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삭 삭았수다” 스스로 하는 ‘얼평’ ‘몸평’ 멈춰야 하는 이유[최고야의 심심(心深)토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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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모 집착 벗어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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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서브스턴스’의 주인공 엘리자베스(데미 무어 분)는 아무리 화려하게 꾸며도 초라해 보이는 거울 속 자기 모습을 혐오한다. 공식 홍보 영상 캡처

영화 ‘서브스턴스’의 주인공 엘리자베스(데미 무어 분)는 아무리 화려하게 꾸며도 초라해 보이는 거울 속 자기 모습을 혐오한다. 공식 홍보 영상 캡처

“자신을 사랑하세요.”
지난해 개봉한 스릴러 영화 ‘서브스턴스’에서 주인공 엘리자베스(데미 무어 분)가 자신이 진행하는 TV 에어로빅 쇼를 끝마칠 때 하는 말이다. 그는 한 때 아카데미상을 받을 정도로 잘 나갔지만, 50세가 되자 늙고 예쁘지 않다는 이유로 TV쇼에서 해고된다. 그는 시청자들에게 했던 말과는 달리 나이 들어가는 자기 몸을 누구보다 혐오하게 된다. 그러다 신비한 주사를 맞으면 7일간 젊고 매력적인 제2의 몸으로 살게 해주는 정체 모를 약물에까지 손을 댔다가 파멸한다. 노화, 비만, 못생김과 싸우며 자기혐오에 시달려온 엘리자베스는 결코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인물이다.

이 외에도 영화 ‘미녀는 괴로워’, 애니메이션 ‘기기괴괴 성형수’, 웹툰 ‘외모지상주의’, 드라마 ‘마스크걸’ ‘여신강림’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 등 예쁘고 날씬해야 행복할 수 있다는 외모지상주의를 다룬 콘텐츠는 수없이 많다. 내면의 아름다움이 중요하다는 교훈을 주는 결말도 있긴 하지만, 외모를 평가 대상으로 삼는 냉혹한 시선은 어느 콘텐츠나 똑같이 나타난다.

일상에서도 ‘얼평(얼굴 평가)’ ‘몸평(몸매 평가)’은 늘 일어난다. 날카로운 외모 지적은 타인은 물론 우리 자신을 향할 때도 많다. ‘난 못생겼어’ ‘살을 더 빼야 해’ ‘늙어서 초라해’라며 성형과 다이어트에 무한한 관심을 갖는다. 국제 미용성형외과학회(ISAPS)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성형수술·시술 시행 건수는 미국, 브라질에 이어 세계 3위(2015년 기준)였다. 그만큼 외모 강박증이 우리 사회에 만연하다는 얘기일 것이다. 거울 속 내 얼굴이 자꾸 마음에 안 들고, 타고난 체형이 원망스럽게 느껴질 땐 어떻게 해야 할까.

● “난 못생겼어” “살 더 빼야” 집착한다면

사실 외모 콤플렉스는 누구나 조금씩 안고 산다. 탈모, 곱슬머리, 여드름, 주근깨, 작은 키, 사각턱, 작은 눈, 굵은 종아리, 검은 피부 등 그 종류는 각자의 생김새만큼이나 다양하다. 풀메이크업 전엔 잠깐의 외출도 꺼리거나, 몸매가 드러나지 않게 펑퍼짐한 옷으로 가리고 다니는 것도 외모 콤플렉스 영향이 크다. 외출 전 2~3시간씩 몸단장을 하거나, 그날 자기 얼굴이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약속을 취소해 버리는 사람도 있다.

외모에 관심 많은 10, 20대 때엔 더 그렇다. 지난해 경제 미디어 ‘어피티’가 2030세대 1283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39.2%가 ‘성형수술이나 시술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10명 중 4명이 외모 콤플렉스를 개선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병원을 찾은 셈이다. 또 응답자의 대부분(98.1%)은 ‘잘생기거나 예쁜 외모가 사회에서 혜택을 받는다’고 여겼다. 반대로 생각하면 외모가 뛰어나지 못하면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단순히 외모에 자신감이 부족한 수준을 넘어 일상생활을 못 할 정도로 외모 강박증이 심하다면 신체이형장애(body dysmorphic disorder)일 수도 있다. 강박 장애의 일종으로 다른 사람들에게는 사소해 보이는 작은 결점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증상이 대표적이다. 강박적으로 거울을 보고, 과하게 치장하거나, 외모에 대한 집착으로 일상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도 해당한다. 남성보다 여성에게 더 빈번하게 나타난다.

