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토스 피플에서는 쇼핑 탭을 맡고 있는 이혜인님의 인터뷰를 공유드려요. 토스는 금융 앱이기도 하지만 다양한 혜택 기능들로 ‘앱테크’로서 사랑을 받고 있기도 한데요. 받은 혜택으로 할인을 받아 구매하기도 하고, 혜택 구조를 활용해서 제휴사와 협의해 좋은 물건을 저렴하게 판매하고, 토스 밖에서도 토스 페이를 쓰고 있죠. 토스 쇼핑은 토스의 세계관을 완성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어요.
혜인님은 원래 디자인을 전공하진 않으셨다고 들었어요. 어쩌다 UX 디자인을 시작하게 되신 거예요?
처음에는 공대에 다니다가 나중에 미대에 들어갔어요. 제 전공은 제품 디자인이었는데, 일찍 재능이 없다는 걸 알았어요. 고등학교 때, 한창 뇌가 말랑말랑할 때부터 미술을 공부한 친구들을 절대 못 따라 잡겠는 거예요. 저는 계속 현실적인 얘기를 하는데, 그 친구들은 되게 열린 사고를 하는 거죠. 막 하늘을 날아다니는 자동차 얘기를 하는 동안 저는… (웃음)
그러다 우연히 UX 수업을 듣게 됐는데, 그게 저한테는 너무 쉬운 거예요. ‘어떻게 그렇게 쉽게 화면을 그려?’하고 같은 수업 듣는 친구가 물어봐서 ‘어, 내가 이건 잘하나?’ 생각하게 됐어요. 재능 발견 이런 느낌.
그렇게 처음으로 UX 디자이너로 입사하게 되신 거군요.
맞아요. 2013년도 쯤? 휴학하고 스타트업에 취업했었어요. 그런데 학교에서 와이어프레임 만드는 건 쉬웠는데, 아름다운 화면을 만드는 건 또 다른 문제더라고요. 당시엔 스큐어모피즘이 대세였는데, 화면 위에서 실제 물체와 유사한 디테일과 텍스쳐를 재현해야 했거든요. 원하는 디자인을 만들고 싶으면 그래픽을 잘하는 것도 중요했지만 그걸 어떻게 구현할지에 대한 이해도 필요했었어요.
그래서 개발을 배우는 프로그램에 참여했었어요. 거기서 또 재능이 없다는 걸 깨달았어요. 프로그램의 목표는 풀스택 개발자로 양성하는 거였는데, ‘나는 개발 짱 못해.’하면서 프론트 엔드까지만 배우고 나왔어요. 그런데 그게 두고두고 도움이 되더라고요. 화면이 그려지는 동작 방식을 이해하니까 개발자 분들과 협업하면서 가이드를 드릴 때 효과적으로 드릴 수 있게 됐어요. 예전에는 그림 그리듯이 화면을 드렸거든요.
와, 졸업하기도 전인데 정말 많은 경험을 하셨었네요.
그렇게 졸업하고서 취업 준비를 하는데… 다 떨어지는 거예요. 좋은 UX를 하는 회사가 없기도 했어요. 디자이너가 갈 수 있는 회사가 카카오, 네이버, 삼성 디자인 멤버십 정도가 전부였던 것 같아요. 대기업도 넣어봤는데 다 떨어졌고요. 그러다 쿠팡에서 경력직을 채용하고 있었는데, 스타트업 다녔을 때의 포트폴리오로 입사하게 됐어요. 회사에서도 베팅으로 주니어를 한 번 채용해볼까?해서 운좋게 들어가게 된 것 같아요.
거기서 오래 근무하시기도 했고, 그때의 경험이 지금 제품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 같아요.
맞아요. 당시 엄청 가고 싶은 회사 중 하나였어요. 그래서 만족도가 급상승했었죠. 데이터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회사였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데이터로 일하는 환경이 쉽게 주어지는 게 아니었더라고요. 아름다운 화면을 추구하는 건 아니었지만 사용자 중심적 사고가 중심에 있었어요. 예를 들면 사용자 테스트를 해서 한 명이라도 이해를 못하면 배포하지 않는다는 규칙도 있었고요. 같은 화면으로 사용자 테스트를 네 번 넘게 한 적도 있고… 사용성에 대한 기준이 명확했어요.
