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품은 숲세권 아파트’ ‘의료 인프라 갖춘 병세권 인기’. 언제부턴가 부동산 뉴스에 ‘O세권’이라는 표현이 부쩍 눈에 띈다. 특정 시설이나 입지의 앞 글자와 ‘세권(勢圈)’을 결합한 이 신조어는 모두 역세권이라는 단어에서 파생된 것들이다. O세권이 단순히 유행어로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사람들의 욕망과 생활 방식 변화를 고스란히 반영하는 하나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기 때문이다. 다양한 O세권의 끊임없는 도전에도 불구하고 역세권 프리미엄이 견고한 것을 보면 원조의 가치란 시간이 흘러도 변함없다는 생각을 한다.
역세권이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지하철 건설이 본격화된 1980년대다. 서울시는 지하철역이 새로 들어서면 시민의 통행이 활발해질 것으로 보고, 그 주변을 근린 상업지역으로 개발해 나갔다. 역세권의 시작이다. 당시만 해도 시민들은 근처에 지하철역이 들어오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유동 인구가 많아지면 분위기가 번잡해질 것이란 우려에서다. 그러나 도시가 복잡해지고 교통 혼잡이 일상이 되면서 지하철의 편의성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수월해진 출퇴근 덕분에 역세권을 중심으로 한 생활 패턴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아 갔고, 이는 곧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이어졌다. 버스정류장이나 철도역 주변 주택은 시세보다 저렴했지만, 역세권이 주거지 선택의 중요한 기준으로 떠오르며 지하철역 주변은 오히려 값이 뛰는 역현상이 나타났다.
역세권이 다층적 가치를 인정받으며 그 기준은 더 세분화됐다. 지하철역과의 거리에 따라 역세권과 초역세권이 나뉘고, 도보로 이용 가능한 역이 몇 개 있느냐에 따라 더블 역세권 또는 트리플 역세권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지하철역을 중심으로 한 생활권의 확장은 단순히 교통이 편리한 곳을 넘어 도시 구조와 일상의 동선, 나아가 삶을 바라보는 방식까지 다시 쓰게 했다. 서울 지하철은 연결의 산물이다. 사람과 사람, 지역과 지역을 이으며 새로운 길을 만들어 왔다. 우리가 역세권을 갈망하는 것도 결국 더 나은 삶으로 이어지는 연결을 꿈꾸기 때문이 아닐까.
오랜 기간 공들여 온 신길역 역세권 개발의 닻이 올랐다. 견인차량보관소와 주차장으로 쓰이며 잠들어 있던 땅이 시민의 일상을 품은 복합 공간으로 깨어날 준비를 하고 있다. 지하철역 지상의 대규모 유휴 부지를 개발함으로써 역세권의 편익을 더 많은 시민과 나누고 폭넓은 연결을 실현하기 위한 서울교통공사의 첫 시도다. 지하철 건설과 운영, 역세권 개발을 통합 추진하는 홍콩 MTR 모델이 지역 경제를 활성화한 성공 사례로 평가받듯, 신길역 일대의 재생이 역세권의 잠재력을 끌어올리며 신선한 활력이 되길 바라본다. 지난 3월 민간사업자 공모를 통해 우선협상자를 선정하는 등 밑그림은 이미 그려졌다. 이제, 도시가 그 이야기를 완성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