2023년 드라마 ‘마스크걸’의 주인공 김모미는 외모 콤플렉스가 있는 얼굴을 마스크로 가리고 인터넷 방송을 진행한다. 넷플릭스 제공

2023년 드라마 ‘마스크걸’의 주인공 김모미는 외모 콤플렉스가 있는 얼굴을 마스크로 가리고 인터넷 방송을 진행한다. 넷플릭스 제공

신체이형장애 환자의 일부는 뇌신경에 결함이 생겨 실제로 특정 신체 부위가 왜곡돼 보이는 경우도 있다. 이런 사례가 아니라면 외모 때문에 놀림 받거나, 불이익을 당해 마음의 상처를 겪은 경우가 더 흔하다.

◆ 외모에 자신감 없는 사람의 생각

사람들이 내 외모가 별로라고 생각할까 봐 걱정된다
내가 없을 때 다른 사람들이 내 외모를 흉볼까 봐 걱정된다
외모가 신경 쓰여 다른 사람에게 말 걸 때 긴장된다
외모 때문에 좋은 기회를 놓칠까 봐 불안하다
다른 사람들이 내 외모의 결점을 눈치챌까 봐 불편하다
거울을 볼 때 기분 좋은 느낌을 받은 적이 별로 없다
옷을 입을 때마다 몸매가 어떻게 보일까 상당히 신경 쓰인다

자료: 사회적 외모 불안 척도, 사회적 체형 불안 척도


내 외모에 대한 불안감이 클 경우에는 타인을 두려워하는 사회불안장애를 겪기도 한다. 이를 사회적 외모 불안(social appearance anxiety)이라고 하는데, 뚜렷한 근거 없이 다른 사람이 내 외모를 부정적으로 평가할 것이라는 비합리적 사고에 사로잡히는 것이 대표 증상이다. 누군가가 나를 보고 웃음 짓는 것을 보면 ‘내가 뚱뚱해서 비웃은 것’이라고 기정사실화 하는 식의 인지 왜곡이 나타난다. 다른 사람이 나를 뚱뚱하다고 바라본다고 생각하니 당연히 자신감이 떨어지고 스스로 매력 없는 사람이라고 취급하게 된다. 그래서 거식증, 폭식증과 같은 섭식 장애와 우울증 등을 함께 겪는 경우도 많다. 여기에 높은 외모 기준을 들이대는 완벽주의 성향까지 더해지면 더욱 위험하다.

● 남들 보기엔 멀쩡해“난 마음에 안들어”

할리우드 배우 메건 폭스는 2023년 한 잡지사 인터뷰에서 신체이형장애가 있다고 고백했다. 그는 “내 몸을 사랑해 본 적이 한 번도 없다”며 “어린 시절부터 몸에 집착하며 외모에 항상 비판적이었다”고 말했다. 2007년 영화 ‘트랜스포머’에서 잘록한 허리를 드러내며 관능적인 모습으로 등장해 스타덤에 오른 바로 그가 말이다.

신체이형장애를 고백한 할리우드 배우 메건 폭스. 그는 2007년 영화 ‘트랜스포머’에서 관능적 몸매를 드러내는 등장 장면으로 화제를 모았다. CJ E&M 제공

신체이형장애를 고백한 할리우드 배우 메건 폭스. 그는 2007년 영화 ‘트랜스포머’에서 관능적 몸매를 드러내는 등장 장면으로 화제를 모았다. CJ E&M 제공

여기서 알 수 있는 사실은 진짜 문제가 객관적 외모가 아닌 주관적 외모에 달려 있다는 점이다. 연예인만 그런 게 아니라 일반인도 똑같다. 글로벌 브랜드 ‘도브’가 2013년 선보인 ‘리얼 뷰티’ 광고 캠페인은 자기 외모를 얼마나 평가 절하하고 왜곡해 인지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도브는 FBI에서 범인의 몽타주를 그리는 법의학자를 초청해 실험에 참여한 여성들의 얼굴을 각 두 장씩 그려달라고 요청했다. 실물은 커튼으로 가린 채 첫 번째 그림은 여성이 자기 모습을 묘사한 내용을 듣고 그렸다. 두 번째 그림은 다른 사람이 해당 여성의 얼굴을 묘사한 내용을 듣고 완성했다.

