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양국이 14일(미국시간 13일) 발표한 공동 팩트시트 내용은 지난 8월 양측이 준비했던 팩트시트 내용과 상당부분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조선업 협력과 핵추진 잠수함 등 안보 분야에 관한 내용이 다수 추가됐다.
한국경제신문의 취재에 따르면 지난 8월 양측이 준비한 팩트시트와 이번 팩트시트 간의 차이는 크게 다섯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1. 한국의 대북, 대중 억지력 강화 의도
이날 팩트시트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가장 마지막 문장이다. "미국은 한국이 핵추진 잠수함을 건조하는 것을 승인하였다. 미국은 이 조선 사업의 요건들을 진전시키기 위해, 연료 조달 방안을 포함하여, 한국과 긴밀히 협력해 나갈 것"이라는 내용이다. 이 문장을 포함시키기 위해 지난 10월29일 한미정상회담 후 양국 관계자들은 치열하게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DC 일각에서는 한국이 핵추진 잠수함을 실제로 갖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한다. 호주가 미국 및 영국과 오커스(AUKUS)라는 강력한 안보동맹 결사체를 구축하면서 2021년 미국서 핵추진 잠수함 기술을 받고 건조하기로 협약을 맺었지만, 현재까지도 미국 내 반대에 부딪혀 진척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이번 팩트시트의 문구가 상당히 강력한 데다 한국의 대북 및 대중 역량 강화를 원하는 미국으로서는 이 문제에 대해 한국의 요청을 수용할 가능성이 있다.
이외에 "미국은 한미 원자력 협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 및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이 중에서 우라늄 농축 및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에 대한 약속은 지난 8월에도 양국 간에 협의가 완료됐던 부분이다.
“한국 내에서의 잠재적 미국 선박 건조를 포함하여, 최대한 신속하게 미국 상업용 선박과 전투수행이 가능한 미군 전투함의 수를 증가시킬 것” 이라고 강조한 대목도 눈에 띈다.
한미 양국은 그동안 조선업 협력에 관해 많은 논의를 했지만 '미국에서 지어야 한다'는 주장을 미국이 쉽게 굽히지 않아 어려움이 있었다. 미국 정부는 한국 내에서 일부 건조가 필요하다는 점에 대해 동감하면서도, 의회에서 관련법이 수정돼야 한다는 이야기를 거듭하곤 했다. 현재 미 군함은 번스톨레프슨수정법에 의해 미국에서만 건조돼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상선이나 지원함의 경우에도 미국 연안을 항해하는 배는 미국에서 건조돼야 한다는 존스법에 발목이 잡혀 있었다. 행정부의 권한을 넘어선다는 게 미국 측의 초기 입장이었다.
이 문제에 대한 해법을 내놓은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었다는 후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먼저 나서서 "이 문제에 대해선 한국이 전문가다. 한국 측의 제안을 받아들이자"고 했다는 것이다. 한 정부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은 의회에서 관련법 수정이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행정명령을 통해 이를 우회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면서 "어떤 식으로든 문제를 풀어주겠다는 의지가 강하다"고 전했다.
2. 방어장치 다수 추가
3500억달러에 달하는 대미 투자금액을 약속한 한국 정부는 그동안 이 투자금액의 운용에 한국 정부의 입장이 반영될 수 있도록 하는 부분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
양측의 팩트시트는 "상호 신뢰하는 파트너로서, 양국은 한국이 어느 특정 연도에도 연간 200억 불을 초과하는 금액의 조달을 요구받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 동의한다"는 내용을 포함했다. 이는 연간 대미투자 금액의 상한을 200억달러 아래로 묶어두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덜 강압적으로 보이는 표현을 쓴 것이 특징적이다.
