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유류 뇌 1㎣ ‘뇌세포 지도’… AI-알츠하이머 연구에 열쇠

6 days ago 6

생쥐 대뇌의 시각피질 활동 분석
수만 개 뉴런-시냅스 3D 재구성… 시각정보 처리 작용 실시간 확인
뇌, 특정 뉴런 억제해 효율 향상… AI 알고리즘 설계에 활용 기대
질환 뇌 구조와의 비교 연구도

전자 현미경으로 촬영한 뇌 이미지를 바탕으로 복원한 ‘마르티노티 세포’의 모습. 마르티노티 세포는 뇌의 피질에 존재하는 억제성 신경세포다. Clare Gamlin/Allen Institute 제공

전자 현미경으로 촬영한 뇌 이미지를 바탕으로 복원한 ‘마르티노티 세포’의 모습. 마르티노티 세포는 뇌의 피질에 존재하는 억제성 신경세포다. Clare Gamlin/Allen Institute 제공
포유류의 뇌 속 구조와 기능의 관계를 종합적으로 밝힌 세계 최대 규모의 데이터셋이 공개됐다. 생쥐 대뇌 시각피질 1mm³를 분석해 뇌세포의 연결망과 실시간 활동, 유전자 정보를 함께 결합한 결과다. 그동안 신경과학 분야에서 규명되지 않았던 ‘억제성 뉴런’의 원리를 새롭게 규명했다. 인공지능(AI) 알고리즘 설계는 물론이고 알츠하이머병 등 뇌질환 치료 연구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미국 과학자 150여 명이 참여한 ‘MicRONS 컨소시엄’은 생쥐의 시각피질 일부를 전자현미경과 AI 분석으로 정밀하게 추적해 뇌의 구조와 기능을 동시에 담은 통합 뇌 지도를 완성했다. 연구 결과는 9일(현지 시간)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게재됐다.

● 뇌 1mm³ 영역에 5.4km의 연결망 존재

동물의 인지 능력은 AI를 뛰어넘는 정교한 정보 처리 과정을 거친다. 단 몇 차례의 경험만으로 미로 속 보상을 기억하는 생쥐의 능력은 방대한 훈련 데이터를 요구하는 기계학습(머신러닝)이 필요한 AI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뇌의 계산 원리를 이해하기 위해선 뇌를 이루는 세포들의 정교한 구조와 연결 방식을 파악해야 한다. 유전자(DNA) 분자 구조를 밝혀낸 영국의 저명한 분자생물학자 프랜시스 크릭이 “모래알 크기의 뇌 조직에서 완전한 회로도를 구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할 정도로 오랫동안 도전 불가능한 과제로 여겨졌다.

이번 프로젝트의 핵심 성과는 단순한 뇌 회로 지도를 넘어 뇌 회로 내부의 구조적 연결과 기능적 반응, 유전자 발현 정보를 하나로 결합했다는 데 있다. 세포 유형 간 연결 양상, 흥분성 뉴런 간 일반적인 결합 규칙, 유전자 발현 패턴에 따라 구분되는 신경 연결 방식 등 다양한 분석이 이뤄졌다.

분석 결과 뇌 속 ‘씨앗 하나’ 크기의 공간 속에는 복잡하고 정교한 신경 회로가 빼곡히 얽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생쥐 시각피질 1mm³ 영역을 2만8000장의 얇은 절편으로 나눠 전자현미경으로 촬영한 뒤 이를 3차원(3D)으로 복원해 신경세포(뉴런)와 신경세포 간 신호가 전달되는 접점인 시냅스를 정밀하게 재구성했다. 영역 안에는 약 8만4000개의 뉴런과 5억2000만 개의 시냅스, 총 길이 5.4km에 이르는 축삭 연결망이 존재하는 것이 확인됐다. 축삭은 뉴런에서 전기 신호를 다른 세포로 전달하는 가느다란 돌기다.

● 기존 이론 뛰어넘는 신경과학 원리 제시

연구팀은 뇌의 작동 원리도 분석했다. 뉴런이 활성화될 때 형광 신호를 발현하도록 유전자를 형질전환한 생쥐를 사용해 실험을 실시했다. 생쥐는 다양한 시각 영상 자극을 보면서 쳇바퀴(트레드밀) 위를 걷는 동안 실시간으로 뇌 활동이 기록됐고, 약 7만5000개의 뉴런에서 칼슘 형광 신호가 발생하는 것이 포착됐다.

연구팀은 이어 동일한 뇌 조직을 전자현미경으로 분석해 개별 뉴런의 위치와 형태, 연결망을 재구성했다. 기록된 뇌 활동 영상에서 얻은 데이터와 빈틈없이 일치시켰다. 뇌의 구조와 활동 데이터를 하나의 데이터셋 안에 통합해 각 뉴런이 어떤 자극에 반응하고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를 동시에 파악한 것이다.

기존 신경과학의 개념을 넘어서는 새로운 원리도 제시했다. ‘억제성 뉴런’의 작동 방식을 새롭게 밝힌 게 대표적이다. 그간 억제 뉴런은 단순히 흥분 뉴런의 작용을 저지하는 역할로 알려졌다. 이번에 밝혀진 뇌 구조와 기능 데이터셋에선 억제 뉴런이 특정 흥분 뉴런을 선택적으로 조절하며 더 정밀하게 뇌 회로를 조율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일부 억제 뉴런은 여러 흥분 뉴런의 작동을 동시에 억제했다. 다른 일부는 특정 유형의 뉴런만을 정확하게 겨냥했다.뇌 신호의 정합성과 정보 처리의 효율성을 높이는 뇌의 독특한 작동 방식은 뇌의 계산 원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다. 향후 AI 알고리즘 설계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것으로 평가된다.

이번 연구는 알츠하이머병과 파킨슨병 등 뇌 질환의 원인을 밝히고 치료법을 개발하는 데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건강한 뇌의 회로도가 완성되면 질병 상태와 비교해 세포 간 연결의 이상 여부를 확인하고 원인을 규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연구에 참여한 누누 마사리쿠 다 코스타 미국 앨런뇌과학연구소 연구원은 “뇌 회로도를 알면 고장난 라디오도 고칠 수 있다”며 “이번 결과는 생물의 뇌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설계도를 제공한다”고 말했다. 이번에 발표된 데이터셋은 학계에 모두 공개(Open-access) 형태로 제공된다.

박정연 동아사이언스 기자 hess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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