왼쪽 그림은 여성이 자신을 묘사한 말을 듣고 그린 그림이고, 오른쪽 그림은 다른 사람이 여성의 얼굴을 묘사한 말을 듣고 그린 그림이다. 어느 쪽 그림이 실물과 더 가깝게 보이는가? 도브 제공

왼쪽 그림은 여성이 자신을 묘사한 말을 듣고 그린 그림이고, 오른쪽 그림은 다른 사람이 여성의 얼굴을 묘사한 말을 듣고 그린 그림이다. 어느 쪽 그림이 실물과 더 가깝게 보이는가? 도브 제공

두 그림을 비교한 결과는 놀라웠다. 다른 사람의 묘사를 듣고 그린 것보다 자기가 묘사한 얼굴을 그린 그림이 실제보다 훨씬 못생겨 보였다. 여성들이 자기 얼굴을 설명할 때 튀어나온 광대, 다크 써클 등 외모 콤플렉스를 과장되게 표현했기 때문이다.

이와 반대로, 남이 묘사해 준 얼굴은 이보다 훨씬 보기 좋았고 실제와 더욱 닮아있었다. 참가자 중 일부는 두 그림을 보며 눈물을 쏟기도 했다. 주관적으로 인식하는 자기 외모에 대한 왜곡이 심하다는 걸 보여준 광고였다.

성형수술이 외모 강박, 외모 불안의 온전한 탈출구가 되긴 어렵다. 수술이 객관적으로 잘 되더라도, 주관적 외모를 바라보는 눈이 변화하지 않으면 소용없다. 남들 눈엔 수술 결과가 객관적으로 괜찮아 보여도 정작 본인은 만족하지 못해 같은 부위를 여러 번 손댔다가 오히려 처음보다 상황이 악화하는 경우가 많다. 다행히 수술 결과에 만족하더라도 이번엔 다른 부위가 눈에 띄어 또 다른 성형수술을 계획할 가능성도 크다.

‘심리학, 외모를 부탁해’의 저자인 이정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진짜 문제는 외모가 아니라 성취와 대인관계 문제 등으로 낮아진 자존감에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저서에서 “이런 경우 성형수술은 현실적인 문제에 대한 해결점을 찾지 않고 외모에만 모든 불만족을 전이시키며 문제를 축소하려는 도피처가 될 뿐”이라고 강조했다.

● SNS ‘얼짱’ ‘몸짱’ 보면 기분 나빠져

주관적 외모 자존감이 낮아지는 원인은 다양하다. 가족이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 미 예일대 심리학과 연구진에 따르면, 거식증이나 폭식증 등 섭식 장애가 있는 여고생 77명의 가정환경을 추적해 보니 그 어머니도 어린 나이부터 오랫동안 다이어트를 해 온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또한 섭식 장애를 앓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이들은 딸에 대해 ‘체중을 더 감량해야 한다’ ‘외모가 매력적이지 않다’고 평가했다. 이런 환경에서 “살 빼” “그만 먹어”라는 잔소리를 들으며 컸다면, 외모 강박에 평생 시달릴 수 있다. 일부 연구에 따르면, 섭식 장애가 있는 사람에게 사회불안장애의 평생 유병률이 적게는 20%에서 많게는 70%까지 높게 나타난다. 그만큼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하며 불안감에 시달리게 된다는 의미다.

