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중동 순방에 합류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동 일정에 초청한 한국인은 정 회장이 유일하다. 정 회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장남인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와 각별한 친분이 있으며, 그의 최근 방한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14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정 회장은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카타르 국왕과 트럼프 대통령의 만찬에 참석했다. 정 회장은 트럼프 주니어의 초청을 받고 한참을 망설인 끝에 중동 순방에 동참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과 미국 간 사실상의 외교 채널이 끊긴 상황에서 정 회장의 ‘역할론’에 책임감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정 회장은 지난달 트럼프 주니어가 방한했을 때 국내 주요 기업 경영자들과 트럼프 주니어 간 회동을 주선하기도 했다.
정 회장은 이번 중동 출장에서 K팝, K드라마, K푸드 등 한국 콘텐츠를 활용해 한국과 중동 간 상호 무역을 확대해야 한다는 어젠다를 제시할 것으로 알려졌다. 신세계그룹의 해외 투자를 확대하고자 하는 의지도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중동 K웨이브 붐에 … 신세계도 올라타나
韓·美 소통 약해진 상황서 '민간 외교관' 역할 주목
최근 중동에서는 한국 콘텐츠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넷플릭스 등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를 통해 한국 드라마, 예능, 영화가 광범위하게 유통되고 있는 영향이다. 미국에서처럼 K콘텐츠가 큰 인기를 끈 뒤 K푸드, K뷰티 등 한국 제품 판매가 급증했듯 중동에서도 비슷한 경로를 밟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수출입은행에 따르면 최근 수년간 영화, 음악 등 K콘텐츠 수출이 1억달러 늘어나면 화장품, 가공식품 등 소비재 수출은 1억8000만달러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K콘텐츠를 소비하면서 여기에 노출되는 화장품, 식품 등을 함께 구매한다는 의미다.
중동은 K컬처가 대중화하면서 한국 기업에 새로운 기회의 땅으로 여겨지는 지역이다. K푸드는 물론 K뷰티와 K패션까지 아우르는 신세계그룹에 중동은 성장 확대를 위한 최적의 지역으로 평가받는다. 트럼프 대통령은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아랍에미리트(UAE) 등 중동 3개국에서 극진한 예우를 받으며 순방길을 돌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중동 순방길에 정 회장이 함께하는 것은 중동 국가들에 한국 문화와 한국 제품에 대해 호의적인 인식을 심어줄 것으로 기대된다.
정 회장은 작년 12월 대통령 당선인 신분이던 트럼프를 미국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한국 재계 총수 가운데 처음으로 만났다. 이 만남을 주선한 게 트럼프 주니어였다. 정 회장과 트럼프 주니어는 2015년 한 행사장에서 만나 친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은 독실한 개신교 신자란 점에서 공감대를 이뤘다. 이후 다양한 분야의 의견을 주고받고 있다. 평소에도 보안 메신저 시그널을 통해 연락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주니어는 미국 대선 기간 트럼프 대통령의 ‘막후 실세’로 미국 부통령인 JD 밴스를 트럼프의 러닝메이트로 추천하기도 했다.
정 회장이 향후 새 행정부와 미국 간 소통을 주선할 수 있을지도 주목된다.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한국 정국이 혼돈에 빠진 상황에서 누구라도 미국 정계와 연결고리 역할을 해준다면 의미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박종서/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