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그램 CEO 기소에 EU조사 압박…틱톡도 알고리즘 소송 휘말려

3 weeks ago 6

파벨 두로프 텔레그램 창업자
아동 성착취물 유포 공모 등 혐의
범죄활동 플랫폼 제공·당국수사 협조 거부
소셜미디어 범죄에 ‘경영진 형사책임’ 여부 주목
출국금지에 74억원 내고 보석…주2회 소환조사

파벨 두로프 텔레그램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2016년 2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 행사에 참석해 연설하는 모습. [사진=로이터연합]

파벨 두로프 텔레그램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2016년 2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 행사에 참석해 연설하는 모습. [사진=로이터연합]

프랑스에서 체포된 인기 메신저 앱 텔레그램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가 법정에 서게 됐다. 자사 플랫폼이 미성년자 성착취물 유포 경로로 악용되는데도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혐의다. 미국에서는 중국 바이트댄스의 ‘틱톡’이 유해 콘텐츠를 추천한 알고리즘 문제로 소송 위기에 처했다.

주요국이 앞다퉈 소셜미디어에서 벌어진 불법행위 등에 대한 플랫폼 사업자에게 책임을 부과하면서 표현의 자유와 프라이버시 보호, 범죄 수단에 악용 등 플랫폼을 둘러싼 법적 논쟁도 분분해지고 있다.

28일(현지시간) 프랑스 검찰은 성명을 통해 텔레그램 창업자인 파벨 두로프 최고경영자(CEO)를 예비기소했다고 밝혔다. 텔레그램 상에서 벌어진 미성년자 성 착취물 유포, 마약 거래 공모, 범죄조직의 불법거래 방조 등의 혐의다.

프랑스에서 예비기소는 수사판사가 피의자의 범죄 혐의를 사실로 믿을만한 이유가 있지만 추가조사가 필요하다고 보고 내리는 기조에 준하는 행위다. 본기소까지 짧게는 몇 달, 길게는 몇 년간 혐의를 특정하기 위한 사법당국의 조사가 이어진다.

프랑스 사법당국은 이날 두로프에게 출국 금지 명령을 내리면서 두로프가 보석금 500만유로(약 74억원)을 내는 조건으로 석방됐다고 밝혔다. 다만 두로프는 일주일에 두 번씩 경찰서에 출석해야 한다.

AP통신에 따르면 두로프에 대한 프랑스 사법당국의 수사는 지난 2월에 시작됐다. 프랑스 검찰은 아동·청소년 성착취물과 관련한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텔레그램에 용의자의 신원 파악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라고 협조를 요구했지만, 텔레그램이 이에 반응하지 않자 지난 3월 두로프와 그의 형 니콜라이 두로프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현재 니콜라이 두로프의 소재는 아직 파악되지 않았다.

프랑스·아랍에미리트(UAE) 양국의 시민권자인 두로프는 지난 24일 저녁 파리 외곽 르부르제 공항에 전용기를 타고 내린 직후 프랑스 당국에 체포·구금돼 이날까지 조사를 받았다.

운둔형 사업가로 알려진 그는 러시아 태생으로 항상 검은 옷을 입고 다니며 언론 인터뷰 대신 텔레그램으로 자신의 성향을 공개하는 특이한 행보를 보여왔다. 경제 매체 포브스에 따르면 두로프의 재산은 155억달러(약 20조 6000억원)으로 추정된다.

텔레그램은 유럽에서도 규제 목록에 오를 처지다. 이날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유럽연합(EU) 규제당국도 프랑스 사법당국의 조사와 병행한 EU 디지털서비스법(DSA) 위반 여부를 놓고 텔레그램 조사에 착수했다.