또 양측은 "한국은 가능한 한 최선을 다해 미화를 시장에서 매입하는 방식이 아닌 다른 방법을 통해 조달함으로써 시장에 미치는 잠재적 영향을 최소화할 것"이며, "MOU 상 공약의 이행이 원화의 불규칙한 변동 등 시장 불안을 야기할 우려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 한국은 조달 금액과 시점을 조정할 것을 요청할 수 있으며, 미국은 신의를 가지고 그와 같은 요청을 적절히 검토할 것"이라고 적었다. 궁극적으로 이와 같은 투자 약속이 '공약'이라고 하면서도 '최선을 다해' '신의를 가지고' '적절히 검토' 등의 다소 모호한 문구들을 배치했다. 양측 모두 미래에 자신의 입장을 더 반영할 여지를 남겨둔 셈이다.
이와 같은 방어장치는 일본이 앞서 체결한 MOU나 팩트시트엔 없었던 내용이다. 일본의 전례를 참고할 수 있었던 한국의 상황, 대법원 관세 판결을 앞둔 미국의 마무리 의지, 한국의 버티기 전략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해석된다.
3. 조선업 전용투자 부활
경제 통상분야 팩트시트에서는 지난 8월 양국 간 견해 차로 합의문이 발표되지 못했던 원인이 사라졌다. 대표적인 것이 조선업 1500억달러 별도 투자를 명시한 대목이다. 당시 한국 협상팀은 '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MASGA)' 프로젝트에 대한 적극적인 의지를 밝히면서 1500억달러를 조선업 전용으로 하자고 제안했으나 미국 측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당시 협상에 관계했던 이들의 말을 종합하면, 미국은 지난 7월 말 대미투자 약속을 받고 관세를 낮춰주겠다고 했을 때와 달리 8월말에는 이른바 '경제안보펀드' 형태의 국부펀드에 이 자금을 넣어서 트럼프 대통령의 뜻대로 쓰겠다는 구상을 세워가고 있었다.
조선업에 대한 투자를 환영하면서도 '조선업 전용'이라는 구상을 거부한 것은 일종의 국부펀드 구상에 '한국이 주도하는' 펀드가 상당한 지분을 차지하는 점을 껄끄러워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워싱턴DC의 한 관계자는 "당시에는 러트닉 장관이 경제안보 펀드 같은 형태로 판을 더 벌리고 싶어했던 것 같다"고 했다. 지난 7~8월은 트럼프 정부의 관세를 통한 협상력이 최고조에 달했던 시기다. 이러한 협상력을 이용해 동맹들의 자금으로 대규모 펀드를 구성하려 했으나 결과적으로 협상과정에서 이러한 일방적인 요구는 상당부분 뒤로 물러났다.
4. 품목관세 명문화
미국이 협상에서 더 많은 것을 얻어내기 위해 '인질'로 잡아뒀던 품목관세 명문화 내용이 이번 팩트시트에는 담겼다. 지난 8월 양측은 구체적으로 자동차·반도체·의약품 등의 품목에 관한 관세율 인하 약속을 담으려 협의했으나 미국 측이 최종적으로 명문화를 거부했다.
이날 발표 내용을 정리하면 미국은 한국에 대해 상호관세로 15%를 적용한다. 이는 지난 4월 2일 '해방의 날' 상호관세 발표의 연장선상에 있는 조치다. 미국 대법원에서 현재 심리 중인 사안으로, 위헌 판결이 날 경우 변경될 가능성도 있는 부분이다.
품목관세 중에서는 자동차 및 부품, 원목·제재목과 목재 제품에 대한 (무역확장법) 232조 관세를 15%로 인하한다. "한미 FTA 또는 미국의 최혜국(MFN) 관세율 중 적용가능한 세율이 15% 이상인 한국산 상품에 대해서는 232조 관세를 추가로 부과하지 않고, 15% 미만인 한국산 상품에 대해서는 한미 FTA 또는 미국의 최혜국(MFN) 관세와 추가되는 232조 관세의 합이 15%가 되도록 한다."고 했다. 어떤 경우에도 15%를 넘지 않게 상한을 둔다는 뜻이다.
