 내실화 병행을 주문했다. 이사회 규모를 전략적 의사결정이 가능한 수준으로 합리화하되, 사외이사의 전문성과 독립성을 중심으로 구성의 내실화를 함께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이사회 구조 재정비, 성과평가 체계 고도화, 교육 및 정보제공 체계 강화 등을 통해 이사회가 형식적 승인기구에 머무르지 않고 전략·리스크·내부 통제에 대한 실질적 감독기구로 작동하도록 운영 프로세스를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사회의 효율성 강화가 가장 중요”

한국 기업, 이사회 규모의 적정선은

[박스 인터뷰] 정영호 대신경제연구소 거버넌스컨설팅센터 팀장

- 이사회 규모에 연구 초점을 두게 된 계기는.

“최근 상법 개정과 집중투표제 이슈로 인해 기업들의 이사회 구성, 특히 이사회 규모에 대한 관심과 문의가 크게 증가했다. 기관투자자 및 자문기관에서도 해당 주제를 지속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에 따라 기업별로 적정 수준이 어디인지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연구를 진행하게 되었다. 연구 결과 일정 수준까지는 이사회 규모 확대가 긍정적일 수 있으나 그 이상에서는 의사결정 비효율로 오히려 역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확대할 경우 이사회 다양성 확보 및 주주참여 확대라는 장점이 있지만, 적정 수준의 규모가 되면 의사결정 효율성이 제고된다.”

- 한국 기업들의 이사회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

“한국 기업들의 이사회 규모는 일률적으로 평가하기는 어렵지만,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일부 기업은 주주 행동주의 등의 영향으로 이사회가 과도하게 확대된 사례가 존재한다. 반면, 글로벌 기준 대비 보면 전반적으로 적정 수준에 수렴하는 흐름도 나타난다. 중요한 점은 규모 자체보다 이사 개개인의 역할, 전문성, 그리고 이사회 운영의 효율성(정예화)이다. 글로벌 사례를 보면 애플과 같은 대규모 기업도 평균적으로 10~12명 내외에서 형성되는 경향이 있으며, 한국도 이와 유사한 수준으로 수렴하는 과정에 있다고 볼 수 있다.”

- 한국 기업 중 주목할 만한 이사회 경영을 하고 있는 사례를 꼽자면.

“국내에서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 이사회 운영을 고도화한 기업들이 선도 사례로 평가된다. 삼성전자는 약 9명의 이사회로, 대기업임에도 불구하고 효율성과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신한금융지주 등 주요 금융지주사들도 이사회 구조 및 운영 체계가 상대적으로 고도화되어 있다. SK하이닉스나 삼성바이오로직스 등도 글로벌 수준의 이사회 운영을 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들 기업의 공통점은 이사회 규모가 과도하게 크지 않으면서 전문성·다양성·효율성 간 균형을 유지한다는 점이다. 적정 규모와 실질적 기능 수행을 중심으로 이사회를 운영하고 있다는 시사점이 있다.”

구현화 기자 ku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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