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지혜의 요즘 트렌드] 준비가 삶의 핵심인 '레디코어' 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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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2026.04.17 17:24 수정2026.04.17 17:24 지면A21

[최지혜의 요즘 트렌드] 준비가 삶의 핵심인 '레디코어' 세대

요즘 대학생들 노트북에는 노션(Notion)이 필수 도구다. 수업 내용 정리부터 주간·월간 계획, 독서 목록과 운동 기록까지 일상의 모든 데이터가 한 화면에 정리돼 있다. 몇 년 전 ‘다이어리 꾸미기’가 유행했다면, 지금은 노션·투두이스트 같은 생산성 앱이 일상 전체를 관리하는 도구로 자리 잡았다. 노션코리아에 따르면 한국은 미국 다음으로 사용자가 많은 핵심 시장이다. 사용이 가장 활발한 세계 상위 20개 대학 중 6곳이 한국 대학일 만큼 열기가 뜨겁다. 잘 짜인 계획표가 ‘인생 치트키’로 불리며 디지털 상품으로 거래되는 것도 이런 흐름과 맞닿아 있다.

'학원 세대' 2030엔 先行이 일상

이처럼 계획과 준비를 삶의 핵심 가치로 삼는 ‘레디코어(Ready-core)’ 트렌드가 일상화되고 있다. ‘준비된(Ready)’ 상태가 삶의 ‘핵심(Core)’이 되었다는 뜻이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미리 계획하고 학습해보는 방식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은 것이다. 사전 계획은 공부와 업무에만 머물지 않는다. 운동도 장기 프로젝트로 변했다. 과거엔 ‘하루 1만 보’, ‘매일 30분 러닝’ 같은 단순 목표에 그쳤다면 ‘3개월 뒤 10㎞ 완주’ 같은 목표를 세우고, 남은 시간을 역산해 주차별 거리와 강도를 계획하는 식이다. 즉흥적 활동이던 운동이 데이터 기반 장기 계획으로 전환된 셈이다.

Getty Images 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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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가도 마찬가지다. 경험 경쟁이 심화되면서 인기 공연과 축제는 예매 시작과 동시에 매진되고, 맛집이나 팝업스토어 역시 예약 없이는 입장이 어렵다. 소비자들은 가고 싶은 맛집·전시를 미리수백개씩 저장하고 일정을 선점한다. 레스토랑 예약 플랫폼 캐치테이블이 팝업·디저트·꽃집까지 영역을 넓히는 것도 이러한 수요를 반영한다.

레디코어는 자산 형성 분야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2030세대는 부동산 스터디를 통해 이론을 넘어 ‘임장’을 포함한 실무형 현장 경험을 함께 쌓고, 사회 초년생부터 연금저축이나 IRP 등 장기 금융상품에 가입한다. 미래에셋증권에 따르면 IRP 가입자 증가율은 20대가 201%로 가장 높았다. 복리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일찍 시작해야 유리하다는 인식이 확산된 결과다.

이런 현상은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불확실성이 상시화된 시대에 따른 구조적 대응이다. 저성장 기조와 인공지능(AI) 등 기술 변화 속에서 사람들은 미래를 통제함으로써 생존에 대한 불안을 해소하려 한다. 레디코어는 예측 불가능한 환경에서 주도권을 잡으려는 욕구가 행동으로 발현된 결과다.

미래 경쟁력, 계획과 실행에 달려

또한 오늘날 젊은 세대가 자라온 환경도 주목해야 한다. 이들은 어릴적부터 방학 계획표, 선행학습, 자기주도학습을 반복하며 성장한 준비형 인재, 이른바 ‘학원 세대’다. 이들에게 계획은 노력의 대상이 아닌 내면화된 습관이자 숨쉬듯 자연스러운 일상이다. 종이에 시간표를 그리던 방식은 스마트폰과 캘린더 앱으로 옮겨갔고, 일정 관리 범위도 업무를 넘어 일상 전반으로 넓어졌다. 도구는 바뀌었지만 삶을 구조화하고 통제하려는 경향은 더욱 고도화됐다.

결국 미래 시장 경쟁력은 사용자가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과정을 얼마나 잘 지원하느냐에 달려 있다. 준비가 곧 역량이고, 예측 가능성이 곧 안심이 되는 시대. 레디코어는 개인의 삶을 넘어 소비 시장의 새로운 기준을 만들고 있다.

최지혜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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