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시상식]
노벨주간 ‘하이라이트’ 연회서 소감… “우리를 서로 연결하는 것은 언어”
한림원 종신위원 맛손, 작품 소개
“한강의 글에선 하양과 빨강이 만나… 죽은 자들에 뭘 빚졌나 진실 추구”
“문학 작품을 읽고 쓰는 행위는 생명을 파괴하는 모든 행위에 반대하는 일입니다. 이 문학상의 의미를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10일(현지 시간) 스톡홀름 시청 블루홀에서 열린 2024 노벨상 시상식 연회에서 한강은 이렇게 노벨 문학상 수상 소감을 밝혔다. “언어를 다루는 문학은 필연적으로 일종의 체온을 유지한다”면서 생명의 중요성과 이를 파괴하는 행위를 비판한 것. 이날 연회는 유튜브 등을 통해 전 세계로 생중계됐다.
노벨상 연회는 노벨상 수상자를 축하하기 위해 일주일간 열리는 노벨 주간의 하이라이트 행사로 꼽힌다. 이날 오후 7시에 시작된 연회는 국왕과 총리, 스웨덴 한림원 등 수상자 선정 기관 관계자 등 1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공연이 펼쳐지며 4시간에 걸쳐 진행됐다.
한강은 이날 연회에 스웨덴 국왕의 사위인 크리스토퍼 오닐과 함께 연회장에 입장한 뒤 안드레아스 노를렌 국회의장, 울프 크리스테르손 스웨덴 총리 등과 함께 중앙 메인 테이블에 앉았다. 국왕과는 대각선으로 마주 보는 자리였다. 연회의 대미는 수상자들의 수상 소감 발표였다.세 가지 코스요리가 마련된 만찬의 후반부에 행사 진행자가 수상자들의 소감을 청했고 한강은 네 번째 순서로 4분가량 수상 소감을 영어로 밝혔다. 그는 “여덟 살이었던 어느 날 주판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갑자기 하늘에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빗줄기가 어찌나 거세던지, 건물 처마 밑에 아이들 두어 명씩 몰려들어 몸을 피했다”며 “건너편 건물에도 비슷한 처마가 있었는데, 그곳에도 작은 무리가 비를 피하며 서 있었다. 마치 거울 속을 들여다보는 듯한 모습이었다”고 회상했다.
한강은 “그 순간 문득 깨달았다. 내 곁에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서 있는 이 사람들 모두, 그리고 건너편의 사람들 모두, 저마다의 방식으로 ‘나’로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이라며 “수많은 1인칭 시점의 존재를 경험한 놀라운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후 글을 읽고 쓰며 보낸 시간 동안 그 순간의 경이로움을 수없이 다시 체험했다”며 “언어라는 실을 따라 다른 마음의 깊은 곳에 들어가고 다른 이의 내면과 만나는 경험을 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강은 “이 세상에서 우리가 잠시 머무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인간으로 남아 있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요?”라고 묻기도 했다. 이어 “가장 어두운 밤에도, 언어는 우리가 무엇으로 구성됐는지 묻고, 이 행성에 사는 생명체의 관점에서 상상하기를 고집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강은 “(이런) 우리를 서로 연결하는 것은 언어”라면서 언어와 문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한강은 연회에 앞서 오후 4시경 스톡홀름 콘서트홀에서 열린 ‘2024 노벨상 시상식’에 참석해 칼 구스타프 16세 스웨덴 국왕으로부터 노벨상 메달과 증서를 받았다. 한림원 종신위원인 스웨덴 소설가 엘렌 맛손은 시상에 앞서 5분간 한강 작품을 소개했다.
그는 “한강의 글에서는 하양과 빨강, 두 색이 만난다”고 운을 뗐다. 이어 “흰색은 그녀의 많은 작품 속에 등장하는 눈(雪)으로 화자와 세상 사이 보호막을 긋는 역할을 하지만, 슬픔과 죽음의 색”이라며 “(그 대신) 빨간색은 삶을 대변한다. 그러나 고통과 피, 칼로 깊게 베인 상처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죽은 자, 강탈된 자, 사라진 자들과 어떻게 관계해야 하는가? 우리는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우리는 그들에게 무엇을 빚지는가?’ 하양과 빨강은 한강이 그녀의 소설을 통해 되짚는 역사적 경험을 상징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강의 작품이 “형언할 수 없는 잔혹성과 돌이킬 수 없는 상실감에 대해 말하고 있다”며 “궁극적으로는 진실을 추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후 시상식이 이어졌다. 구스타프 국왕이 메달 및 증서를 수여하며 악수를 건네다 메달 케이스 뚜껑이 갑자기 닫히자 한강이 놀라는 표정을 짓다 활짝 웃어 보이는 해프닝도 있었다. 탁, 소리가 홀에 퍼질 정도로 크게 나자 객석에서도 웃음이 터졌다.
스톡홀름=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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