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중장년층 배려하지 않는 서울국제도서전

1 day ago 1

[취재수첩] 중장년층 배려하지 않는 서울국제도서전

직업병이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와도 꼭 받는데, 상대가 “아까 인터뷰한 사람인데요”라고 하면 긴장한다.

지난 18일 서울국제도서전 개막일 현장 취재를 마치고 김영수 씨(77)의 전화를 받았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날 도서전에서 만난 김씨와 아주 짧은 인터뷰를 하고 도서전 기사에 그의 말을 넣었다. “5년째 도서전에 오는데 행사가 점점 젊은이들 위주로 변하는 것 같다”는 한 문장이었다.

그는 빠뜨린 말이 있어 주머니 속 기자의 명함을 찾아 전화를 걸었다고 했다. “도서전에 젊은이들이 많은 걸 보니 참 좋았어요. 젊은 사람들이 책 많이 읽는 건 모두에게 좋은 일이잖아요.” 혹여 자신이 책을 즐기는 젊은이들을 흉본 걸로 오해할까 봐 걱정하는 마음이 전해졌다.

그렇다면 ‘국내 최대 책 축제’를 표방하는 서울국제도서전은 김씨처럼 과거부터 출판계를 응원해온 중장년 독자들을 어떻게 대접했을까. 입구부터 막혔다. 도서전 측은 인터넷 얼리버드(사전 할인 예매) 티켓이 인기를 끌자 안전을 이유로 현장 입장권을 아예 팔지 않겠다고 했다. 정보 접근성이 떨어지는 고령 독자 등이 헛걸음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자 그제야 65세 이상 노인, 장애인, 국가유공자, 미취학 아동에 한해 무료 티켓을 현장 배부하겠다고 안내했다. 의사결정 과정에서 다양한 독자를 염두에 뒀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시행착오다. 출판사와 출판 단체들의 530여 개 부스 위치를 표시한 행사장 지도는 팔찌 형태 입장권 속 QR코드로 확인 가능했다. 일부 배포한 종이 팸플릿에도 지도가 있었지만 글자가 작아 20대 독자조차 “알아보기 힘들다”고 했다. 출판사들이 준비한 행사는 SNS 이벤트 등 2030세대에 집중돼 있었다.

책은 본질적으로 느린 매체다. 언제든 게시·수정하는 인터넷 글과 달리 손쉽게 내용을 바꿀 수 없다는 데서 종이책의 권위가 나온다. 기획과 집필, 편집과 인쇄 과정에서 시간을 요구한다. 그런데 도서전은 독자들에게 그 어느 때보다 빠른 속도전을 요구했다.

도서전 얼리버드 티켓을 클릭해 굿즈(기념품)를 사 모으는 2030세대만이 종이책 독자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도서전이 고민해야 할 건 온라인 위주로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세대를 뛰어넘어 어떤 가치를 공유할 것인가다. 그래야 ‘책은 공익적 상품’이라며 출판계를 위한 각종 지원과 편의를 요구하는 목소리에도 설득력이 생긴다.

올해 도서전 주제는 ‘믿을 구석’이다. 고단한 세상에서 독자들이 기대는 ‘믿을 구석’이 책이길 바란다는 의미다. 김씨와 같은 중장년층에게 올해 도서전은 믿을 구석이었을까. 내년 도서전은 더 많은 이들에게 안식처가 되기를 바란다.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