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트럼프 독트린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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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변칙 플레이의 달인이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그린란드와 파나마운하에 이어 캐나다에 이르기까지 미국의 영토를 확장할 수 있다는 그의 생각은 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관계의 근간으로 여겨진 국경과 주권에 대한 생각을 한순간에 흔들어 버렸다.

팍스 아메리카나의 종언

[특파원 칼럼] 트럼프 독트린이 온다

그의 발언을 트롤링(도발하기 위한 공격적 언사)으로 낮잡아 보는 시각도 있다. 실제로 캐나다가 트럼프 당선인의 발언처럼 미국의 51번째 주(州)가 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 하지만 그의 영토 확장 발언이 힘을 받지 못한 1기 트럼프 정부 때와 달리 이번에는 적지 않은 공화당 인사가 그에게 동조하고 있다. 린지 그레이엄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상원의원(공화당)은 SNS에 지난해 선거 결과를 언급하면서 “캐나다 주가 빠졌다. 다음 번엔 이 문제를 고치겠다”고 적었다. 점잖은 외교가 인물들에겐 기절초풍할 발언이다. 하원 외교위원회도 공식 소셜미디어 계정을 통해 영토 확장 발언을 ‘트럼프 독트린’이라 명명하며 치켜세웠다.

특히 마이클 월츠 국가안보보좌관 지명자가 12일(현지시간) ABC방송에 출연해 파나마운하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강화 등을 언급하며 “적들이 ‘우리 서반구’에 들어와서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것을 견딜 만큼 견뎠다”고 표현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월츠 지명자는 핵심 광물과 해상항로 등으로 그린란드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면서 “쇄빙선 60척을 갖춘 러시아와 달리 우리의 훌륭한 친구이자 동맹국인 덴마크는 그린란드에 개썰매 팀 몇 개밖에 둔 게 없다”고 적나라하게 비판했다.

서반구 전체를 미국의 영역으로 인식하는 그의 ‘우리 서반구’ 표현은 1823년 선포된 먼로 독트린에 뿌리를 두고 있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중반까지 일본을 향한 대응보다 남미 방어를 중시했다.

전쟁 후 이어진 팍스 아메리카나 시대에는 세계의 평화가 미국의 평화로 여겨졌고, 모두의 것과 미국의 것이 분명하게 구분되지 않았다. 트럼프 당선인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 운동은 이런 사고방식에 진저리를 친다. ‘그래서 정확히 미국, 미국인의 몫이 뭐냐’고 따지는 게 MAGA 운동이다.

韓 생존전략 준비돼 있나

이른바 트럼프 독트린은 MAGA의 관점을 국내 정치를 넘어 세계로 확장한 것이다. ‘세계의 문제가 미국의 문제’라는 모호한 말 말고 미국의 영역에 집중하자는 것이다. 이념이나 가치가 아니라 영역과 소유의 관점에서 외교안보 전략을 짜겠다는 뜻이다. 이런 접근 방식은 ‘거래’의 가능성을 크게 열어놓는다. 가치에 기반해 전략을 결정하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낼 수 없지만, 트럼프 당선인은 러시아에 영토를 좀 떼 주고 끝내자고 할 수 있다. 대만이나 북한에 대해서도 미국의 셈법은 이전과 달라질 것이다. 이런 방식이 좋으냐 나쁘냐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적응하고 대응할 따름이다.

다만 트럼프 독트린은 필연적으로 약소국의 생존 본능을 일깨운다.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성장하고도 정치적·외교적으로는 후진국 티를 벗지 못한 한국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닥쳐오는 현실 앞에 좌충우돌하다 자멸하지 않을 방법은 무엇인가. 트럼프 독트린이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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