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9시 넘어서도 여론조사 전화가 오네요. 어떻게 차단합니까.” 오는 6월 3일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선거 여론조사 전화가 쏟아지자 유권자의 피로감이 커지고 있다. 전화 여론조사 외에 뚜렷한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응답률은 선거 때마다 낮아지고, 그 여파로 조사 품질이 떨어지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17일 KT가 운영하는 통화 앱 후후에는 J여론조사업체 번호 ‘02-6264-××××’ 신고가 1만3870건 올라왔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퇴근했는데 여론조사 부재중 전화가 8통 찍혀 있었다”는 식의 불만글이 올라오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의 배경에는 2017년 2월 개정 공직선거법으로 도입된 휴대폰 가상번호 제도가 있다. 조사업체가 지역·성별·연령 조건을 설정해 조사 대상 번호를 요청하면 이동통신 3사는 실제 번호를 가린 가상번호 형태로 이를 제공한다.
이는 조사 정확도를 향상시켰지만 유권자 피로도 또한 높이고 있다. 관련 법령에 따르면 조사업체는 표본의 최대 30배수에 해당하는 번호를 요청할 수 있다. 2024년 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3369만5683건의 가상번호가 제공됐으며, 조사업체의 94.3%가 25배수 초과 30배수 이하 번호를 요청했다. 이 선거의 응답률은 21대 총선 이후 치러진 주요 4개 선거 가운데 가장 낮은 8.6%에 그쳤다.
조사업체는 평균적으로 이틀 동안 응답이 과잉인 계층의 전화는 끊고, 부족한 계층에는 집중적으로 건다. 법적으로 여론조사 전화 발신은 오전 7시부터 밤 10시까지 가능하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는 “2017년 이후 지난해 말까지 가상번호 제공 차단 요청이 350만 건에 달했다”고 말했다.
가상번호 제공 차단은 가입한 통신사에 요청할 수 있다. 그러나 통신사 가입 과정에서 제3자 정보제공 동의 등을 무심코 선택해 조사 대상군에 포함되는 구조는 유권자가 알기 어렵다. 여론조사 전화는 영리 목적의 불법성이 없다는 이유로 스팸으로 분류되지도 않는다.
박민규 고려대 통계학과 교수는 “비대면으로 신속하고 저렴하게 조사 가능한 수단은 사실상 전화뿐”이라면서도 “유권자에게 통신비 할인 같은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낮아지는 응답률이 조사 품질 저하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응답률이 떨어질수록 전화를 더 많이 걸어야 하는데 대체로 끝까지 조사에 응하는 정치 고관여층의 목소리가 과잉 반영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국내 여론조사의 접촉률과 응답률은 모두 하락하는 추세다. 접촉률은 전체 전화 가운데 전화가 연결된 비율이고, 응답률은 전화를 받은 사람 중 설문을 끝까지 마친 비율이다. 21대 총선 당시 40.1%이던 접촉률은 21대 대선 때 31.6%로 떨어졌다. 응답률은 대체로 10%에 못 미친다. 업계에선 유의미한 여론조사로 인정받기 위해선 응답률이 10%는 넘어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조사 결과의 정확도도 떨어지고 있다. 선관위의 22대 총선 여론조사 백서에 따르면 등록 여론조사 2531건 가운데 당락과 반대로 예측한 비율은 37%였다. 한규섭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작은 지역구일수록 낮은 응답률 조사가 반복되면 특정 집단에 의한 왜곡 우려가 커진다”고 말했다.
최영총 기자 youngcho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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