의약품에 부과되는 어떠한 232조 관세의 경우에도, 미국은 한국산 상품에 대한 232조 관세율이 15%를 초과하지 않도록 적용하고자 한다고 약속했다. '적용하고자 한다'는 미래형인 이유는 아직 의약품 관세가 도입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도체(반도체 장비 포함)에 부과되는 어떠한 232조 관세의 경우에도, 미국은 한국에 대한 232조 관세에 대해 미국이 판단하기에 한국의 반도체 교역규모 이상의 반도체 교역을 대상으로 하는 미래 합의에서 제공될 조건보다 불리하지 않은 조건을 부여하고자 한다. 이는 '대만보다 불리하지 않게'라는 뜻이다. 미국은 향후 반도체 관세 부과를 계획하고 있지만, 금세 할 것이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설명과 달리 실제로는 상당히 늦어지고 있다. 대만과의 무역협정 과정에서 이 문제가 논의될 것으로 예상된다.
아울러 미국은 제네릭 의약품·원료·화학전구체, 미국 내 생산되지 않는 특정 천연자원 등 '조율된 파트너국에 대한 잠재적 관세 조정' 목록에 명시된 특정 상품에 대해서는 상호관세 등을 적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 8월 합의문 협의 당시에도 양측이 동의한 내용이다.
5. '미국산 파마산 치즈' 수입 가능해져
양측은 '상호무역 촉진'이라는 목표 아래 비관세 장벽을 해소하기 위한 여러 조치에도 합의했다. 이 중 대부분은 8월에 이미 양측이 거의 합의를 이루었지만, 당시 이견 탓에 발표되지 않았던 내용이다.
미국 연방 자동차 안전기준(FMVSS)을 준수하는 미국산 자동차를 '브랜드별 연간 5만대'라는 상한 없이 추가 개조하지 않고도 수입 가능하도록 했다. 그러나 지금도 연 5만 대 기준을 넘어서서 이 제도의 혜택을 보는 미국차 브랜드가 하나도 없는 데다 가장 수입량이 많고 증가하는 추세인 테슬라 물량은 상당 부분이 중국에서 제작되고 있어 큰 실효성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식품 및 농산물 비관세 장벽을 논의하기 위해 양국이 협력하기로 한 내용에 쌀과 쇠고기는 명확하게 포함되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통상 관계자들은 줄곧 쌀 및 쇠고기가 협상 과정에서 의제로 오르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다. 실제 이날 팩트시트에서도 그런 내용은 언급되지 않았다.
또 ‘파마산 치즈’나 ‘살라미 소시지’와 같이 지역명이 관련돼 있지만 보통명사처럼 쓰이는 경우에는 지리적표시 보호 규정을 완화해달라는 미국 측 요청을 받아들였다. '특정 명칭을 사용하는 미국산 육류와 치즈에 대한 시장접근을 유지'하기로 했다.
이외에 미국 농산물 전용 검역 절차를 둬서 일종의 패스트트랙을 만들어 달라는 요구는 미국산 원예작물 전담 데스크를 설치하기로 했다. 한국은 망 사용료, 온라인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과 정책에 있어서 미국 기업들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과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하여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했다.
변호사-의뢰인 비밀유지권(비닉특권·ACP·attorney client privilege) 인정 등을 포함하여, 경쟁 관련 절차에서 추가적인 절차적 공정성 규정을 마련할 것을 약속한 것은 국내 법조계에도 상당한 파장을 가져올 전망이다. 한국 공정위에서는 변호사 사무실에서 통째로 자료를 가져가서 조사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기업이나 로펌이 의뢰인과 민감한 대화를 할 때 해외 서버를 이용해야 한다고 생각할 정도로 법조계에선 민감한 이슈다. 해외 기업은 비닉특권을 보호받는 반면, 국내 기업은 보호를 받지 못해 불공정하다는 비판도 제기됐던 부분이다.
워싱턴=이상은 특파원 se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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