글보다 사진, 영상을 강조하는 SNS를 많이 이용할수록 나와 다른 사람들의 외모를 더 많이 비교하게 되고, 내 몸에 대한 만족도는 떨어진다. 게티이미지

글보다 사진, 영상을 강조하는 SNS를 많이 이용할수록 나와 다른 사람들의 외모를 더 많이 비교하게 되고, 내 몸에 대한 만족도는 떨어진다. 게티이미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연예인, 인플루언서와 외모를 비교하는 영향도 상당하다. 러네이 엥겔른 미 노스웨스턴대 심리학과 교수 연구에 따르면, 특히 인스타그램이 해로운 것으로 나타났다. 10, 20대 여성 308명을 대상으로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앱의 사용 방식을 관찰했더니, 인스타그램을 사용한 여성들이 페이스북을 사용한 여성들보다 게시물에 등장한 인물의 얼굴과 몸을 보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이들은 앱 사용 후에 자기 몸에 대한 만족도가 감소했고, 기분도 안 좋아졌다고 답했다. 연구진은 “인스타그램이 글보다 사진이나 영상에 중점을 두기 때문에 외모 비교에 특히 해롭다”고 분석했다.

● 외모 자존감, 어떻게 회복할까

네덜란드 마스트리흐트대 임상 심리과학학과, 미 채플힐 노스캐롤라이나대 심리·신경과학과 등 공동 연구진은 외모 강박을 개선하기 위해 고안된 프로그램을 검증한 전 세계 43개 연구를 분석해 어떤 방법이 실제 효과가 있었는지 살펴봤다. 혼자 쉽게 시도해 볼 만한 내용을 추려 소개한다.

우선 외모에 대해 불평하는 일명 ‘바디 토크’를 줄여야 한다. 여성들끼리는 친밀감을 쌓는 차원에서 서로 “나 살찐 것 같아” “주름이 늘었어” 같은 대화를 하는 경우가 많다. 일부 연구에서는 여성 10명 중 9명이 일주일에 한 번 이상 바디 토크를 한다는 결과도 있다. 그런데 얼굴, 체중에 대해 부정적인 말을 하면 할수록 자신도 모르게 외모 자존감에 타격을 받는다. 단순히 자기 몸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것만으로도 몸을 평가 대상으로 바라보고, 죄책감을 부추기기 때문이다. “어제 또 라면 먹었어”처럼 살찌는 음식에 대해 무심코 뱉은 일상 대화도 마찬가지다. 외모에 관심이 덜하고 ‘얼평’ ‘몸평’하지 않는 친구와 어울리는 것도 방법이다.

외모를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대화는 될 수 있는 대로 삼가는 것이 좋다. 게티이미지

외모를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대화는 될 수 있는 대로 삼가는 것이 좋다. 게티이미지

몸의 시각적 측면 대신 기능적 측면에 집중해 내 몸을 다시 바라보는 글쓰기를 해보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내 팔은 가늘다/굵다’ ‘내 몸은 날씬하다/뚱뚱하다’를 떠나 ‘나는 내 팔로 ( )을 할 수 있어 좋다’ ‘나는 내 몸으로 ( )을 할 때 강인함을 느낀다’와 같이 무엇이 보이는지가 아닌,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외모와 관련해 자동으로 떠오르는 비합리적 사고의 흐름을 기록해 보는 방법도 도움 된다.
안 좋은 생각으로 흐르게 만든 특정 사건이 발생하면(예: SNS에 예쁘고 잘 생긴 일반인이 올린 게시물을 여러 개 봤다), 이에 따라 어떤 감정이 느껴졌는지(예: 부럽고 질투 난다), 어떤 생각을 하게 됐는지(예: 내 외모는 평균 이하인 것 같다), 생각에 대한 근거(예: 나는 이들만큼 예쁘고 잘생기지 못하다)를 먼저 쓴다.

그런 뒤 이를 반박할 근거(예: 보정을 거친 사진일 수 있다, 이들이 평균 외모를 대변하는 건 아니다)와 대안적 사고(예: 보여주기용 SNS 사진과 이들의 실제 모습은 다를 수 있다)를 차례로 작성해 보는 것이다. 그런 다음 느껴지는 감정 변화(예: 질투심이 누그러들었다)를 관찰해보자. 만약 이런 시도를 통해서도 이같은 생각을 끊어내기 힘들다면, 앞서 실험에서 나타난 것처럼 인스타그램 등 비현실적 인물들과 자꾸 외모를 비교하게 만드는 SNS를 아예 하지 않는 것도 방법이다.

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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