하지만 당시에는 제가 주니어 디자이너이기도 했어서, 제품 전체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화면을 그리기만 해야 한다는 점이 조금 답답했어요. 제가 참여하지 않은 의사 결정을 가지고 구현을 해야 하는데, 어떻게 이런 결정이 내려졌는지 맥락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던 것 같아요. 이 제품이 지향하는 궁극적인 비전은 무엇인지, 그런 거 있잖아요. 그래서 천천히 그래프가 내려갔어요. 결국 퇴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죠.
그래도 바로 퇴사를 하기는 쉽지 않았을텐데, 어떻게 하신 거예요?
그렇게 마음을 먹었는데 마침 회사에서도 전사적으로 정말 중요한 목표가 생겨서, 탑다운 업무 방식이 더 강화됐었어요. 그래서 퇴사를 결심했어요. ‘공백이 있어도 일단 퇴사를 하고 준비하자.’ 그런데 마침 토스에서 되게 특이한 채용 공고가 올라온 거예요. 포트폴리오를 1개만 내도 된대요. 하늘에서 내려온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죠. 회사 다니면서도 토스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거든요.
그렇게 포트폴리오 딱 1개 준비하고 지원해서 입사하게 됐어요. 입사하기 전에 토스는 들어가기 짱 어렵고 모두가 가고 싶어하는데 모두가 떨어지는 회사 느낌이었어서… 최종이 안돼도 면접까지만 가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라 입사 확정됐을 때는 많이 기뻤어요.
전체 커리어 그래프에서도 제일 높았네요. 기억에 남는 이벤트는 혹시 어떤 게 있어요?
아무래도 첫 팀인 것 같아요. 처음 합류했던 팀이 토스 인슈어런스였어요. 입사 후 1년이 지났을 시점에… 비즈니스적 결정으로 사업 방향을 변경하기로 했어요. 제가 속한 팀 전체가 폭파되고, 좋아했던 팀원들도 퇴사하고… 그때 너무 슬펐죠. 아무것도 하기 싫고 그런 시기가 있었어요.
지금은 객관적으로 볼 수 있지만 당시에는 모든 게 다 제 잘못 같았어요. 제품과 나를 동일시했거든요. 내가 너무 부족해서, 내가 더 잘했더라면… 그런 생각을 팀을 옮기고 나서도 반 년 정도는 지속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러고 나서 여러 다른 팀 경험해보면서 좋은 동료들 만나고, 내가 성장하는 느낌을 받고 금방 다시 좋아졌어요.
정말 큰 사건이었을텐데 잘 지나오셔서 다행이에요. 오래 다니게 되면서 겪는 다른 힘든 점도 있었나요?
네. 성장하는 느낌을 받다가, 어느 순간 정체가 있다고 느낄 때가 있었어요. 어떤 제품을 해도 다 거기서 거기인 것 같고. 매너리즘이라고 해야 할까요. 패턴화가 되어있고, 딱 보면 뭘 해야 할지가 다 보이니까. 누가 어떤 얘기를 하면 머릿속으로 화면이 바로 그려지는 거예요. 그게 컴포트 존이죠. 지금 하는 일은 물론이고 안해본 일도 다 쉬워보이고… 그래서 나한테 더 도전적인 미션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때 디자인 리드를 맡게 되신 거군요.
