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포트가 일으킨 ‘킬링필드’는 캄보디아 인구 4분의 1 이상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미군 폭격에 의한 희생자 수에는 과장이 있지만, 킬링필드에 미국의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다. 이후 1999년까지 캄보디아는 크메르 루주와 내전 상태를 이어 갔다.
베트남전쟁기에 실전으로 단련된 베트남 인민군의 전투력은 대단했다. 미군도 그 실력을 인정했다. 크메르 루주도 실전 경험으로 자신감을 다졌지만, 베트남군에 도전했다가 2주 만에 수도 프놈펜이 함락됐다. 다만 북부 정글과 산악지대를 기반으로 한 게릴라 투쟁은 난공불락이어서 세계 최고의 정글전 능력을 자랑하는 베트남군조차 고전했다. 이 과정에서 태국군은 크메르 루주 및 베트남군과 국경에서 교전을 벌이기도 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이 이번 국경 분쟁의 한 원인일 수도 있다.
그 후 베트남이 경제성장을 이루는 동안 캄보디아 경제는 침체했다. 이번에 드러난 군사력은 그 현실을 대변한다. 캄보디아 공군은 헬기에 의존할 만큼 열악하고, 실질적인 전력은 육군뿐인데 그 능력조차 명확하지 않다. 가난한 나라에서 ‘빈부 격차가 없어서 행복하다’는 말은 환상으로 치부한다고 해도, 힘이 없어서 겪는 고통은 상상을 초월한다. 세계의 운영 원리가 바뀌고 있다. 앞으로 한 세대 동안 세계 곳곳에서 힘없는 나라들이 겪는 고통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임용한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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