EU 당국은 텔레그램이 가짜뉴스·불법·유해 콘텐츠 확산 방지, 규제 기관과 데이터 공유 등 DSA 의무사항을 부과받는 EU 전체인구의 10% 또는 평균 월간활성이용자수(MAU) 4500만명 이상의 ‘초대형 플랫폼’으로 지정되는 걸 피하기 위해 사용자수를 의도적으로 축소한 것으로 보고 있다. 텔레그램은 올해 2월 EU 지역에서 4100만명의 사용자를 확보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EU 당국은 텔레그램이 DSA가 요구한 이달 중 갱신된 사용자수를 제공하지 않고 “EU 지역 MAU는 4500만명 보다 상당히 적다”고만 밝혔다. EU 당국자는 “텔레그램이 새 사용자수 데이터를 제공하지 않은 것은 DSA 위반”이라며 “실제 사용자수가 DSA가 정한 ‘초대형 플랫폼’ 기준을 넘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텔레그램과 두로프의 변호인은 프랑스 당국의 기소와 유럽 규제당국의 조사가 부당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비드 올리비에르 카민스키 변호사는 “메신저 서비스에서 저질러질 수 있는 범죄행위에 소셜미디어 회사 대표가 연루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터무니없다”며 “텔레그램은 준법정신을 다해 디지털 기술과 관련한 유럽의 규정을 준수하고 있다”고 밝혔다.

중국 바이트댄스의 소셜미디어 플랫폼 ‘틱톡’도 미국에서 영상 추천 알고리즘으로 인한 대규모 소송을 당할 위기다. 이날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국 필라델피아주 제3 연방순회항소법원은 “틱톡은 2021년 발생한 10세 소녀 닐라 앤더슨의 사망에 책임이 있는지 재검토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항소법원은 틱톡 알고리즘이 앤더슨에게 블랙아웃 챌린지 영상을 추천한 배경에 ‘편집적 판단’이 개입한 것으로 보고 틱톡을 단순 콘텐츠 제공자 역할을 넘어 사망에 잠재적 책임이 있을 수 있다고 봤다.

앞서 앤더슨은 2021년 당시 틱톡에서 유행하던 ‘블랙아웃 챌린지(질식 게임)’에 도전하다 필라델피아주 자택 옷장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후 앤더슨의 모친 타웨인나 앤더슨은 블랙아웃 챌린지의 위험성을 알면서도 동영상을 추천 알고리즘으로 반복 노출한 책임을 물으며 틱톡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1심 법원이었던 필라델피아 동부지방법원은 플랫폼 사업자를 플랫폼에 게시된 콘텐츠와 관련한 소송에서 면제하는 ‘통신품위법 230’조를 들어 해당 소송을 기각했지만 미 정치권에서 해당 법규가 플랫폼 회사를 과도하게 보호한다는 비판이 잇따르며 연방대법원 차원의 법안 심리가 이뤄지기도 했다.

두로프의 기소를 계기로 소셜미디어 플랫폼 상 각종 불법행위나 유해 콘텐츠 확산 책임을 기업에 부과하는 방안을 놓고 표현의 자유 위축에 관한 논쟁도 불붙고 있다.

다니엘 리온스 보스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두로프의 기소로 인해 규제 당국이 다른 인터넷 플랫폼과 소셜미디어 상의 불법행위 방지를 명목으로 더 공격적인 검열에 나설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그는 “CEO라는 이유로 개인적인 신변이 위험에 처한 점을 감안하면 플랫폼 상의 자유로운 발언과 사용자간 거래에 더 엄격해질 것”이라며 “최소한 플랫폼 기업가는 어느 국가로 가기 전에 왜 가야하는 건지 의문을 갖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데이비드 케이 전 유엔(UN) 의사·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은 두로프의 재판 결과가 특히 권위주의 국가에서 기술 회사들의 고위급 인사를 공격할 수단으로 악용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관건은 두로프 창업자를 향한 기소가 온라인 상 표현에 대한 정부의 제한과 플랫폼에 대한 압력의 새로운 시대를 알리는 지 여부”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텔레그램의 경우는 각국 사법당국과 협력해 플랫폼 상 불법 콘텐츠를 삭제하고 사법기관 요청에 대응하는 전담 조직을 구축한 구글, 메타와 같은 다른 기업들과는 다르다는 분석도 나온다.

다프네 켈러 스탠퍼드대 인터넷법 교수는 “프랑스 당국이 두로프 창업자를 기소할 수 있는 건 텔레그램이 사법당국으로부터 통보받은 불법 콘텐츠를 삭제하지 않으면서 면책권을 상실했기 때문”이라며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이번 기소는 놀라울 것 없는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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