맞아요. 마침 저에게 적절한 미션이 주어진 거죠. 지루해 보이는 게 느껴졌나 봐요.(웃음) 그런데 이게 또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더라고요? 새로운 세계가 열릴 줄 알았는데. 또 너무 어려우니까 다른 종류의 고통이 있더라고요. 그래프에 점으로 표현하기도 어려운게 하루 안에도 여러 감정이 오가면서 왔다갔다 해서 평균을 내기가 어려워요. 그래프로 그리자면 요동치는 느낌…
이걸 해냈다는 성취감과, 이걸 못해냈다는 자괴감과 죄책감. 하루 안에 너무 여러 번 왔다갔다 하고… 초반에는 ‘못 했다’가 많았죠. 객관적으로 잘한 순간에도 못 챙긴 것들이 더 많이 생각나요. 최근 1년 동안은 이걸 계속 반복했어요. 말하다보니까 6개월 주기로 괜찮았다가 엄청 불안했다가 그랬던 것 같네요.
그럼 지금은 어떤 단계예요? (웃음)
지금은 안정된 상태! (웃음) 사실 그동안 도전적이었던 과제가 주어졌는데, 그것들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상태거든요. 토스 증권이나 뱅크는 1년 동안 철저하게 준비하고 높은 완성도를 갖추고 세상에 나왔다면, 쇼핑은 그렇지는 않았거든요. 이미 성과를 내고 있는 상태다보니까 준비가 덜 되었지만 바로 시작하게 되어버린 거죠.
커머스에서는 당연한 기능인 장바구니, 환불 이런 것도 다 없었어요. 토스 앱이 사용성이 너무 좋고 UX의 기준이 높은데, 말도 안되는 사용성이 등장한 거예요. (웃음) 그런 것들이 제일 챌린징 했는데, 최근에 그런 기본적인 세팅들을 다 끝냈어요. 두 달 동안 열심히 달려준 쇼핑 팀원들 덕분이에요. 이제 성장하는 것만 남았습니다!
너무 축하드려요, 혜인님. 고생 많으셨어요. 이 과정에서 행복했던 순간도 분명 있었을 것 같은데요.
구체적인 장면은 기억나지 않지만… 동료들이 나를 신뢰한다고 느낀 순간. 하나는 되게 멀게 느껴졌던 동료가 “혜인님의 의견이 궁금하다”라고 말씀해주셨을 때. 저한테 절대 안 물어볼 거라고 생각했는데, 먼저 물어봐주신 거예요.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존재구나. 정신 차려보니까, 주변 동료들이 나를 많이 신뢰하는 것 같고, 그게 지금이라서 많이 안정되었다고 느끼나 봐요.
누가 얘기해줬는데, 토스에서 가장 신뢰하는 동료 중 한 명이 혜인님이라는 말을 듣는다든가, 혜인님은 다른 사람을 편하게 해주는 스타일 같다고 해준다든가, 사일로의 PD가 아니라 도메인이나 쇼핑 전체 경험의 총 책임지라고 여겨주시는 말들이나… 저에 대한 기댓값이 달라지는 게 느껴질 때 내가 성장했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5년 전 나에게 조언을 할 수 있다면 어떤 얘기를 하고 싶은가요?
5년 전에 불행했던 게, 내가 미래에 어떻게 될 지 몰라서였던 거 같아요. 사실 그 생각 자체가 저를 불행하게 만든 것 같아요. 내 커리어를 꼭 행복하게 만들어야지! 이런 생각 때문에 대학원을 갈까? 해외 취업을 해볼까? 이렇게 딴 데 눈도 많이 돌렸는데… 그런 생각 자체가 현재를 ‘이상에 부합하지 않은 상태’라고 정의해서 더 불안하게 만들었던 것 같아요.
다시 돌아간다면, 생각을 너무 많이 하지 말고. 지금 하고 있는 걸 짱! 열심히 하면 너한테 도움이 된다. 5년 전에는 무기가 안 생겼을 때라서 무기를 만들어야 될 땐데, 다른 곳으로 눈 돌릴 때가 아니잖아요. 무기를 사용하는 장면만 계속 생각하고 무기 만들 생각을 못했던 것 같아요. 단적인 예로 지금 토스 쇼핑하면서 더 그런 생각이 드는 거 같아요. 커머스 회사 다녔을 때 더 열심히 할 걸. (웃음)
너에게 주어진 일만 진짜 열심히 해도 된다. 그걸 얘기해주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